자세히 봐야 아는 성장
첫째님은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학교 수업을 모두 마친 후에 치료를 받으러 가면 너무나 좋겠지만 재활치료받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그렇다 보니 정규수업시간 이후의 재활치료 시간은 황금시간이 됐다. 누군가 치료를 그만두지 않는 한 계속 대기를 해야 했고 너무 늦게 치료시간을 잡는다면 첫째님의 수면이나 각성에 좋지 않을 수 있어 할 수 없이 시간을 조금 앞당겼다.
일주일에 두 번은 13시에 아이를 하교시켜야 한다. 월요일은 정규수업보다 1시간 일찍 하교해야 하지만 다행히 수요일은 13시에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문제없이 치료실로 이동할 수 있다. 월요일과 수요일은 하교를 위해 학교에 방문한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엑셀에서 아예 발을 떼서 주차를 한 후 첫째님이 나오는 건물 입구에서 기다린다. 장애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첫째님만 하더라도 안전에 대한 인지가 없다 보니 손을 놓치면 뛰쳐나가기에 그런 아이들이 주차된 차들 사이로 튀어나온다는 걸 항상 주시해야 하기에 액셀 밟는 걸 포기하면서 주차를 한다. 보안관님에게 인사를 한 후 첫째님이 나오는 건물 앞에 서있으면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아이를 기다리는 10명 정도의 부모들 무리에 나 역시 껴있다.
학교는 'ㅁ' 자 형태이며 가운데는 우레탄이 깔린 조그마한 운동장이 있고 한편에는 화단과 의자가 있다. 조금 일찍 도착해있으면 다른 언니 오빠들이 나와 체육활동을 한다. 축구나 농구를 할 정도의 크기는 아녔고 그런 경기규칙이 있는 운동보단 자전거 타기, 걷기, 공 주고받기 등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한다. 어쩌면 비장애 아이들한테는 지루할 수 있어 보이는 간단한 몸풀기 운동이지만 이 아이들에겐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수업 같아 보였다. 교실이 답답했는지 나오자마자 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뛰어다니는 학생들과 그 학생을 잡기 위해 같이 뛰어가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하나같이 다들 웃으면서 즐겁게 활동하는 모습에 어느덧 예뻐 보임을 넘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저런 간단한 것만 해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습이 너무 천진난만해서 대견해 보이기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이들이 예뻐 보였는지, 아니면 남의 자식들은 그냥 다 예뻐 보이는 건지.
20분 정도 짧게 운동을 마치고 들어갈 즘 첫째님이 선생님 손에 이끌려 나왔다. 마스크는 반쯤 벗겨져있고 점심을 먹은 건지 쏟은 건지 바지는 오전에 입혔던 것과 다르며 옷소매 여기저기에 밥풀이 묻어있는 걸 보니 한바탕 전쟁을 치르며 식사를 했을 것이다.
재활치료 가기 전까지 20분 정도 시간이 있어 교실에 앉아있느라 고생한 첫째님에게 잠시 운동장에서 뛰어놀 시간을 주면 가운데에서 뛰어놀기보단 저 한 편의 화단으로 가서 그렇게 화초들을 쥐어뜯는다. 화초를 하도 괴롭히다 보니 원추리라는 화초의 이름조차 외울 정도였으며 학교에서 아름답게 화단을 꾸몄는데 고질라 마냥 모든 걸 다 부셔버릴 것 같아 주변에 나뭇가지를 하나 쥐어줘야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더 이상 화초들에게 나쁜 짓을 하진 않는다.
좀 전의 아이들이 간단한 운동만으로 신나 하듯 첫째님은 어떠한 놀이도구 없이 그저 기다란 막대기 하나만 줘도 정말 신나서 뛰어다니며 꽃과 식물을 만지고 흙을 만진다. 나뭇가지를 흔들다가 떨어지면 다시 주워서 흔들지만 멀리 날아가서 보이지 않으면 다시 화초를 괴롭히다 보니 주변 나뭇가지나 막대기의 위치를 항상 확인하고 첫째님 손에 다른 막대기를 얼른 쥐어졌다. 그렇게 혼자만 놀던 그 첫째님이 어느 순간부턴 사람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에게 다가섰다
하교 후엔 화단에서 놀던 아이가 다른 언니 오빠들이 운동장 가운데에서 공놀이를 하면 그쪽으로 뛰어갔다. 수업에 방해되기에 제재했지만 화단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서는 사람들 주변을 맴돌면서 그들의 공놀이를 지켜보고 즐거워했다.
더 놀고 싶은 데 가야 한다며 손을 이끌면 예전에는 마지못해 끌려왔지만 이젠 더 논다면서 안 가거나 내 손을 세게 잡거나 손톱으로 긁는다. 처음에 너무 아파서 첫째님을 혼냈는데 나중에 보니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충분히 못했기에 의사표현이 잘 안되다 보니, 아니 의사표현을 했지만 내가 못 알아 들었는지 행동으로 표현했다. 행동으로까지 표현해도 안된다면 그제야 크게 운다. 처음 보는 행동이라 어디가 아픈 건지 했지만 뒤늦게 알았다. 첫째님은 돌 지난 1세 아이의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 더 놀고 싶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며 그들의 놀이에 끼고 싶지만 지적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간단한 규칙을 깨닫지 못해 그저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치료사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첫째님의 행동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내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첫째님은 사회성이 다른 것에 비해 빠르게 성장했다. 그래서 놀이치료를 중단하고 언어치료에 집중하기로 변경을 할 정도였다. 사회성이 빠르게 성장했는데 그에 반해 언어나 지적, 소근육에 대한 성장은 아주 조금 성장했다. 성장의 벨런스가 맞지 않다 보니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못 놀고 혼자 놀아도 더 놀고 싶은데 표현을 해도 못 알아듣고 억지로 끌려가다 보니 화가 나거나 답답해서 뿌리치고 할퀴고 우는 것이다.
공격적인 행동은 하지 않지만 뜻 모를 행동들에 잠시 당황했었다. 하지만 조금 늦게 깨달았다. 아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때때론 우연같이 상황에 맞는 단어를 내뱉었지만 나만 그걸 믿지 않았다. 아내와 치료사분들이 '그게 말로 표현하는 겁니다'라고 할 때에도 '그건 우연의 일치 입니다'라고 했던 내가 조금 어리석었다. 작은 변화를 칭찬하고 호응해줘야 했지만 단지 우연이나 어쩌다 한 행동이라며 무시했었기에 어쩌면 첫째님은 나와의 대화를 포기한 걸 수도 있겠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니 반복적 규칙을 통해 아침 출석시간에 큰소리로 "네"를 했다며 담임선생님이 깜짝 놀라 알림장에 썼던 내용을 보곤 첫째님을 칭찬했다. "잘했어! 이야 우리 딸 대답 잘했네!"
물론 첫째님이 내 마음과 내 말을 이해할 거라 확신하진 않는다. 적어도 나만이라도 내 행동과 마음이 바뀌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라는 걸 확신했으면 한다.
자세히 보면 조금씩 보인다. 진짜 손톱 같지만 조금 더 성장하는 게 보이니 특수학교에 보내길 참 잘했다고 생각 든다. 아내가 2년간 수만 번 고민하고 잠을 설쳐가면서 고민하던 '통합반이냐 특수학교냐'를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첫째님은 너무나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