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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Jun 22. 2021

감사일기

소소한 건 없다!

10시 출근이지만 전날 새벽부터 출장으로 시작해 밤늦게 들어왔기에 11시 출근이 허락됐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밥을 먹이고 첫째님을 먼저 학교버스에 데려다줬다. 둘째 놈은 여유롭게 양치를 하고 원피스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발레학원 가는 날에는 나와의 약속이 있기에 바지를 입어야 했다.

바지와 노란 티를 입고 어린이집까지 걸어갔다. 1시간 늦은 출근이라 그런지 아침에 여유가 넘쳤다. 약간 덥지만 파란 하늘이 보였고 둘째 놈의 양손을 붙잡고 높이뛰기를 하며 나만 힘들고 둘째 놈만 신나는 그런 놀이를 했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이 둘째 놈을 반갑게 맞이했고 요즘 들어 어린이집에서도 큰 목소리로 대답도 하고 선생님을 부른다며 기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찬물을 확 부어버렸다.

"집에서는 말을 더 안 듣는데요?"

"어린이집에서는 말은 너무 잘 들어요! 상상이 안되네요!"

"아... 아마 대내용과 대외용이 다를 겁니다!"


설마 선생님이 그걸 모를까. 아이들이 집에서 얼마나 말썽을 부리고 말을 안 듣는지 정말 모를까! 알면서도 어린이집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알리며 부모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걸 테다. 찬물을 끼얹였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고 잘 성장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내의 동료가 별다방 쿠폰을 줬기에 아침을 대신할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한번 사이렌 오더라는  사용해봤는데 처음이라 연속 주문을 해버렸더니 주문 4개중 1개만 완료됐고 남은 3건은 주문이 안된줄도 모르고 매장에 도착해확인했다. 결국 사이렌 오더는 의미가 없었고 매장에서 직접 쿠폰으로 결재했지만 평화로운 아침을 평일에 맞이하는  1 만에 처음인  같다. 아내와 같이 먹을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들고 집에 걸어가는데 우체부 직원이 바이크를 세우고 담배를 피우면서 영상통화를 했다.

"우리 공주님! 많이 컸어요? 많이 예뻐졌네요!"

그러면서 담배를 뒤로 감추고선 본인의 자녀에게 온갖 애교 섞인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더운 날에 고생하면서 잠깐 쉬기 위해 담배를 피우면서도 아이와 통화하며 기뻐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짧은 저 쉬는 시간에 꿀맛 같은 담배보다 아이와 통화하는 게 더 행복한가 보다. 아빠가 돼보니 저분의 웃음과 말투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힘들지만 아이 앞에선 웃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통화하면 절로 웃음이 날수밖에 없고 그게 담배보다 훨씬 더 맛있고 꿀맛일 것이다.

아침에 여유를 부리며 둘째 놈과 어린이집에 걸어가는 내 모습 역시도 참 행복했다. 찬물을 끼얹었지만 선생님의 둘째 놈 칭찬을 들으니 역시 행복했었다.

소확행이라는 말은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이라고 한동안 떠돌아다녔고 요즘도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근데 이 말을 반대로 해보니 행복은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것이란 말이 어딘가 어색했다.

아이와 통화하는 우채 부 직원의 저 시간은 작은 것이 아녔다. 잠깐의 쉬는 시간은 정말 크다. 하지만 그 큰 것을 아이와 대화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아침에 1시간 늦게 출근하면 평소처럼 그냥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얼른 각자 위치에 놓고 나 역시도 잠깐은 쉴 수 있었다. 근데 굳이 둘째 놈과 걸어간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게 더 크고 그게 더 확실하게 실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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