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 출산으로 가족이 되다!
남편의 입장에서 바라본 임신과 출산은 정말 기쁘지만은 않았다. 신기한 건 데이지는 그때 그렇게 아프고 힘들어했으면서도 호르몬에 의해서인지 훗날 출산의 고통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도 그때의 그 고통을 느끼는 데이지의 모습들이 또렷이 기억났다. 큰 변화를 겪던 그 시기, 그리고 그 시기에 잠깐잠깐 느꼈던 짤막한 단어와 글들을 통해 고스란히 그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기억은 출산의 기쁨은 잠시였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이 개최됐다. 데이지는 김연아의 광팬으로 동계올림픽 열혈 시청자가 되어 만삭이라 힘들지만 출산을 위해 에너지가 가득한 피자를 먹으며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산 가방에는 출산을 위한 모든 것들을 준비해놨고 우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산 2~3일 전에 이슬이 맺혔고 정말 출산, 우리가 부모가 된다는 게 실감이 안 날정도로 기분이 이상했다.
데이지는 어느 정도 감이 온 것 가았다. 왠지 출산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는지 그날도 피자를 시켜먹었고 이상화 선수의 스피트 스케이트가 시작하려는 때에 데이지가 나한테 외쳤다.
"찰리 한! 출발해!"
이제 막 이상화 선수의 메달 경쟁이 시작할 시간이지만 우리에겐 더 급한 일이 생겼다. 티브이를 끄고 출산 가방을 들고 데이지를 부축해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없기에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데이지는 불안 불안했다. 뒷좌석에 앉은 데이지는 아이가 당장 나올 것 같아 엎드려서 최대한 출산을 늦추려고 했다.
병원 가는 길은 그야말로 난폭운전의 끝이었다. 신호도 무시하고 속도는 위반을 떠나 어떻게 달렸는지도 생각이 안 났다. 밤 11시가 넘었기에 차가 많이 없었지만 1시간 거리의 병원을 가는 동안 혹시라도 출산하게 된다면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왔기에 계속 달렸다. 30분도 안 걸려 도착을 했고 예약한 방으로 조산사들이 안내했다.
병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당장 나올 것 같은 아이가 도착하자마자 잠잠해졌다. 자연출산의 가장 좋은 점은 출산 3종 굴욕세트를 안 해도, 필요에 의해서만 할 수 있기에 데이지의 동의하에 내진을 했고 초산이지만 당장 출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의 출산이 임박했기 바로 예약실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다운증후군에 역아의 아이를 출산하려다 보니 일반 출산실보다는 조금 넓은 곳을 선택했다. 혹시나 모를 의료적인 처치를 위해서, 동원돼야 할 인력들이 많아질 수 있기에 우리는 그 특실을 선택했고 넓은 방에 짐을 풀고 준비한 찬양을 틀면서 데이지와 나는 안정을 찾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데이지를 침대에 앉히려고 안아주고 천천히 다리를 굽히는 순간 내 왼쪽 귀에 데이지가 정말 큰 소리로 소리쳤다.
"애 나와요!!"
고막이 터지는 것 같았다. 출산을 앞둔 여성은 모든 호르몬이 어떻게 분비되는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포효할 정도였고 덕분에 난 잠시 멍 해있었다. 야식을 먹고 있던 조산사들이 막 달려왔고 그들은 내가 출산이라는 큰일 때문에 멍해있는 줄 알고 나한테 소리쳤다.
"아버님! 정신 차리세요!"
정신은 차리고 있었지만 한쪽 귀가 안 들려서 뭐라고 말할 기회도 없었다. 그렇게 한쪽 귀를 부여잡고 나도 아내 뒤에서 출산을 시작했다. '난 잘 배웠으니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다짐하고 교육받은 대로 아내 손을 붙잡고 뒤에서 같이 호흡해주면서 수분도 보충해주고 라이트 터치도 해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분명 배웠지만 현장에선 엉망진창이었다. 뭔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내한테 하나도 도움 안된 것 같았다.
힘주라고 할 때 데이지 보다 내가 더 힘을 준 나머지 데이지의 손을 꽉 쥐어 손톱자국을 냈고, 물 달라고 할 때 정신 못 차리고 내가 다 마셔버렸고 진통 와서 데이지가 힘줄 때 텀블러를 건네다 처맞을 뻔했다.
"습습 후 후~ 습습 후 후~~ 하하하하하하~~~ " 하며 배운 호흡법 다 동원했지만 조산사가 얘기했다.
"아버님! 얘는 역아라 그런 호흡법 소용없으니 하지 마세요!"
아내보다 덜 아픈 내가 더 긴장하면서 어리바리하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조산사가 말했다. 보통은
"머리가 보여요, 좀 더 힘주세요, 다 나왔어요"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많이 달랐다.
"다리 한쪽이 나왔어요? 보여드릴까요?"
라며 거울을 비추는데 아니라고 대답할 겨를도 없이 바로 우리에게 보여줬다. 데이지도 힘주다가 다리 하나 달랑 나온 걸 보고 식겁했고 나 역시도 식겁했다. 그리고 애써 찾은 마음의 평안이 다 망가져버렸다. 소리 지르면 아이 놀란다고 지르지 말라고 했는데 이미 마음의 평안이 망가져서 데이지는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좀 빨리 나왔으면 했고 힘도 달리다 보니 데이지는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는데 조산사가 또 말했다.
"발 하나 더 나왔어요."
후에 엉덩이, 몸 그리고 팔 하나 나오고 또 다른 팔이 나왔다. 이 정상적이지 않은 출산은 드라마에서 조차 못 봤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동물들 출산할 때 나오는 장면과 똑같았다. 그리고 이제 제일 중요한 순간이 왔다. 여기서 보통 잘못되어 하늘나라로 간다고 한다. 다리가 나올 때부터 저 멀리 원장님이 호출되어 대기하고 계셨다. 그리고 목과 턱이 나올 때부터는 자궁 쪽을 누르면서 아이의 턱과 목을 돌려가며 뺐다. 마지막에 쑥 하고 힘줘서 누르면서 첫째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3시간 30분 만에 출산, 초산치 고는 그래도 빠르게 출산했다. 그래서 우리는 나오는 첫째의 태명을 부르고, 아이를 품에 안았다. 보통 드라마에서는 이 장면이 엄청 감동적이고 다큐멘터리에서도 아내고 아빠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위로했는데 난 좀 달랐다. 양수에 불어버릴 때로 불어버린 빨간 고구마 같은 게 나왔는데 내 아이인지도 모르겠고 어떠한 감동도 오지 않았다.
"왜 난 감동이 안 오지? 어째서 이렇게 못생겼지? 다운증후군이라 이렇게 못생겼나?"
솔직한 내 첫 심정은 이랬다. 하지만 이내 아이를 품에 안고 준비한 성경구절을 읽었다. 진짜 아이가 부서질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들면서 품에 안아보니 꼼지락 거리면서 내 피부를 통해 이 아이가 내 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힘을 적당히 주자니 너무 힘들었고 그렇게 첫째를 안고 데이지를 보는데 출산 후 처치를 하는 중이었다. 출산도 힘들지만 태반 역시 또 하나의 출산이었다. 태반도 정말 안 빠졌다. 그 사이 데이지에게 무슨 주사다 라고 설명해줬지만 3,4개의 주사를 꼽았고 탯줄 잡고 당기면서 태반이 나오는데 한 10분 정도 걸렸다.
임신도 정말 힘든 건데 출산 역시도 쉽지 않았다. 물론 나보다 당사자는 오죽했겠건만!
그렇게 숨 좀 돌리고 우린 모두 지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간호사들이 들이닥쳐서 혈액형, 수유 방법, 분유, 기저귀 등등 여러 가지를 순식간에 후다닥 해치우고선 나갔다.
그리고 2~3시간 단위로 들어와서 수유, 변 체크하며 수시로 들어왔다. 그들은 2,3시간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눈만 감으면 들어올 정도로 느껴졌고 그만큼 힘들었었다.
하지만 첫째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숨은 쉬는 건지, 죽은 건 아닌지 하는 불안감 때문에 뜬눈으로 첫째 옆에 모여 아이를 바라보면서 행복함에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