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아끼려 먹었는데 짠 해서 먹더라!
7개 민족이 모여서 일하다 보니 민족의 특성과 성향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한 달 정도 일하다 보니 일도 적응되고 일하는 동료들과도 얼추 친해졌다. 언제나처럼 내가 일하는 믹싱 기계에는 항상 오는 수단 1명과 인도의 왜소한 체격 1명이 달라붙는다. 그들은 너무 잘 안다. 어차피 카운팅도 내가 하고 일을 대충 해도 현장매니저 와인에게 욕먹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좀 밉긴 했지만 그래도 같이 일하는 동료이고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는 것 또한 나한테는 좋은 '배움의 장터' 이기 때문이다.
호주에는 콜라를 2L 정도 되는 페트병으로 판매한다. 수단 놈은 언제나, 반드시 펩시도 아닌 코카콜라만 먹는다. 그것도 2L짜리를 그날 하루에 다 마신다. 펩시는 왜 안 먹냐고 하면 딱 한마디로 끝냈다.
"not sweet"
펩시나 코카콜라나 맛이 같던데 그 단맛이 다르다고 한다. 완전 단맛은 미식가 수준이었다. 탄산 때문에 배 안 부르냐고 하면 그래서 저녁을 안 먹는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기적의 논리인가!
인도인은 말소리도 작고 소곤소곤 말한다. 청력 보호기를 쓰면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안 들려 그냥 되도록 안 쓰고 일한다.(믹싱 기계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 청력 손상은 없을 듯했다) 나랑 같이 일하다 보니 의외로 일하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손발이 척척 맞는 날들도 더러 있었다. 두 아이의 아빠인데 여기서 열심히 일하는 그 모습에 처음 내가 갖았던 천하태평한 인도인의 모습이 이제는 조금씩 정겨워졌다.
저녁시간이 되면 모든 돌아가는 기계를 한번 멈춘 다음 다시 돌리고 식사하러 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고 간다.
1달 동안 내가 먹었던 저녁식단은 웃기게도 카레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드니에서의 그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자린고비 정신이 습관처럼 배어서였다. 처음 일한 2주간은 1500불 정도 벌었지만 중계인에게 1000달러, 그리고 숙소비 200불, 그리고 남은 돈은 나한테 빌려준 형에게 300불 먼저 돌려줬다. 생활비는 한 100불 정도 남겨놨다.
그리고 다음 2주간은 1600달러 정도 벌었다. 역시나 숙소비 200불 지급하고 돈 빌려준 형에게 남은 100불과 함께 10%를 가산해서 40달러 더 줬다. 꼭 그러지 않아도 됐지만 어려울 때 나에게 힘이 되어준 분들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성의 표현은 10% 가산해서 돈을 돌려주는 일이었다.
혹시나 일하다 뭔가 잘못되어 갑자기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생길 것 같아 우선 돈을 모아두기로 했다. 다시 돈 없이 그런 힘든 생활은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을 더 안 쓰게 되고 식비를 줄이게 되었다.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asian store 가 있었다. 공장에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일하고 있었고 한인들도 꽤 있어서 그런지 아시안 상점 하나가 있고 거의 독점 수준이었다. 반가운 김치, 팥앙금 이외에도 중국 식품과 다양한 향신료들이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거기서 갓 뚜기 카레 1kg짜리를 샀다. 50인분 정도여서 1달은 충분히 점심 저녁으로 먹을 양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채소, 호주산 청정 소고기는 woolworth 대형 하트에 가서 사 갖고 와서 1달 동안 저녁으로 정말 카레만 먹었다.
저녁시간에 호주 청소년들은 미리 공장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놨고 피시&칩스, 미트파이 아니면 보도 듣지도 못한 커다란 튀김류들을 사 갖고 왔다. 수단애들 중 콜라 먹는 1명을 제외하고는 다 집밥을 싸왔다.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인들도 밥을 싸왔다. 그리고 익히 우리가 잘 아는 카레의 나라 인도는 정말 카레를 먹는다.
하지만 내가 먹는 그 카레와는 아주 달랐다. 한국에서 내가 먹었던 맛있는 카레는 기껏 코코 이찌방 정도였다. 그리고 인도 카레는 난 그날 처음 봤다.
전혀 묽지 않았다. '난'이라는 이상하고 넓적한 부침개 같은 것 위에 카레를 손으로 넣고 먹는다. 집기류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맨 손으로 카레를 퍼서 먹는다. 그러고 보니 수 단애 들도 손으로 먹는다. 다 문화 차이이지만 좀 못마땅해 보였다. 하지만 여긴 다문화 국가인 호주이고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로 밥을 먹기에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리고 1달 정도쯤 되니까 그 인도인이 나한테 말했다.
"Stop pucking eat curry"
"What?"
인도인이 나한테 카레 좀 작작 먹으란다. 그래서 난 어이없이'뭐?'라고 대답했다.
1달 동안 그것도 묽은 카레, 그러니까 자기네들의 정통 카레가 아닌 어디서 이상한 카레 같은 것만 먹는 게 썩 맘에 안 들었나 보다.
약간 기분이 상했다. 내가 내 맘대로 먹겠다는데 네가 왜 난리야?
근데 생각 한번 해봤다. 만약 다른 외국인이 우리나라 유구한 역사가 깃든 김치를 엉망으로 만들어 내 앞에서 1달간 먹는다면 나 역시 '김치는 그게 아니야. 내 것 먹어봐! 이게 진짜 김치야'라고 말해줬을 것 같다.
그래서 한번 물어봤다. 내가 먹는 카레에 문제가 있냐고?
그러니 인도인이 자기 꺼 하나 먹어보라고 건넸다. 그리고 '난' 한 장에 숟가락으로 카레를 퍼서 녀석이 먹는 방법대로 먹었다.
"헐.... 대박!!!"
나는 쌍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까까지 좀 기분 나빴던 마음들이 카레와 '난' 한 장에 난 바로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그 인도인이 뿌듯해하면서 "맛있냐?"며 물어봤고 난 정말 격한 공감과 함께 하나 더 먹겠다고 했다.
외국인이 우리의 전통 음식 김치를 먹고 맛있다며 더 달라고 하면 당연히 1포기 까지 주지 않을까 한다.
난 눈치도 없이 녀석의 카레와 난을 다 뺏어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먹다 보니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는 이상한 하얀색의 요구르트를 건네주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게 라씨라는 그 음료라고. 맛은 식초와 요구르트를 섞은 중간 맛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그 맛이 나중에는 중독될 정도라 라씨 없이 카레 먹는 게 상상이 안될 정도였다.
그렇게 맛있게 카레를 먹고 난 너무 감사한 뜻을 전했더니 그 인도인은 기쁨의 얼굴을 하며 우린 그렇게 카레로 대동단결했다.
문제는 하지만 그 이후에 생겼다. 난 또다시 1달간 카레만 먹었다. 아니 이젠 먹고 싶지 않았지만 강제적으로 먹었다.
이유는... 인도인이 집에 가서 아내한테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왜소한 체격이라 아내는 늘 먹는 게 시원찮은 남편을 구박했고 언제나 더더더 많이 카레와 난을 싸줬더랬다. 근데 맨날 남겨오던 것들이 아주 바닥까지 싹싹 비였던 것이고 아내는 너무 기쁜 나머지 더더더더 많이 카레와 난, 라씨는 500ml에서 1.5L로 용량을 늘려 싸줬다.
그렇다. 난 녀석이 자꾸 자기 꺼 먹으라고 해서 어느 날부터는 아예 도시락을 안 싸갔고 왔다. 자꾸 먹으라고 하는데 맨날 양이 점점 많아져서 이제는 2명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 많아졌기에 아내한테 내가 저녁값이라도 주겠다고 했더니 녀석이 이실직고 얘기를 해줬었다.
자기가 잘 먹는 줄 알고 계속 싸주는데 찰리 네가 다 먹어줘서 퇴근 후 아내한테 칭찬받으면서 들어간다고.
약간 짠 했지만 그래도 난 타 문화 가정에 의도치 않은 행복을 전달해줬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난 인도녀석과 함께 일을 정말 열심히 했고 녀석이 가끔 농땡이를 쳐도 크게 개의치 않고 열심히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언제나 인도 가정식 카레와 하 1.5L 되는 라씨를 들이켜면서 건강한 영양섭취를 했다.
문화 차이는 생소하고 낯설지만 참 재미있었다. 못마땅한 차이는 그냥 내가 배고 배운 것들에 대한 편견일 수 있었다. 이로써 난 내 목표의 2번을 여기서 정말 많이 배웠다. 호주뿐만 아닌 타 문화에 대한 이해라고 착각한 편견을 깨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