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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호주 24: 한국에서 가장 심한 욕 알려줄까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봅니다.

by 찰리한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명예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국기에 맹세 합니다. - 구버전입니다


호주 고기공장에서 일한 지 2달이 지났다. 2달이 되면서 이젠 스킨 파트에 대한 일은 아주 완벽하게 적응되었다. 2주 페이는 여전히 1500~1900달러 사이를 오가지만 2달을 일하면서 이젠 내 수중에 돈이 거의 5천 달러 정도는 있었다. 카레는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 생각해서 인도인에게 정중하게 '난 다른 음식을 해 먹어야겠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내한테 혼나지나 않을까 걱정은 됐지만.(이유 있는 호주 23편 참조)

육체노동이다 보니 역시 잘 먹어야 했다. 그래서 2주 식비만 거의 350~400달러 정도 들어갔다.

우선 영양제는 멀티비타민, 꿀, 로열제리(?), 단백질 파우더 2kg로 시작했고 점심은 무조건 소고기 안심과 등심. 저녁은 햄버거용 빵, 각종 야채, 패티는 튀김이나 이런 거 아닌 등심이나 안심 구워서 넣기, 간식은 프로틴 에너지 바, 젤리 등등.

밥은 생각보다 배가 빨리 꺼진다. 밀가루가 확실히 에너지도 그렇고 일이 끝날 때까지 든든하기에 햄버거가 제일 좋았다. 개당 가격도 꽤 나간다. 소고기 안심이나 등심을 패티로 해서 싱싱한 채소들을 듬뿍 얹었기에. 버거킹도 내가 만든 햄버거 사이즈를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다. 패티가 안심 두덩이 인데 이걸 누가 이기냐고!

단백질 셰이크도 매일 500ml 만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프로틴 바와 셰이크를 항상 챙겨 먹었다. 팔근육을 쉼 없이 사용하다 보니 근육이 다 쪼그라들지 않을까 해서 언제나 근육의 근원 단백질은 쉼 없이 공급했다. 매 쉬는 시간 꼭 무언가를 하나씩 입에 물고 먹었다. 안 그러면 앞으로 세컨드 비자까지 사용해서 6개월 정도를 버텨야 하는데 먹는 게 시원찮으면 안 되니까.


호주는 1~2월이 여름이다. 건조하고 더운 여름. 한국과는 좀 다르다. 그래서 28도 정도지만 그늘에 있으면 꽤 시원하다. 문제는 가끔씩 40도를 넘는 날도 있었고 45도를 찍은 날도 있었다.

스킨 파트는 야외에서 일하기 때문에 45도의 날씨에는 그늘이 있어도 그냥 건식 사우나에 들어간 것처럼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기가 막히게 수단 놈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냥 번아웃 상태가 되어버리고 이내 다른 민족들 역시 작업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아니 아프가니스탄은 이해한다 쳐도 다른 나라는 분명 다 더운 나라에 있는 민족들인데?

(스킨 파트의 일하는 민족들 특성은 이유 있는 호주22편 참조)

하지만 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가대표이자 고용이 불안한 casual job 이였다. 그들은 정규직이지만 난 아니다. 그래서 열심히 해야 했다. 45도의 날씨도 날 막을 수 없었고 계속 열심히 일했다. (casual job의 설명은 이유 있는 호주 21편 참조 )

그날 이후로 내 이름은 charlie han에서 pucking charlie로 변경되었다.

그 더운 날에도 쓰러지지 않고 일하는 아주 정신 나간 놈으로 낙인 되었고 현장 매니저는 특히나 더 좋아했다.

그래서 출근할 때면 저 멀리서 와인이 날 부른다. "hey pucking charlie"

그럼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금세 적응한다. 그리고는 나 역시 똑같이 말한다.

"what the puck wayn"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호주에서는 이게 가능했다. 너무 신기하게도 내가 오십 먹은 아저씨한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도 웃으면서 쌍 puck을 날리는 정말 격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난 pucking charlie로 불리면서 많은 이들에게 강제적 웃음을 주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못마땅한 건 호주 청소년이었다.

언제나 변하지 않고 나한테 jola 반갑다 18을 하면서 인사를 한다.(이유 있는 호주 18편 참조)

내가 두고두고 벼르다가 이젠 정말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에게 흔히 요즘 말로 하는 '참 교육'을 시전해야 할 때가 왔다.

"Hey bradley come here"

"what!! pucking charlie"

쉬는 시간에 브레들리라는 호주 청소년을 불렀다. 그리고는 저 뒤에 휴게소로 갔다.

"Can I teach you bad languge? it is worst than 18, jola. It is totally different!"

"what? really? tell me. tell me pucking charlie"

걸려들었다. 녀석은 잽싸게 나의 큰 그림에 걸렸던 것이다.

외국도 puck 보다 영화에서 보는 익히 더 심한 말이 있듯 나는 녀석에게 jola 18 보다 훨씬 더 심한 욕이 있다고 했고 10대의 특성답게 온 나라의 욕을 다 배우고 싶어 하는 녀석의 학구열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의사항은 절대 다른 한국인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만약 그랬다간 그 한국인이 어이없이 웃으면서 널 볼 거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말했다.

"The pucking shit worst word in korea is 대한독립 만세!"

"데화도뤱마세"

"No, you wrong. again 대한 독립 만세"

"대하도립만쒜"

"what the pucking your pronunciation. again 대 한 독 립 만 세"

"대하독리마세"

"try again. When your pronunciation is perfect, you can say everyone"


그렇다. 난 대한민국 국가대표이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한 청년으로써 호주 청소년이 더 이상 한국말을 더럽히는 것을 볼 수 없었고 한국에서 제일 심한 욕은 바로 '대한독립만세'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이 발음을 정확히 하지 않을 때 까진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다음날, 브레들리가 날 불렀다.

"Hey pucking cahrile come here. I'll show you"

역시나 집에서 열심히 연습했나 보다. 발음이 아주 정확하진 않아도 꽤 비슷해졌다.

"대환독륍만세!"


이 정도면 다른 한국인이 듣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 더 알려줬다.

"OK you got it, but one more I'll teach you"

"come on pucking charlie"

"When you say 대한독립 만세, you have to do this"라고 말하고 양팔을 손 위로 올리라고 했다.


브레들리가 의아해했다. 약간의 의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말해줬다. puck이라는 단어의 손짓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듯이 이렇게 심한 욕은 두 손을 다 들면서 해야 한다고 했다. 조막만한 모션도 아닌 큼지막한 모션이 필요하다고, 그래야 욕에 대한 감정이 더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알겠다고 하고 내 앞에서 했다.

"데환독륍만세" 하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OK bradley. It's perfect. I'm warning you please don't say any korean please"

"OK pucking charlie, Thank you"


하지만 난 난 녀석을 매우 잘 알았다. 녀석의 웃음 짓는 눈빛을 보아하니 분명 한국인한테 가서 먼저 할 기세였다. 다른 한국인한테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브레들리는 그렇게 다른 애들한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두 손을 들면서 외치고 또 외쳤다. 그게 대한민국의 가장 심한 욕인 줄 알고는!


근데 다음날 대박사건이 터졌다. 보통 때와 같이 출근을 했다. 저 멀리서 분명 Hi pucking charlie라고 외쳐야 할 소리들이 들리기는 하는데 앞에 이상한 문장이 붙었다.

"대환독륍만세 pucking cahrlie"

수단, 인도, 방글라데시, 호주, 아프가니스탄 녀석들이 날 보면서 한 명도 빠짐없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것도 양손을 다 들고선!!!


난 그들에게 웃으면서 puck을 날렸지만 속으로는 매우 뿌듯했다.

고맙다 얘들아! 정말 대한이 독립 만세다!


유관순 열사님!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저들은 그 참된 뜻을 모르지만 그래도 외쳐 부릅니다.
대한독립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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