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미래만 보고 살아야 하는 건가?
‘정상’이 뭐지?
나는 그때 왜 화를 냈을까?
나는 누구일까?
이런 질문, 해 봤나요?
질문해 봤다면, 답은 찾았나요?
나는 여러분이 자신만의 의견을 갖기를 바랍니다. 물건에 대해, 사건에 대해, 어떤 행위에 대해 왜 그런지,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얻은 답은 여러분을 흔들리지 않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나만의 기준이 없다면 그때마다 고민에 휩싸이게 될 거예요. 고민하는 시간에 대한 우려가 아닙니다. 같은 고민을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것도 같은 방식으로요. A와 B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어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내일도 같을 거예요. 그건 참 효율적이지 못할뿐더러 무척 피곤한 일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철학이라는 것을 참 고리타분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사실 그 이름 말고는 잘 모르겠는 사람들과,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전부였으니까요. 그것을 도대체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철학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몇몇 문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 _ 플라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_ 볼테르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을 타인들 속에서 찾는다 _ 공자
잘 살펴보면 모두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할 법한 말입니다. 언젠가 한 번쯤은 고민하게 되는 그것이기도 하고요. “반성할 줄 알아야지.”, “할 말이 없어지니까 내가 큰소리치고 있더라고.”, “그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결정은 내가 한 거니까.” 그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철학을 ‘삶을 대하는 태도’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철학’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우리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주지만, 알고 보면 아주 가까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이미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지요.
철학을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한다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반드시 철학이 필요하다 볼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 철학자의 말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주변 어른들이나 선배 혹은 친구의 태도를 배울 수도 있어요.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배워도 되고요. 책을 통해서도 나만의 그것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명쾌하게 결론짓기는 쉽지 않거든요. 나도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에 소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삶의 기준을 세워 나의 방향성을 알게 된다면 어떤 갈림길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고자 다짐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다른 의견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놓기 어려운 유혹입니다.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 또한 본인의 의견이라면 존중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수의 논리에 따르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있을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결정까지 무비판적으로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의 삶을 좇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들은 참 멋지고 예쁜 사람들입니다. 인생을 즐길 줄도 아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가만 보니 조금 전에 본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외모, 태도, 행동, 심지어 장소까지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어느 한 곳에 정도 이상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다수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우려스럽습니다. 물론 단순히 무리의 크기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 있는 개개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이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볼 일입니다.
특정 브랜드의 옷과 스마트폰, 숏폼 영상, 통 큰 바지, 디저트…. 우리는 늘 새로운 유행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압박을 느낍니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그걸 사야 해.’, ‘꼭 경험해 봐야 해.’ 하고 속삭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땐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남들이 다 하니까 그래야 한다고 믿는 거야?’
누군가는 대세를 따르며 큰 위안을 얻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들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 나 자신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면 다행이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를 보지 않고 다른 이들의 눈을 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가 궁금한 거예요. 거울에 비친 나를 보지 못하고 다른 이의 눈과 입을 봅니다. 무언가 이상하지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삶에 나를 꿰맞추지 않게 됩니다. 혹여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라면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를 유혹하는 대중의 욕망을 가볍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같지 않음’ 혹은 ‘같음’에서 오는 스트레스의 유무는 나만의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 아주 힘이 듭니다. 내 의견에 반박하거든요. 그것도 꽤 논리적으로요. 내심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습니다. 좀 피곤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이 좋습니다. 멋있어요. 대하기가 편치 않을지언정 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쁘거나 틀린 것은 아니니까요.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는 거고요. 행여나 그 친구들이 틀렸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 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갖추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