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그리고 싸움의 기술

싸울 거면 제대로...

by 한수

미리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반드시’란 없지요. 가능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해도 우리는 결국 어느 적당한 날을 맞아 싸우게 됩니다. 싸움의 불씨는 매우 다양합니다. 알다시피 사람의 마음은 매우 복잡하고 또 예민하거든요. 내 말에 바로 호응하지 않아서, 양말을 뒤집어 벗어서, “벌레다!” 외쳤는데 바로 달려오지 않아서, 나를 그들과 똑같이 대해서, 나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결정해 버려서,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아서 싸웁니다. 심지어 잘 지낸 어제와 똑같은 상황에서도 화가 날 수 있습니다. 어제 잠시 화를 참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합니다만, 그래도 싸움은 정말 싫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피해 버리고도 싶어요. 아내가 화를 내거나 서러워할 때면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거든요. 어떻게 해야 마음이 풀릴지 고민을 해야 하는데 고민한다고 반드시 이유를 찾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운이 좋아 이유를 찾는다고 그대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다음이 있어야 해요.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그런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진심 어린 사과의 말과 함께 건네야 합니다. 과정마다 에너지 소모가 엄청납니다. 핵심을 잘못 짚으면 내가 잘못을 했던 안 했던 그 과정으로 인해 더 큰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일순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저 역시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 때는 아무리 해도 진정이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게 정답인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도 저도 안 되는 날엔 부부싸움이야말로 그 어느 싸움보다 무섭게 느껴집니다.


‘대부분의 부부가 싸울 거야.’


그 상황이 너무나 힘들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통계 자료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어도 상대방의 모든 것에 이견이 없을 수 없지요. 참고, 이해하고, 모른 척할 뿐입니다. 아내와 나는 다른 사람이지만 많은 것을 ‘함께’ 해 나가야 해요. 그러기로 약속했습니다. 가능한 죽을 때까지 연속적으로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맞춰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같은 의견이 아닌 이상 언젠가는 본심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앞에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을 예정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싸움 없이 지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왕 그리 될 거라면 그에 걸맞는 대비를 해야겠습니다. 바로, 잘 싸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겁니다. 물론 싸움을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싸움이 시작되면 왈칵 화가 나서 논리적으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곤 하지만, 이기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가능한 아내의 마음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내 뜻을 전달하면 좋겠습니다. 일어난 싸움을 잘 활용하는 것이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늘 모든 것에 솔직할 수는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지요. 보통은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상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요. 의견은 있지만 이러나저러나 전혀 상관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싶어 안달날 때가 있어요. 맞습니다, 서로 다툴 때지요. 스스로를 다독이며 애써 참아 왔던 것들을 더이상 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펑’ 터지는 겁니다. 이때만큼은 참지 않습니다. 참을 수도 없지요. 섭섭하고 화났던 일들과 그에 따른 감정을 봇물 터지듯 뱉어냅니다. 에둘러 말하지도 않아요. 정말 화가 나면 배려하는 마음도 옅어지잖아요.. 이왕 터져 버린 거 그동안 못한 말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겠습니다.


좋게 생각하면 평소 드러내고 싶었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때인지도 모릅니다. 일부러 상처를 주고자 함이 아니라면 이거야말로 절호의 기회예요. 게다가 희한하게도, 감정이 격해진 그때 서로의 솔직함이 잘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아내와 싸우던 어느 날, 그 난리 통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말들이 뭐가 있더라?’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진심을 들여다보면 상대방을 더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격한 싸움이 속 깊은 대화로 이어질 수도 있지요. 의지만 있다면요. 우리는 그렇게 싸움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애써 피한 싸움은 어떤 형태로든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정리하지 않은 감정들은 잘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물론 싸움 없이 솔직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언젠가 싸우게 될 거예요. 부디 잘 싸워서 그 어수선함 속에서도 얻는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지켜야 할 선은 있습니다. 아내의 약점이나 자존심은 건드리지 마세요. 이미 결론 지은 일들을 끄집어내는 것도 금물입니다. 문제 자체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화해는 빠르게 해야 합니다. 소강상태에서는 별별 생각이 다 들 겁니다.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그런 시간을 주지 말고 화끈하게 손을 내미세요. 거절해도 짜증을 내도 도전해야 합니다. 사실 저에게도 그 부분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도 횟수도 적어요. 하지만 먼저 손을 내밀어서 퇴짜 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말했다시피 우리 싸움의 목적은 이기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해를 잘 하면 진심을 나누는 시간이 생길 수 있으니 이 또한 잘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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