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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Sep 26. 2024

고게 그 심수봉 노랜디

3장 이해타산(5)






“이이. 그른 게 듣고 잡은 겨?”


“뭐야? 누구세요?”


“나? 나여. 지갑.”


“지갑? 근데요? 어디 계세요? 잘 안 보이는데?”


“거 재봉틀 틀판 위를 함 봐 바. 나 거깄으.”


겨우 검은색 끄트러미만 보여주며 에쎄 담배와 에센스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가죽 지갑이 갑자기 키들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이이인짜루다가 재미진 얘기를 많이 알고 있거덩? 왜애냐? 나는 여태꺼졍 그 어떤 물건들 보담도 장수를 햇그덩. 것두 이제상과 염희주의 연애질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할 수 있었던 고 핑크빛 시절 때부터 말이지!”  


“헉! 대박! 선생님! 저 그런 얘기 딥따 좋아하거든요? 얼른 듣고 싶어요! 빨리 말씀해주세요! 제발요!”


“겨? 같이 함 들어볼 텨? 들어볼 테믄 다들 드루오고.”


이번에는 너도 나도, 심지어 파란 박스 안에 있던 이들까지도 성화였다.


“요거슨 말여. 제목이, 캬— 내가 또 네이밍 쎄엔쓰가 쫌 있거덩. 함 요 라뷰 스또릐에 어울리는 걸루다가 말해볼텡게 들어뱌.”


“네. 뭔데요? 제목이 제일 중요해요. 뭐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받아 적을까요?”


“아이, 오바는, 뭐시냐믄, 큼, 행운이 물어다 준 싸.랑!”


“행운이 물어다 준 사랑? 지금 그거 엄청난 복선이다 그죠?”


“이이—, 뭘 아네이. 나 미리 말해두는 겨. 나 진짜루다가 대단한 이야기꾼이여. 긍게 한마디두 놓치지 말여. 언제 반전을 줄지 몰릉는 겨.”


“알겠어요. 빨리 시작해주세요!”


“내가 첨에는 사실 희주 손에 있었그든? 너들 그때 그 사람이라는 노래 알어? 그 심수봉 노랜디. 하, 비가 오믄 쌩각 나는 그 싸아람……,”


“어! 저 그 노래 알아요!”


“너, 담배 너, 차으암, 너 어디 공장 출신이여? 충청도여?”


“넵! 맞습니다!”


“그르믄, 너 나랑 삼춘 조카 지간이네. 이이.”


“그렇습니까? 그런데 삼촌, 염희주씨 손에 있었는데, 어떻게 이제상씨한테 가시게 된 거죠?”


“스아실 나는 충남 공주 출신이거등? 거기가 피혁 공장에서 피혁을 떼서 가죽 장갑, 벨트, 지갑을 만드는 데였어. 근디 머 가방은, 너무 원단이 많이 들어서 쫌 하다 두고서이. 암튼 거그서 나를 희주한티 넘겨 준 싸람이 희주 외삼촌인디, 고 시절이 참, 어두운 시절이었걸랑? 희주가 잘 다니던 대학을, 휴학을 해부럿지이.”


“왜요? 근데 그 시절이면…….”


“1980년도. 고때 바루 휴학해야 했어.”


지갑은 그 시절 생각에 잠겨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며 뜸을 들였다.


“얼른 더 말해보게나. 내 그냥 기다리고 있기 어려울 정도로 자네가 말을 참 잘하네.”


더는 잠자코 있을 수 없었던 윤조 에센스가 가까운 아랫 사람을 대하듯이 친근한 어투로 말을 붙였다.


“예에— 마마 분부 받들어서 더 말해 볼게요이. 고 전 해에 공장이 쪼매 이상했단 말여. 뭐가 막 씨꺼믄 사람들이 막 들이닥치구 우리같은 제품두 누군 보따리에 싸서 막 가지구 가 불구, 여튼지간에 여엉 심란혔어. 근디 아이 조카 딸이 지갑 하나 주라니까 줬지. 그랴서 포장 박스도 안 뜯은 내가 희주 방에서 한 몇 달을 같이 살다가, 또 이상해. 날 자꾸 어딜 델꼬 다니는 디, 살던 집도 아니구, 갑자기 온 식구가 같이 한 방을 쓰구, 뭔 사람들이 오면 막 소리지르구, 희주한티 너만 오면 너 아부지 어무니 고생 안 헌다구 그르케 붙잡고 말을 허구, 그르믄 희주 어무니가 얘를 또 왜 데리구 갈라구 하느냐 차라리 날 팔아라. 이런 소릴 하시구. 하…… 그렸어이.”


“빚졌네.”


“이이— 너 용허다. 졌어. 것두 연대 보증으루다가.”


“하휴…… 그때 빚지면 장난 없을 땐데.”  


에쎄 담배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어쪘튼, 희주가 고날 하안참을 울드니, 무섭다구 햑교를 간댜아. 그때 막 시위두 하구 학상들 막 붙잡혀서 맞아 죽구 하던 때라서 안 된다고 했드니. 사법 고시생처럼 보이믄 그게 더 안전하데는 겨. 그랴서 가방을 막 단단히 책이랑 해서 싸가지구, 사실 나 고때 가방 안에 계속 있었거등? 고랴서 걍 같이 따라갔지이. 이이.”


“갔더니, 막, 그 선도하구 그런 사람한테 붙잡혔어요? 뭉둥이 들구 있던?”


“아이— 거까진 아니구. 아이, 가다가 너 얼굴, 입술, 왜 터졌냐. 여자애가. 너 운동허는 애냐. 그랬는디, 울 희주가 똑똑햐. 자기 시집 안 가고 고시 본다 했다가 아부지한테 뺨따구 맞구 왔다믄서 울면서 그짓말을 했어. 고 눈 씨뻘건 선도부 앞에서.”


“허어어—! 역시, 어마마마의 문제 해결 능력은 차원이 다르옵니다.”


“허허, 그렇소. 그러니 이 집 안 내명부를 꽉 잡고 계신 것이겠지.”


한방 에센스들의 감탄을 듣던 지갑이 그 사이 잠시 딴 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와 말을 이었다.


“그랴서 들어간 데가 통키타 동아리 방이라구 허는 덴디. 원래 우리 희주가 노래를, 노래를, 그르케 잘하는 애였거등? 근디 거기 그 어두운 밤에 키타가 달빛을 받아서는 몇 대가 세워져 있는 겨. 고거슬 이르케 따악 햐서 희주가 저 심수봉 노래를 몇마디 불르는데, 고때 문이 화아아악!”


“악! 엄마야! 깜짝이야!”


모두들 에쎄 담배가 내는 소리인 줄 알았지만 실은 윤조 에센스의 비명이었다.


“허휴, 마마, 마니 놀랬나벼, 이이, 미안혀어어. 이이이, 제상이 형님이 고때 딱 드루와써.”


놀라운 전개였다.


“드루와서는 문을 냉큼 잠그고, 희주 입을 딱 틀어 막은 겨. 그러믄서 밖에서 나는 군화 발소리를 듣고 숨죽이다가 잠잠해지니 놔주는 겨. 참엇던 숨을 화악 쉬고는. 너 여서 뭣 허는 겨. 그 노래 불르면 너 바로 죽는 거 몰러? 그러믄서 겁 먹은 희주를 달래드니 휴학 했다는 소리는 들었다. 근디 동방 열쇠는 어뜨케 갖고 있었냐아. 이이, 그니께 희주가 민망스르븡께. 집에 빚쟁이가 와서 잠시 피신을 혔다. 이실직고를 혔어. 그랬드니 눈에 뭐 달빛에 살아아알짝 희주 얼굴 주변이 좀 비치고 했냐벼. 어디서 빨간 약이랑 연고를 쫌 갓꾸 와서는 발라주는 겨. 제상이 형님이. 그르케 있다가, 복학하고 같이 동아리 활동 조금 밖에 못했어도 작년에 심수봉 히트 칠 때, 그때 그 사람 부르는 거 보고 맴이 참 좋았다는 겨. 참 어여쁜 애가 노래도 잘 불른다고.”


“어라? 그거 거의 플러팅 급인데?”


“글치. 그런 말을 구우우욷이 안 허거등. 이 형님이. 난중에 보니 그 말이 첫 눈에 반했다 뭐 그 뜻이었으. 이이, 그랬제. 근디 어쪘건 그르구 나서 또 희주는 계속 빚쟁이들 헌티 쫓겨다니고 결국에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부럿다는 겨. 고것을 또 희주가 알고 찾어가서 자기 애끼던 걸 챙겨야 헌다고 막 짐을 보따리에 싸 챙기믄서 우는디……. 애지간히 서럽게 우는가. 빚쟁이들 빚잔치 허고 남은 폐허 된 집 안에서. 맻 시간을 고럇제.”


“울지. 서럽지이.”


“이이. 마이 울었거등? 고게 또 한 1년 지난 후여. 근디 인쟈 이번에도 또,”


“또 동방?”


“이이—, 잘 아네. 갔어. 뭔 생각인지 어쩔라고 그라는 건지. 인제 학교 다닐 행편이 안 되는디야. 그래서 나도 맘이 쪼까 안 좋고 그런 겨. 같이 가두. 근디 사람이 운명이란 게 있걸랑. 나는 그르케 생각해. 그려서 나는 호옥시, 혹시라두 말여. 고때 만난 고 남자애, 우리 제상이 형님을 또 볼랑가 싶었단 말여.”


“그치. 라뷰 스토리에 운명이 빠질 수 없지.”


“내 말이! 고런디, 딱! 나타났으야! 아주 딱! 근디……, 그때 난 첨 알았네. 울 희주가 딴 놈을 조아하고 있다는 거슬?”


“엥?”


다들 황당하단 투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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