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못 믿겠고 나도 못 믿겠어 - 공포회피 (혼란) 애착유형
올 것이 왔다.
혼란 (공포회피) 애착유형은 말 그대로 불안과 회피애착유형이 섞인 것이다.
필자는 이 유형이다 하하.
공포회피 애착유형이 자라온 환경은 말 그대로 혼돈이었다.
부모의 비일관적인 태도가 우리를 혼란시켰다.
나의 아버지는 가족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아빠가 일찍 들어오시는 날엔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미리 경고를 했었다. 행동 똑바로 하라고. 물론 똑바로 했던 안 했던, 아빠를 똑 닮은 나는 그의 주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아빤 14살의 나에게 “넌 사람을 질리게 해” "넌 결국 널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너를 떠나게 할 거야"같은 아픈 말을 하셨지만 며칠 후 술에 취해 들어오면 나를 꼭 안아주며 “널 위해선 내 목숨도 바칠 수 있을 만큼 사랑해”하고 애정을 표현해 주셨다.
그럼 난 또 아빠를 기피한단 죄책감에 괴로웠고 모두가 무서워하는 아빠가 안쓰러워 숨죽여 울었었다.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실 땐 너무나 유쾌하고 재밌고 지혜로운 분이셨다 - 난 그런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 또 우러러본다. 하지만 다음날엔 또다시 아버지는 언제 무엇에 터질지 모르는 싸늘함과 긴장감 그 자체로 돌아오셨다.
source of safety = source of fear
내가 제일 믿는 사람이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었을 경우.
나를 지켜줘야 했던 존재가 나를 반복적으로 해쳤을 경우.
어느 날은 꿀 떨어지는 눈으로, 어느 날은 벌레 보듯 바라보았을 경우.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눈치를 아주 빠르게 키워나간다.
그래서 과잉각성이 (hypervigilance - 주변에 대한 경계와 감정의 감지) 극도로 높은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어디에 있던 상황과 공기를 먼저 살피고 눈치와 비위를 맞추면서 나를 점점 잃어간다. 불안형의 패턴이다. 이유가 아무리 억지스러웠던, 나를 공격하던 보호자가 나에 대한 무언가를 트집 잡아 공격의 불씨를 당겼었다면 더더욱 "문제는 나"라고 세뇌된다. (예를 들어 아빤 내 "눈깔"을 자주 트집 잡아 화내셨다. "너 눈 왜 그렇게 떠?" 네모나게 뜰 걸 그랬다)
이렇게 과잉각성의 상태로 사는 건 아무리 당연해졌고 숙련됐다 한들 절대 익숙해질 수 없다. 너무나 지친다. 그렇게 온몸에 힘 잔뜩 들어간 상태로 매 순간을 살아내다 혼자 있으면 당연히 이 과잉각성모드를 끌 수 있으니까 혼자 있을 때만 안전하게 느껴진다. 오직 나만이 안전하다. 회피유형의 발달이다.
연애할 땐 연락 같은 사소한 것들에 너무나 촉이 서있기 때문에 혼자 있어도 과잉각성모드가 꺼질 틈이 없다. 유일하던 안식처를 앗아간다. 그래서 아예 "나"를 잊고 불안형이 되어 문자의 빈도, 길이와 성의의 척도를 심사하고 만약 내가 느끼기에 어제보다, 몇 달 전 보다 조금 더 단답형이면 버리받길 두려워하며 지냈던 뇌에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목소리가 들린다.
"어 야 이 사람 봐 너 곧 버릴 듯. 먼저 버려버려."
"봐, 또 떠나네. 역시 난 사랑받지 못하나 봐. 더 사랑하고 더 매달려. 더 헌신하면 너에게로 돌아올 거야."
그래서 혼란형은 관계에 따라 불안형으로, 혹은 회피형으로 왔다 갔다 한다.
내가 싫어하는 "나"와 오로지 있기보단 타인과의 애착을 선택하는 불안, 하지만 나 자신 말곤 아무도 믿지 못하는 회피 - 타인도, 나도 못 믿는 아주 애매하고 공허한 곳에 우두커니 서있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불안정 애착유형들이 안정적인 사랑을 배우는 방법들은 앞으로 하나하나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