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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선 Jun 13. 2023

그 사람은 왜 먼저 떠나고 먼저 상처 줬을까?

사랑에서 "갑“인 사람들의 전말 - 회피형 애착유형

"다른 사람 상처 주지 말고 지들끼리 좀 만났으면"


난 혼란애착유형을 가졌지만 사랑에선 불안을 더 강하게 느끼기에 대부분 만난 애인들은 회피형이었다. 나 역시 많이들 말하는 "회피형은 연애할 때 피해야 할 유형"이란 말에 지극히 동조했다.


회피형은 차갑고, 감정이 메말랐고, 무심하고, 이기적이다고 생각했다. 나도 회피성향이 꽤 강한데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회피형은 특히 더 동정받거나 이해받지 못한다. 모두에게 욕만 엄청 먹을 뿐, 필요한 따듯함을 받지 못하는 이 패턴은 회피형을 점점 더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회피형 인간의 중심은 "겁"이다. 우리 모두 똑같이 두려울 뿐이다.


불안애착유형에 관한 전 글에서 그들은 부모나 어른의 감정을 돌보거나 눈치 봐야 했다고 했다. 많은 회피애착형들은 어렸을 때부터 혼자였다. 실재적으로 방치당했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표현하거나 받아줄 사람 없이 그 작은 몸과 머리에서 빙빙 돌다 깊은 곳에 사그라들었다.

맞벌이하는 부모나 이혼가정에서 자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아이들, 혹은 너무 일찍 자립심을 강요받은 아이들은 불안보다 회피적인 성향을 가질 확률이 높다. 그래서 회피형은 자주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거나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한테 "가해진"것 만이 트라우마가 아니다.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던 것 역시 트라우마다.


보호자와 많은 시간 함께였어도 감정을 거부당했거나 부모도 극심한 회피성향을 띠었다면, 나의 감정이 짐이라고 여겨졌다면, 아무것도 아닌 듯 쳐내졌었으면, 그 아이는 감정 자체를 느끼는 걸 억제한다. 가끔 감정 따윈 사치라고 느끼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 겉으론 의젓하고 침착한 철든 아이로 비쳤겠지만 억누른다고 감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저 나 역시 내 감정에서 기피하는 걸 배운 것뿐.


너무 일찍 실망을 알아버리면, 마음에 문을 닫아버리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부모와의 감정적, 혹은 실질적인 교류가 극히 적은 아이는 이 무관심이 스멀스멀 말하는 "너의 부모는 널 사랑하지 않아. 그래서 혼자 내버려 두는 거야"라는 잠재의식의 메시지를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이 어린아이가, 자신의 부모가 필요한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걸 의식적으로 이해하면 어떻게 될까?

부모는 감정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아이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보호자 없이 아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부모가 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지킨다는 믿음이 없으면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겠지. 나를 개조해 나가겠지.


반대로 감정의 바운더리가 약하고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쓴 불안형의 부모가 있었다면, 감정적인 과부하에 질식한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감당해야 했던 너무 많은 감정들에 대응하려 아예 셧다운 하는 것을 배웠을 수도 있다. 그러다 아이는, 또 상대의 감정이 나를 침식할까 두려운 마음에 깊은 관계는 꺼리는 무심한 회피형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회피형은 관계나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을 안 한다. 해리(dissociate)하며, 의식을 분열하며 살아가거나, 커리어 같은 외부적이고 감정교류가 없는 것에 몰두하기도 한다. 나는 물론 타인의 감정을 관찰할 기회조차 많지 않았으니까 느끼는 깊이 자체를 얕게 만들 수밖에 없다. 정말 덜 사랑하고 덜 화나고 덜 슬픈 게 아니지만, 인지자체가 어렵다. 막아내는 걸 너무 잘한다.


어느 관계던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합을 맞춰나가려면 대화를 하고 표현을 해야 한다. 가끔은 좀 껄끄럽거나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것들까지. 하지만 회피형은 그런 감정의 표현을 들었을 때 "너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듣는다.

상대방의 감정이 너무나 두렵고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그래서 외면한다. 자신의 감정이 외면당했듯.


회피는 남에 대한 불신에서 이루어진 방어적인 독립감으로 생활한다.


마음을 닫고 "난 나만 있으면 돼"를 억지로 되뇌며 타인에 대한 의심이 너무 깊게 자리 잡아버렸다.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진심으로 감정이 생기는 것은, 그만큼 상처받고 실망할 확률이 커지는 것이기에 깊은 관계의 맺음을 의식적이 로던 무의식적이 로던 최대한 방해한다. 아니면 가끔 너무나 두려운 부모밑에서 자라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가정을 떠나 혼자 있는 침묵만을 갈구하며, 나중엔 애인 역시 너무 가까이하길 꺼린다. 회피형의 바람에, 무심함에, 거리감에 상처받았다면 당신에 대한게 아니었단 걸 꼭 알아주길 바란다.


만약 본인이 회피형이고 "역시 난 사랑에는 안 맞아", "난 너무 망가졌어", 혹은 "사람은 너무 피곤해" 이런 생각을 한다면 부디 나도 피해자 - 너무 일찍 혼자였던 날, 나의 감정을 따듯하게 인정해 주려 노력해 주길 바란다. 나 포함, 내가 아는 회피형들은, 많이들 자기 자신에 대한 compassion (연민? 공감?)이 극도로 낮으니까.

회피형이 제일 차갑게 묵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감정이니까. 그리고 우리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한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

@han______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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