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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선 Oct 10. 2023

나를 재양육하는 방법

이미 마음을 닫은 나의 내면아이의 신뢰를 얻어내기

전 글: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


나를 미워하던 사람이 갑자기 잘해준다면 어떠시겠어요?

갑자기 왜? 무슨 꿍꿍이지? 하며 의심할 거예요. 함부로 믿었다 다시 전처럼 돌아갔을 때 꺾일 기대가 더 비참하잖아요.

나 자신을 대하는 건 타인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차가운 무관심과 못된 말을 남발하다 갑자기 내면아이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처음엔 당연히 경계할 거예요.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 슬펐는지 아무리 말을 해도 제대로 듣지 않았으면서 왜 이제야 나를 사랑해 주려는 걸까?


많은 내면아이 치유법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저의 어렸을 적 모습을 시각화해서, 그 아이를 지금의 나로 만나는 명상법이었습니다. 마주한건 학교 화장실칸에 숨어서 울음을 먹는 9살의 저였습니다.


전 9살 때 낯선 나라에 이사와 은따를 당했습니다. 외톨이였던 전 점심을 혼자 먹을 때마다 받았던 비웃음과 눈길이 두려워서 화장실에 숨어 도시락을 먹었어요. 그때 엄마에게 "점심 맛있게 먹어" 한 줄이라도 좋으니까 도시락에 작은 쪽지를 가끔 써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습니다.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그 당시엔 몰랐지만 아마 말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는 외로움 속에서 전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써주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엄마가 쪽지를 써줬을 거야 하며 매번 기대했지만, 도시락가방을 탈탈 털어도 쪽지는 없었어요. 여기서 간접적으로 9살 아이의 무의식이 받아들인 것은

1. 나의 부탁은 들어줄 가치가 없어.

2. 난 친구도 없고, 가족들의 사랑도 받지 못해.

였습니다.


물론, 별거 아닌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 일은, 두렵고 냉랭했던 집안 분위기와 친구는커녕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딴곳에서의 따돌림이란 상황과 맞물려 훨씬 심각하고 처참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이 기억에 슬플 때마다 전 제 자신에게 "뭐 이딴 걸로 슬퍼하냐고, 이보다 훨씬 더 심한 걸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쩜 이리 철이 안 들까... 나약하고 한심하다"이런 말들로 저를 구박하고 제 감정을 짓밟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저 쪽지를 못 받았단 게 아니었어요. 중요한 건 9살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었었고, 그대로 화장실 칸에 혼자 방치됐었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는 아직까지 내 안 어딘가에서 떨고 있단 것이에요. 누군가에겐 별일 아닌 것들도, 나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지는 오직 나만 알잖아요. 아무도 몰라줘도 적어도 나는, 나를 안아줘야 하지 않을까요.

 

"네가 필요한 게 뭔지 말해줘야 줄 수 있어."

그래서 전 9살의 내면아이에게 여러 번 확신을 줘야 했어요. 네가 필요한 걸 말하면, 이번에는 내가 꼭 들어주겠다고.


내면아이를 찾았다면 그 기억을 정화시켜줘야 합니다.

1. 더 높은 관점에서 내가 받아들인 게 무조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있단 걸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기.

그때 전 아이였습니다. "아, 엄마가 우울해서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안됬구나"하며 합리적인 상황판단과 사리분별이 안 되는 나이였어요. 현재의 내가 이 아이에게 새로운 관점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1. 따돌림을 당하고 있단 걸 모르는 엄마에겐 충분히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을만한 부탁이었고

2. 엄마의 심리상태가 약해졌을 때였기에, 세심히 나를 챙길 여유가 부족했을 때였어.

널 사랑하지 않아서 쪽지를 안 써준 게 아니야. 상황이 너무 안 좋았어.

라고 따듯하게 이해시켜 주는 게 첫 번째였습니다.

전 사랑 못 받는다는 두려움이 너무 거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트라우마를 겪은 아이의 뇌는 발달이 지체될 때가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애정결핍과 경계선 성격장애 증상들을 보일당시 “내가 버림받는다”는 것에만 사로잡혀 내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위협으로 감지했습니다. 모든 걸 저의 위주로, 제가 받는 사랑을 위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 유아적인 생각방식의 중심엔 혼자인 게 너무 두려운 내면아이가 있으니까, 관점을 더 넓혀 상황을 바라보는 법을 내면아이에게 가르쳐주는 건 - 제가 저한테 가르쳐주는 건 - 굉장히 중요한 재양육 프로세스 중 하나였습니다.



2. 하지만 사실과는 무관하게 나의 감정들이 얼마나 타당한지 인정해 주기. 늦게라도 억눌러온 감정들을 느껴주기.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안 좋고, 누구의 탓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네가 느낀 슬픔, 실망감, 외로움 - 모두 느낄만했어.

혼자 숨어 울면서 먹던 밥, 목맥혀도 누가 내가 여깄단 걸 알아차릴까 숨죽여 삼켜낸 한입한입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기억해.

전 그 아이를 안는 상상을 하며 아주 오래, 여러 번 함께 울었습니다.



3. 그리고 내가 바랬던 사랑을 내가 들어주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집안 곳곳 쪽지를 써 붙였고, 가끔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1년 후 열어본다던가 - 제가 어릴 적 바랬던 방식으로 저의 사랑받고 싶은 니즈를 충족시켜 주었어요. 이걸 꾸준히 하면 할수록 저를 (내면어른을) 불신했던 내면아이는 (처음엔 의심쩍었지만) 점점 마음을 열고 내면 어른에게 자신의 욕구를 소통했습니다.

이 과정이 겉으로 어떻게 보였나면

'내면아이의 트라우마를 억누르기위해 자기 파괴적인 방어기제에 의존함’ —>

‘내가 휴식이 필요할 때, 사랑이 필요할 때, 응원이 필요할 때, 즉각 즉각 나 자신에게 줌으로 자신이 사랑받음을 아는 내면아이. 찢어져 싸우는 대신 서로를 믿는 내면어른과 아이가 함께 합동하여 “우리를”위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었어요. 누가 봐도 왠지 모르게 아슬아슬 위태로워 보이던 전, 누가 봐도 안정되고 편안해졌습니다.


우리 안엔 여러 명의 아이가 있어요. 거부당한 순간순간에 홀로 머물러있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아주고, 다시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아이들의 두려움이 현재 나의 결정들을 결단 내리지 않게, 이 아이들의 감정이 현재 나의 눈을 가리지 않도록.

자기 사랑이 어려운 우린, 높은 확률로 낮은 자기 자비를 가졌을 거예요. 그래서 내면아이 치유는 15살, 20살 이런 성장기 때보단 아주 어린아이일 때의 나를 먼저 마주하는 게 더 쉬운 거 같아요. 겁에 질린 이 어린아이를 무시하거나, "모든 게 네 탓이야, 넌 망가졌어"라며 못되게 대하는 건 15살 때 나를 핍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거든요.



///

두 번째 예시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무조건적인 포용만이 정답은 아니더라고요.


(게으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

무관심 속에 도피를 배워온 내면아이는 미루는 습관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제가 저를 사랑하는 건 단호함이었습니다.

내 모든 면을 포용하는 건 내가 늘어지고 할 일을 미루고 엉망으로 생활하는 걸 괜찮아 괜찮아하며 방치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1. 원인 파악 - 결과를 마주하기 무서워서 네가 자꾸 할 일을 미루는 게 버릇이 됐구나. 맞아, 우리 그때 모든 게 너무 거대하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졌어.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어.

2. 논리 - 근데 이 패턴은 우리의 발전을 막아. 미루면 미룰수록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 무관심 속에서 살았던 너, 이젠 내가 단호함으로 사랑할게.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은 지키는 것 -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내가 필요했던) 어른이 되어 미루려는 내면아이의 두려움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되, 할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엄격하게 되새기는 모습 역시 자기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큰 진전이 없다 느껴져도 조금만 더 진정성 있게, 계속해서 나와 대화를 시도해 주세요.

꾸준함을 보여주면서 믿음을 줘야 해요. 내가 나에게 마음을 열 때까지. 저와 제 지인들의 내면아이 명상 후기는 "어린 나를 만났을 때 해야하는 것"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내면아이의 목소리가 뭔지 잘 구분이 안 가신다면 부정적인 감정들에 집중해 주세요: 부정적인 감정 사용법.

높은 확률로, 내면아이가 가르쳐주고 있는 방향이 보일 수 있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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