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근원은 저항
슬픔, 증오, 원망, 분노, 죄책감.
여러분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세요?
트라우마와 결핍은 건강하지 못한 애착, "이래야 해"하는 고정관념, 경험하지 않은 건 두려운 본능을 극대화하여 상황을 명확히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때 부정적인 감정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주어요. 우리를 안전하게 하는 게 최우선인 에고의 지휘아래인 의식적 인식보다 더 정확한 심리상태의 측도가 돼줍니다. 내가 흐린 눈 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매우 명확하게 가리켜요.
어떤 관계 안에서 반복해서 느끼는 서운함과 실망을 무시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불행하단걸 인정하면 애써 부정해 온 관계의 끝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할 거 같았거든요. 저의 결핍과 불안정한 애착유형은 관계를 잃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게 했습니다. 나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전 제 감정들을 다룰 줄 몰랐어요. 너무 어릴 때 느낀 감당 못할 슬픔과 불안은 당시 상황에 대응하는 방어기제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하는 법. 필요한 딸, 사랑스러운 딸,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 안전할 거라 굳게 믿었던 마음은 ‘내 울타리 안으로 한번 들이는 사람에겐 무조건적으로 헌신하고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단' 강박을 만들었어요. 제가 느낀 반복된 서운함은 혼자서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는지 알려주던걸, 관계가 끝나고 나서야 이해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 없인 우린 그 자리 그대로입니다. 내가 현실의 모든 면에서 안주한다면, 우린 움직일 이유도 모멘텀도 없어요.
슬픔, 분노, 공허함,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리를 더 나은 곳,
더 잘 맞는 곳으로,
언젠간 내게 필요했지만 이젠 시간을 다한 상황과 인연을 내려놓고,
다음 목적지로 가이드합니다.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필요한 것, 배워야 할 것, 경험해야 할 것은 언제나 다를 테니까요.
또, 이런 감정들은 내게 무슨 결핍이 요동치는지 손짓해 줍니다. 우리가 결핍의 존재를 직시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내 무의식에 어떤 상처가 서식하는지 말해요.
결국 우리는 살면서 여러 모습들을 거치고 여러 깨달음을 깨우쳐가며, 절대 없애지 못할 부정적인 감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 양극성은 필요합니다. 그러니 도망치는 걸 멈추고, 방어를 내려놓고, 이 감정들은 내 적이 아닌 내 편인걸 알아주세요. 나의 트라우마가 초래한 결핍이란 베일에 가려 내가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할 때, 내 가능성은 감정들을 통해, 내가 진정 바라는 건 무엇인지 소통합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정말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하는 건 억지로 거슬러 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내가 느끼는 걸 저항하며 애써 더 이상 나에게 좋지 않은 생각방식, 관계, 상황을 고집할 때.
전 과거의 상처를 되살리는 이 감정들을 다시 느끼는 게 막연하게 무서웠습니다. 이 두려움은 심각한 공황장애로 발현됐고요. 하지만 약속합니다 - 현재의 내가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봐준다면, 도망치지 않고 "나한테 뭘 알려주려는 거야?" 하며 감사히 소통하면, 분명히 더 평온한 관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지금까지 상황불문, 일이 잘되도 안 돼도 불안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 느낌으로 살아온 저에게 이 시각은 그 무엇보다 평온하고, 현실에 충실하고, 매일매일을 기대와 가슴 벅찬 행복 속에 살 수 있게 해 주었어요.
이 불안은 내 편.
부정을 벗으로 나를 선택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가 절대 불행에서 살지 않을 거란 확신이 생기는데 - “아, 얘(나)는 결국엔 언제나 나를 위한 선택을 내려준다” -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천군만마를 얻은듯한 뒷배와 자신감, 그리고 긍정의 바탕이 돼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