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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선 Oct 22. 2023

연인에게 어떤 역할들을 부여하고 있나요?

내가 가지는 모든 관계들은 내 삶에서 다른 역할과 다른 충족감을 선물합니다. 


전 제 애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아빠에게 받고 싶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애인에게서 찾았고, 절친한 우정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바라는 동시에 애인에게서 느끼는 성적텐션과 설렘도 바랬으며, 내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멘토의 역할도 부여했습니다. 심적으로 흔들릴 때 상담사처럼 내 얘길 들어주고 나의 슬픔의 해답이 되어주길 기대했습니다. 내 자존감이 폭락할 때 잡아주는 나의 역할까지. 참 많은 역할을 한 사람에게 투영했더라고요.


기대치 때문에 상황이 왜곡되는 샤르팡티에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대치는 결국 과거에 의해 형성되잖아요 - 과거의 결핍을 채우려고 상대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세요? 아니면 과거의 실망에 모든 기대를 억누르고 있진 않으신가요? 회피 애착유형의 사랑에 대한 기대치는 보통 후자를 따라갑니다. 반면 불안애착유형은 너무 많은 역할을 상대에게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잦습니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애인이 충족시켜 주길 바라면서. 


전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방에게 올인됐었어요. 왜 있잖아요, 연애만 시작하면 연락두절되는 친구들. 가족보다도, 커리어보다도, 친구보다도 애인에 온 집중이 쏠려있는. 근데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고립시켰어요. 모든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들과 행복이 각각 다른데, 저는 애인에게 집중하며 제 삶의 다른 관계들을 모두 외면해 버리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관계들에서 받는 만족감 역시 상대방의 책임이 돼버렸어요. 


하지만 연인은 많은 인간관계 중 하나 - 제 말도 안 되는 기대치 때문에 언제나 상대방이 부족한 거라고 느껴졌었지만, 되돌아보니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전 모든 관계들의 기대치를 단 한 사람에게 집중해 놓고, 서운함과 결핍에만 집중하느라 상대가 얼마나 좋은 "애인"인지 감사해하지 못했습니다. 


더불어 제가 나 자신에게 줘야 하는 관심과 사랑을 상대에게 바랬어요. 저의 자존감, 자신감, 자기애 - 다 상대방이 채워주기만을 바라며 정작 전 자기 사랑을 위한 행동을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운동하고 외모를 가꾸는 것도 내 건강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아성찰도 상대와의 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도대체 전 나에게 아무것도 안 해주면서 상대방이 뭘 해주길 기대했던 걸까요. 내가 나한테 소홀해질수록 상대방에게 더 더 서운해졌어요. 상대방의 마음의 크기는 변함이 없는데 제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훨씬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관계를 잘 맺는 건 참 애매해요. 모두의 관점이 둘 다 타당하니까 내 관점만 얘기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전 글: 바운더리내가 바라는 게 공평한지, 어디서 비롯된 건지 아는 게 중요합니다.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나를 어떻게 행복하게 해 주는지 소통하는 건 필요해요. 하지만 그 점이 상대에게 바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에게 충족시켜주지 않아서 그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기대인지, 혹은 내 삶에 다른 관계에서 찾아야 하는 건지를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어떤 방식으로 내가 필요한걸 나에게 주지 않고 남에게서 찾고 있나요?

관계의 개선의 해답은 제가 상대에게 도대체 뭘 얻고자 하는지 확실히 할 때 좀 더 명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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