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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선 Oct 01. 2023

배은망덕할지라도 부모님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

불행의 대물림 끊기 4편

불행의 대물림 끊기 1편: 우리는 모두 피해자들의 피해자

불행의 대물림 끊기 2편: 이 없이 부모가 되었다

불행의 대물림 끊기 3편: 상처받은 사람들은 상처를 준다. 그래서 용서가 된다.

불행의 대물림 끊기 4편: 배은망덕할지라도 부모님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


처음에 부모님께 받은 상처를 인정하는 건 엄청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의 희생으로 존재하는 내가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다니 - 배은망덕하기도 하지! 그러나 애써 무시할수록 가족을 향한 원망과 불신으로 불어났어요. 제대로 직시하지 않으니까 그들이 준 아픔이 너무 추상적이고 거대하게 느껴져서 제가 받고 있는 사랑조차 못 느꼈어요. 우리 가족은 계속 서로 상처를 줬고, 전 매일밤 트라우마를 되풀이하는 악몽에 시달렸고, '가족'을 생각하면 아릿한 씁쓸함이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불행의 대물림을 끊는 프로세스를 (전글들에서 얘기한 대로: 현실직시, 내면아이 달래기, 자기 사랑 배우기, 나와 타인 용서하기) 풀어내니까 그제야 부모님이 그들의 선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한건지 볼 수 있게 됐어요. 그들의 잘못을 명확히 보니까, 그들의 노력 역시 더 빛났습니다. 내 멍울을 봐주니, 양육자 역시 견뎌내야 했을 가슴속 멍울이 얼마나 아팠을까, 살갗으로 느껴졌어요. 자기 사랑을 연습하며 내 가치가 서서히 보이니, 쓰라림에 덮혀있던 주변의 사랑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정말 말로 표현 못하는 사랑을 (언제나 있었지만) 가지게 됐어요. 날세우고 공격적인 에너지가 아닌 감사한 마음과 사랑으로 다가가니까 가족들도 각자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이며 관계가 개선이 되었어요. 그리고 난 좋은 부모가 못 될 거란 마음에 포기했던 가정을 이루는 개인적인 꿈 역시, 다시 한번 꿀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랑과 상처 -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부모님에게 큰 상처를 받았어.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날 사랑해 주셨어. 

두 가지는 동시에 사실이었어요. 상극 같아 보이는 이 두 문장은 상호배타적이지 않더라고요.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내 아픔의 자각은, 부모님의 탓이나 누구를 원망하려는 게 아닌, 어릴 적 내가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듣고 보듬어주는 것이에요.


트라우마는 "나"를 망가뜨릴 수 없어요. 그저 내 거울을 깨트릴 뿐. 우린 이 깨진 조각들을 다시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처럼 맞춰가는 거예요. 나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지만, 내가 날 볼 수 있는 방법은 내 거울을 통해서 뿐이니까. 내 거울이 다시 온전해져, 아름답고 고유한 우리를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현재의 나를 증오하고, 날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증오하면 전 결국 같은 곳에 머물러있겠지요. 나를 위해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요. 나를 위해 나 역시 누군가에겐 가해자였던 사실을 잊지 않아줬으면 좋겠어요. 마음속에 상처를 지니고 사는 게 얼마나 아픈지 우린 너무 잘 알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 그 상처에 묶여있는 것도,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히는 것도 하기 싫습니다.

제가 저의 트라우마를 돌아봐줘서 감사합니다. 나를, 그리고 타인을 용서할 수 있도록 치열히 노력한 제가 자랑스러워요. 우리는 점점 따듯해질 거예요. 상처보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될 거예요.


불행의 대물림을 끊는 거 - 가능합니다. 

과거 때문에 우리의 미래의 행복을 자발적으로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런 정당화가 불가능할정도로 무자비하고 개연성 없어 보이는 상처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인간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자신의 망가진 기억 때문에 나에게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를 위한 거지 그 인간을 위한 게 아니다. 우리가 모두 똑같은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임을(일수도 있단걸) 인정하면, 나에게서 빼앗겼던 힘이 돌아온다. 내가 나의 상황을 정리하고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힘. 그리고 나도 남을 해할 수 있는걸 아니까 의식적으로 이 트라우마의 순환을 이어가는데 공조하지 않을 힘. 

우리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상처를 자신의 선에서 끊어주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면, 언젠가 나비효과로 우리 사회 모습 전체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아 물론, 우리가 행복한 건 당연하구요.


+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

+ 나를 재양육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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