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진심으로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당신은 어떤 사람이 싫으신가요? 나한테 딱히 잘못한 것도 없지만 싫은 사람의 부류가 있나요?
저는 밝은 사람이 짜증 났습니다. 행동이 느린 사람도 굉장히 무시했어요.
극 E의 인싸들을 보면 "왜 저렇게 나댈까? 진짜 시끄러워", 행동이 상대적으로 느린 사람들을 보면 "눈치는 밥 말아먹었나 왜 저렇게 일머리가 없지?" 하며 속으로 흉봤어요.
그 사람들을 싫은 이유는 언제나 저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여러 나라를 오가며 전학을 굉장히 많이 다녔습니다. 각각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철저히 외부인이었던 저는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그 나라 말을 모르던 저는 수업내용은 물론 뭘 해야 할지도 몰라 눈치로 상황파악하는걸 굉장히 빨리 배워야 했어요. 태생적으로 활발한 성격은 반복되는 냉대에 점차 어둡고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조차 언어를 잘 못하는 저를 귀찮아해 언제나 겉돈 건 제 안의 깊은 수치심으로 자리 매겼습니다.
나는 행동이 느려서 다들 날 안 좋아하는구나. 내가 참 싫다. '눈치 없는 건 미움받고 무시당할 만한 것'이 사실처럼 저장되었습니다.
눈치가 굉장히 빠른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그때의 자기 혐오감은 해소 안된 채 안에서 곪고 있었고, 그 자괴감은 남을 보는 내 눈에 투영되었어요. 밝은 사람들이 싫었던 건 질투였습니다. 나도 밝았는데.. 난 상처받아서 이젠 더 이상 못 그러는데 왜 너는 그렇게 해맑게 너를 표현해?"라는 시기감이었습니다.
누군갈 싫어할 수 있어요. 그게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 마음이 우리에게 겨냥됐을 수도 있단 걸 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누군갈 안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때, 혹은 꾸준히 거슬리는 특정 성향이 있을 때 - 내가 나에게서 부정하고 있는 면이 아닐지, 언젠가 거부당한 나의 모습들이 아닐지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남들보다 한 발짝 느렸던 내가 너무 창피했고, 받은 거 그대로 나를 손가락질했어요. 그 마음은 내 겉모습과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달라져도, 사회에서의 나의 지위가 달라져도 변함없었습니다. 그때 나는 따듯하게 안아주며 "언어랑 문화가 다른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거야"하며 보듬어 주는 사람이 필요했고, 이제야 그런 이해와 따듯한 시선으로 남을 보기 시작하며 타인은 물론, 나를 보는 눈 역시 누그러졌습니다. 오래 자리 잡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옆에 있어주는 힘을 기른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아, 나도 이렇게 내 경험과 아픔 때문에 누군갈 싫어한 적이 많으니까 - 너 역시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면서 누군가가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에 의연해질 수 있는 강단이 생겨요.
그 강단은 내 테두리와 선을 -나를- 지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