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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Feb 08. 2019

혜나는 그저 드라마의 장치였다, <SKY 캐슬> 리뷰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결말. 누가 납득할까

(※글의 특성상, <SKY 캐슬>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SKY 캐슬> 공식 포스터. (출처 : JTBC <SKY 캐슬> 공식 홈페이지)

  <SKY 캐슬>이 끝났다. 1%에서 시작해 23%로 끝난, 전설적인 드라마로 남은 <SKY 캐슬>이 각 회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다. 사람들을 만나면 보든 안 보든, <SKY 캐슬> 얘기만 할 정도였다. 그러나 <SKY 캐슬>을 사랑해 마지않던 시청자들은 마지막 회를 보고 원성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잘못된 길을 걸었던 이들이 모두 개과천선하며 등장인물들이 행복해지는 결말은 이전까지 <스카이 캐슬>이 그려오던 내용들과는 결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요약하자면, '갑자기 분위기 해피엔딩'이 문제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스카이캐슬의 해피엔딩을 아주 강력하게 바랐던 사람이었다. 나는 어른들로 인해 아이들이 망쳐지는 내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버거워하고 힘들어한다. 그런데 <SKY 캐슬>에서 새드엔딩이란, 아마도 우주가 계속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혀있고 죄책감에 예서는 미쳐버리는 내용일 테니... 내 멘탈로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SKY 캐슬>의 해피엔딩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는 해피엔딩을 위한 떡밥/복선이 제대로 깔려있지 않았다는 것, 두 번째는 캐릭터를 대하는 데 '예의'가 없다는 것.

<SKY 캐슬>의 강준상(정준호), 한서진(염정아), 차민혁(김병철), 노승혜(윤세아). (출처 : JTBC <SKY 캐슬> 공식 홈페이지)

  일단 첫 번째부터 언급하자면, 18회까지 <스카이 캐슬>에서 강준상, 한서진, 차민혁으로 대표되는 '잘못된 길을 걸어가던 어른'들의 개과천선을 암시하는 부분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다. 이들은 아주 잠시 고민/고뇌하는 시간을 가지는 듯 보였지만 이는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의 1%에 불과했다. 이외에는 계속 막말을 내뱉거나, 자기가 살아온 대로 탐욕적인 모습이 등장했다. 1%가 99%를 뒤집을 거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강준상도, 한서진도, 차민혁도 너무 갑자기 변화한다. 자신의 아이들과 노승혜에게 내뱉는 막말이라든가 고압적인 태도를 여전히 유지했던 차민혁은 술 먹고 서러워하더니 노승혜에게 사과의 문제를 보낸다. 그나마 차민혁은 고민하는 순간이 자주 나온 편이었다고 하더라도, 강준상은 혜나가 죽은 후에도(사실상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이나 슬픔을 크게 느끼지 않더니 자신의 딸이라는 걸을 알고 난 뒤 갑자기 180도 돌변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에까지 빠진다. 한서진은 혜나에게 모질게 굴었고 혜나의 죽음과 우주의 억울함 사이에서도 우주를 더욱 걱정해놓고, 김주영의 이야기('혜나를 죽인 건 당신과 나')를 들은 후 갑자기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이들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화한 뒤, 이전까지의 모습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차민혁이 그토록 무시했던 차세리에게 춤을 배우는 장면이나 예서네 가족들 다 같이 혜나의 납골당에 찾아가는 장면이 그러했는데, 진짜 보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자, 이제 두 번째에 대해서 말해보자. <SKY 캐슬>의 마지막 회를 본 후 나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후자다. 캐릭터를 대하는 데 예의가 없다는 것은 혜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이전 브런치 글에서도 혜나의 죽음에 대해서 비판한 적이 있었다.(https://brunch.co.kr/@hansung-culture/2) 혜나의 죽음이 드라마 내용을 '보다 더 재밌게' 전개시키기 위한 장치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혜나를 죽이지 않고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어른들의 욕망을 표현할 수 있는데도 19살 아이의 죽음(심지어 타살(!))을 선택했다는 것도 불편했다. 하지만 나는 이때 알았어야 했다. 작가가 혜나 자체를 그저 드라마의 장치이자 수단으로만 썼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캐릭터의 인생을 어떻게 구현하는지는 작가의 자유다. 그러나 작품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순간, 캐릭터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며(물론 문학, 영화 등 모든 '이야기'가 있는 작품에서 그러하지만 여기서는 드라마에만 한정해서 이야기하겠다.) 캐릭터와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고, 그들의 인생을 이해하며 그들과 감정을 공유한다. 이것이 드라마가 주는 힘이다.

  그러나 혜나의 죽음에서부터 19회와 20회에 등장한, 죽은 혜나를 대하는 강준상과 한서진의 모습까지 혜나의 인생을 고려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가장 어이가 없는 건 위에서도 말한 납골당 씬이었다. 한서진은 혜나에게 그의 가치를 부정하게 만드는 독설을 날리고 뺨을 때렸으며, 죽음 이후에는 예서를 보호하기 위해 혜나 엄마의 유품인 사진을 찢고 혜나의 물건을 부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20회 초반에 한서진이 잠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 가족 다 같이 납골당을 가서 혜나를 기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누가 공감하겠는가.

https://tv.naver.com/v/5249290

20회 <SKY캐슬>에서 예서와 가족들이 혜나의 납골당을 찾아가는 장면. (출처 : 네이버 TV)

  게다가 혜나의 납골당 안에다 예서네 가족의 사진을 넣은 것은 혜나가 살아있는 동안 겪었던 일과 혜나의 감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다. 혜나는 자신의 엄마가 한서진 보다 낫다는 걸을 증명하려고 했던 아이였다. 그래서 김주영을 찾아가 거래를 제안하기도 했고. 또한 아픈 와중에 한서진을 자신의 엄마로 착각할 만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강한 아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엄마는 혜나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런데 납골당에 혜나 엄마의 사진은 없고,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무시하고 배제하려던 한서진과 강준상, 강예서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니. 죽은 혜나가 벌떡 일어나 노할 일이다.

  심지어 이 장면에서는 혜나를 찾아온 예서네 가족을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서 이들이 한 마디씩 하는 사죄의 대사와, 잔잔한 음악, 빛을 받는 연출까지 이어진다. 마지막화를 보면서 나는 혜나가 그저 강준상 가족의 개과천선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혜나에게도, 그리고 혜나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실 이는 한국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온 인물이 갑자기 맥락도 없이 망가져버린다거나, 그저 주인공들의 내용을 전개시키기 위한 장치로만 쓰면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급격하게 축소된다거나. 전자의 대표적 예시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헤롱이고, 후자의 대표적인 예시는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와 <응답하라 1988>의 정환이다. 세 작품 모두 결말 이후 각 캐릭터를 아끼던 시청자들의 비판이 거셌다. 

  사람들에게 한 작품이 좋은 기억으로 남기 위해서는 납득할만한 결말로 끝을 맺어야 한다. 그러나 <SKY 캐슬>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혜나의 이야기에서도,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의 이야기에서도. 전설적인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아쉬움만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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