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빻은 극'이란 과연 무엇일까? 페미니즘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갖고 있는 나에게 늘 어려운 질문이었다. 무엇이 과연 '빻은 극'을 정의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는 극을 찾았다. 바로 뮤지컬 '스위니 토드'였다.
출처 : 인터파크 티켓 뮤지컬 '스위니 토드' 예매 페이지
사라진 여성 캐릭터의 개연성과 서사
내가 찾은 기준은 여성 캐릭터에게 얼마만큼의 캐릭터 서사가 부여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행동이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가 주어져있는가?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그렇지 않다. 여성 캐릭터는 스토리 전개를 위해 그저 사용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러빗부인은 토드에게 엄청난 호감을 처음부터 보이지만, 그 호감의 이유는 딱히 등장하지 않는다.
출처 : 오디컴퍼니 트위터 공식 계정
게다가 토드의 딸이자 터핀판사의 입양딸인 조안나도 마찬가지다. 안소니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지고 도망치고 싶어 한다.
출처 : 오디컴퍼니 트위터 공식 계정
여기다 더해 토드의 아내인 루시. 루시를 다루는 방식은 가히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루시의 불행을 다루는 방식
토드의 아내인 루시를 탐했던 터핀판사는 루시를 강제로 취하는데, 그 방식이 뮤지컬에서도 구현된다. 이전에는 더욱 적나라하게 나왔다고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노골적이라 이전에는 어떻게 참고 봤는지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다. 루시야 말로 토드의 불행과 터핀판사의 탐욕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만 쓰이는 존재다. 그 방식 또한 매우 폭력적이다.
결론적으로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빻은 극이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넘버들이 매력적이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지만, 어쩔 수 없이 한계가 분명하다. 러빗부인에게, 조안나에게, 루시에게, 개연성과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