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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토리 Jul 20. 2023

이런 친구 평생 곁에 두고 싶다.

찐친에게 배우는 긍정하는 삶의 태도

'처니'라고 부르는 내 친구가 있다. 20년 지기 찐친인데, 중국어를 전공한 우리는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연수시절 만난 사이이다. 경기도 광명에 살았던 처니는 머리가 비상하고 순발력이 뛰어나다. 친구들과 붙여준 별명이 광명천재였다. 줄여서 '광천이'로 부르다가 더 줄여 '처니(천이)'가 된 것이다.


처니는 얼마 전에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둘째 아들이 칠삭둥이로 태어났다. 임신기간 중 하혈하며 조산기가 심해서 병원에 한 동안 입원해 있었는데 갑자기 진진통이 느껴지면서 이른 출산이 시작되었다. 결국 파주에서 구급차를 타고 강남 세브란스병원까지 와서 응급수술로 아이를 낳았다. 니큐에 들어가 있는 아기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조산으로 태어난 새 생명은 아직 아기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작고 마른 인형에 불과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처니가 출산과정에서 겪었을 몸고생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나는 눈물이 앞섰다.


그런데, 처니는 말한다. "구급차 타고 가는데 하나도 안 떨리더라. 담당 의사 선생님 덕분에 재빠르게 니큐, 수술방, 입원실 있는 병원을 찾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몰라, 일사천리였어! 그리고 내 느낌에 강인한 애 같아, 지가 살려고 나온 거잖아." 손을 벌벌 떨면서 눈물도 나오고 아이에게 괜한 미안함, 죄책감, 원망 같은 예쁘지 않은 마음들로 가득 찰 법도 한데, 처니는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뾰족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지가 살려고 나왔단다. 응급상황임에도 운이 좋게 병원을 빠르게 옮길 수 있었던 감사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초연한 말들로 출산과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감사함을 발견하는 처니는 꽤나 성숙한 사람이다.


처니는 늘 이런 식이다. 처니네집에 놀러 가면 "우리 집에 놀러 와줘서 고마워."라고 이야기한다. 집에 누가 오면 나름 대접하느라 애쓴 본인보다 발걸음을 해준 다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누가 봐도 남편이 해주어야 할 일인데, 그 일을 한 남편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본인이 해주는 건 생각안코 내가 무언가를 해주면 넘치듯 고마움을 표현한다. 처니는 모든 일에서 늘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운이 좋을 수밖에. 비가 오면 운치가 있어서 좋고, 해가 쨍하게 뜨면 날이 화창해서 좋고, 아이가 아프면 이 정도만 아픈 게 천만다행이라 여기는 그녀는 매일이 운수 좋은 날이다.


슬픈 일을 위로하는 것보다 좋은 일 있을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축하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슬픈 일이 있거나 힘든 일에 위로를 잘하기보다 내가 좋은 일이 있을 때 누구보다 진심으로 환하게 축하해 주는 사람이다. 언제나 고마울 따름이다.


우린 개그코드가 너무 잘 맞아서 자주 봐야 한다. "내가 너를 만나야 웃는다."라고 할 정도로 우린 주거니 받거니 개그코드가 잘 맞는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우리는 개그콤비가 되어 턱이 빠지도록 웃는다. 평생 멀리 이사만 가지 않으면 지금처럼 계속 볼 것 같다. 둘 다 아들맘이라 노년에도 애들이 안 놀아주면 우리 둘이 놀기로 했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싶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말씀인데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처니는 나에게 때론 이런 스승 같은 사람이다.


나에게 배울 점과 울림을 주는 사람.

감사함과 고마움을 늘 표현하는 사람.

본인의 선택을 옳게 만드는 사람.

힘든 상황에서도 늘 감사함을 찾는 사람.

그래서 늘 운이 좋은 사람.


이런 그녀를 나는 평생 내 곁에 두고 싶다. 있는 거 없는 거 퍼주면서까지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다. 오랜 기간 마음의 응달을 품고 살았던 나로서는 삶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처니에게 배운 감사함) 나는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부정적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부단히 긍정적 삶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다. 그 길 위에 처니가 함께 해준길 바래본다. 나는 누구보다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 매우 쿨한 사람이지만, 처니한테 만큼은 질척댈 것이다. 나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친구가 곁에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앞으로도 매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 할 수 있기를.

언젠간 또 모여 선글라스 끼고 다리 제모 같이 할 수 있기를.

술 진탕 먹고 호텔 잔디밭을 누비며 울고 웃기를.

타짜 처니에게 밑장빼는 기술을 배울 수 있기를.

노년에도 개그코드를 잃지 않고 놀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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