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토리 Jul 17. 2023

혼밥할 때, 햇반 비닐만 벗겨 대충 드시나요?

내가 나를 대접하며 사랑하기의 시작!

아이와 짝꿍이 없는 평일 점심에는 햇반님을 자주 애용했다. 쌀 씻어 밥 하기가 너무 귀찮은 것이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만 돌리면 되니 세상 너무 편하다. 꺼내어 비닐만 벗겨 반찬 1~2개 꺼내 대충 입으로 욱여넣으며 한 끼를 때우곤 했다. 혼자 먹는 끼니를 위해서 새 밥을 짓는 행위가 나는 왜 이리 어려운 걸까. 햇반님 같은 편리한 물건이 있어서 더 안 하게 되는 걸까. 1인용만 하기엔 내 뇌가 효율성이 매우 떨어진다 인지하고 밥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걸까.


‘내 손이 내 엄마다.’


우리 엄마가 왕왕하시는 말씀이다. 엄마가 해주는 추억의 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차려 음식을 맛나게 먹을 때 하는 말이다. 예전의 나는 이 말을 나는 잘 공감하지 못했다. 왜냐면 내 손으로 내가 먹고 싶은걸 잘 차려 먹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늘 하긴 하는데 내가 먹을 것은 늘 대충 차려 먹고, 냉장고에 한 동안 지난 음식은 혼자 먹을 때 먹어치우자는 생각이 각인되었다고 할까. 혼자 먹을 때 새롭게 음식을 한다는 생각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이래놓고 아이와 짝꿍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때는 없는 반찬이어도 그릇에 일일이 담아 정갈하게 내놓는다. 반찬이 최소 3개는 되어야 될 것 같고, 불고기와 오징어 볶음에는 마무리도 꼭 깨를 뿌려서 먹음직스럽게 데코도 한다. 카레밥, 짜장밥에는 계란도 꼭 올려 마무리 한다. 비록 햇반을 먹더라도 밥그릇에 고이 옮겨 담아 국그릇과 함께 놓는다. 햇반 플라스틱을 통째로 놔준 적이 없다. 내가 식구들을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과시인 걸까. 나의 혼밥 점심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밥상 위에서 펼쳐지는 이중인격이 따로 없다.  


한 동안 이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 왜 스스로를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고,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조차 잘 몰랐으니까. 아니, 알았어도 현실에서 주어지는 막대한 양의 일과 돈 때문에 모른척한 걸지도 모르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리 무미건조하게 일만 하고 살았나 모르겠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일 잘하고 돈 많이 벌면 그게 행복인 줄 알았다. 늘 다른 사람에게 맞추면서 살았고, 눈치를 보며 눈칫밥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겪었다. 남들이 즐기는 소소한 취미생활은 즐거움보다 사치라고 여겼다. 그 시절 나는 나에게 늘 불친절했고, 진짜 내 즐거움은 없었다.




예전 직장에 가수 샤이니를 좋아하는 덕후 언니가 있었다. 나를 비롯한 동료들에게 샤이니 새 앨범이 나오면 CD를 직접 사서 선물하고, 이모티콘과 같은 소소한 굿즈 같은 것도 선물해 주었다. 콘서트가 열리면 티켓팅을 하기 위해 성능 좋은 컴퓨터가 있는 pc방을 가곤 했다. 일본에서 콘서트가 열리면 연차를 내고 일본에 다녀오곤 했는데 그게 그녀의 유일한 해외여행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이가 30이 넘은 사람이 흔히 말하는 덕질을 하는 것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덕질이 잘 사는 인생에 뭐가 도움이 되지? 돈낭비 시간낭비일 텐데’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녀가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본인이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아는 사람. 애정하는 일에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과감히 쏟을 수 있는 사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꼭 부와 명예가 아니어도 되는 사람이었다. 이것 만으로도 그녀가 에너지를 쏟아부은 덕질에는 충분한 의미가 존재했다.   




사랑이나 행복은 자신에게 충분히 준 다음 자연스럽게 남에게 흘러가는 것이에요.
By 김하은(레퍼) / 배려의 말들(류승연 지음) 中


누군가에게 밥을 정성껏 해주는 것은 사랑이다. 이제는 혼밥 한 끼에도 시간을 들여 나를 대접하며 스스로 사랑을 좀 해주려고 한다. 인정과 애정을 타인에게만 바랐던 나이거늘. 이제는 그 욕구들을 스스로 채워주기로 다짐해 본다. 누구나 각자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혼밥 하는 시간부터 스스로 사랑하기를 실천해 보았다. 햇반 하나를 먹더라도 비닐만 벗겨 그대로 먹지 않고 밥그릇에 옮겨 담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비록 혼자 먹더라도, 냉장고에 있는 반찬 꺼내더라도 밥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사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를 충분히 아끼고 사랑해 주어야 타인을 향한 나의 사랑이 순수한 사랑이 될 것 같다. 스스로 차린 혼밥에 별것 아니지만 사진도 찍어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리고 그 기록은 나를 성장시키는 작은 에너지로 돌아온다. 이렇게 스스로를 대접하니 좋은 기운이 선순환되어 나를 조금이나마 일으킨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해 보고 무얼 할 때 행복한 감정이 드는지도 찾아보고 싶다. 불혹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100세 시대에 난 아직 절반도 덜 살아본, 조무래기에 불과하니까. 아이나 내 주변에 베푸는 사랑도 내 자존감을 지키며 사랑을 충족시킨 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도 요새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한다. 아들은 엄마를 제일 사랑해 주는 기특한 아들이다.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사랑해”라고 이야기해 주는 아들에게 이제는 이렇게 얘기한다.


“엄마를 사랑해 줘서 너무 고마워! 근데 너는 너를 제일 사랑하고, 그다음에 엄마를 사랑해 줄래?"


혼밥할 때에도 적당히 예쁘게 담아보기_별것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짐


작가의 이전글 새벽기상이 주는 귀한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