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는 것

무너지지 말고 버티기

by 한울 Hanul


목표가 있으면 나아간다. 중요한 게 꺾이지 않는 마음이든,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든 나아간다. 뭐가 됐든 그냥 하면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안 하는 거보단 나으니까. 엄청난 정신력을 소모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이렇게 어느 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착실히 나아가는 것을 흔히 '독기'라고 부른다. 정도가 심하면 산독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말이다.


나 또한 독기 어린 적이 있었다. 결과는 좋았다. 예상한 것보다 점수가 더 잘 나왔다. 열심히 했으니까 좋은 결과가 따라온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그뿐이었다. 좋은 점수라는 결과 하나뿐. 승전보와 환호는 금세 사라졌다. 몸은 아프고, 열심히 공부한답시고 연락도 안 하니 주변에 사람도 없었다. 뿌듯하긴 했지만 외로움과 공허함을 가려주진 못했다. 단편적으로 봤을 때 누구보다 높이 있는 건 나였지만 사람을 만나고, 가끔은 맛있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취미를 하는 사람들이 더 부러워졌다. 이후로는 누구보다 높이 있다 단언할 수 없었다.


목표 달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1. 하고 싶은 것은 참고 미뤄 둘 것

2. 사람을 만나지 말 것

3. 내 감정이나 힘듦보다 해야 할 일을 우선시할 것

4. 취미 활동은 사치임을 알 것

5. 1분 1초라도 더 많이, 시간 낭비는 금물

6. 해내겠다는 의지를 딱 가질 것

7. 질투나 증오를 동기부여로 삼아서라도 해낼 것


누군가에겐 이 몇 가지가 당연한 것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일 수 있다. 상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스스로는 통제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최소화해서까지 불행을 자처한다. 행복하면 열심히 하지 않은 것만 같아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해치고 부정적인 굴레에 몰아넣는다. 그렇게 하면 역설적이게도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니면 안 되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게 곧 모순이고 자신이 바보라는 증거니까.


목표 달성을 위해 세운 저 몇 가지 조건들은 도움이 된다. 정말 '목표에만 도움이 되는 일'이다. 목표를 향해 나아갈 연료로 자신을 갉아먹고 있으니.


이런 맹목적인 간절함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살면서 이토록 간절할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그만큼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을 때는 아주 충만할 것이다. 단지, 이 맹목적인 과정이 괴로운 사람이 있을 뿐이다. 미래를 나아가면서도 회의감에 견딜 수 없는 사람. 이게 맞나, 하는 의심이 자기 의심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람. 미래가 불안한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정도가 지나칠 때가 있다. 불안한 감정에 잡아먹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인 사람. 그런 사람에게 '왜 진득하게 하질 못하냐', '하기 싫어도 그냥 해라'라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니까.


결과 하나만 보고 지속하는 건 고통스럽다. 목표는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지만 지탱해 주지는 않는다. 붙잡아주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의 전진은 결국 탈진으로 이어진다. 현명하게 전진하는 것은 앞으로 얼마나 갈 것인가를 정하는 게 아니다. 그 전에 무엇이 나를 지속해서 전진하게 만들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들 버틸 힘이 없으면 나아갈 수가 없다. 목표와 함께 필요한 건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기반이다. 목표라는 기둥이 하나뿐인 건물은 위태롭다. 기둥이 여러 개면 좋지 않을까?


지탱하는 것들은 거창하지 않다. 하루에 한 번 제대로 된 식사, 밤을 새우지 않겠다는 약속,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도 자신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는 태도, 그리고 좋아하는 것. 취미든 음식이든 간에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 전부 성과로 기록되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없었다면 다음 날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사람을 끝까지 가게 하는 것은 아주 강한 의지가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일 수도 있고, 일상의 루틴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자기 신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빠르게 건물을 완성하는 것보다 지탱할 수 있는 기둥을 하나씩 마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기둥도, 뼈대도 없는 상태로 무턱대고 높게만 쌓아 올린다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까. 가끔은 웃는 것도, 좋아하는 취미를 하는 것도, 아무 의미 없이 산책을 하는 것도 성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현실적인 생존 장치다.


아픔과 성공은 비례하지 않는다. 너무 불행하고, 아프고, 힘들어야만 성공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통의 크기는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아파야만 의미가 생긴다면 그건 노력이 아니라 상처다. 스스로를 몰아붙여 상처 입힌다면 자해가 되는 것이다. 행복한 상태에서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간에 쉬어도 되고, 잠깐 놀아도 되고, 평범하게 잘 지내는 날이 있어도 된다.


결국 시간이 지난 뒤에 돌아보면 삶은 아픔의 깊이가 아니라 나를 지탱하고 있던 구조로 남는다. 인생을 살면서 시험과 시련은 한 번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까. 목표는 언제나 바뀌지만 나를 지탱하는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시련은 인간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지만 결국 맞닥뜨렸을 때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이 구조의 단단함이 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많이 만들고, 많이 해야 한다. 부디 꼭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그 경험과 애정은 무엇보다 단단한 기둥이 된다. 이렇게 지탱하는 것들이 없으면 목표라는 기둥은 홀로 너무 많은 무게를 떠안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애쓰며 살고 있다. 그런 나를 타박하기보다는 약간의 보상을 주어도 되지 않을까. 가끔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나를 바로 세우고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을 죄책감 없이 가졌으면 한다. 농땡이나 나태가 아니라, 언젠가는 자신을 단단하게 세울 기반이 되는 귀중한 시간이 될 테니까.


행복해도, 잠시 쉬어도 우리는 앞으로 가고 있다.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자. 못 하겠으면 누군가가 해주면 된다.


그대, 행복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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