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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균열이 모든 걸 무너뜨린다

by 돛이 없는 돛단배

왼손 엄지에 금이 갔다.

넘어지면서 찍혔고, 뼈에 금이 갔다고 했다.

짧은 진단이지만,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무너졌다.


오른손은 원래 잘 못 쓴다.

내 몸에서 쓸 수 있는 손은 하나뿐이었고, 그 하나가 부서졌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힘들어졌다.

양치질부터가 시작이다. 칫솔을 쥐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거울 앞에서 칫솔질을 하다 보면 손가락이 저릿저릿 아프다.

물을 틀고 컵을 드는 것도 어렵다.

그럴 때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힘드나” 싶지만, 그 ‘뭐라고’가 하루 종일 쌓인다.


세수는 더 골치다.

한 손으로 얼굴에 물을 끼얹고, 대충 비비고 닦는 게 전부다.

머리 감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머리카락에 샴푸를 대충 묻히고 손끝으로 비비는데, 감았는지 그냥 적신 건지 모르겠다.

이마 근처에 잔여물 남은 채로 나온 적도 있었을 거다.


단추를 채우는 것도 고역이다.

셔츠 단추 하나하나가 작은 전쟁이고, 양말은 벗기보다 신는 게 더 어렵다.

평소보다 입는 시간이 몇배는 더 걸린다.

그걸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화나고, 짜증 나고, 허무하고.

누군가가 이걸 지켜본다면 아마 안쓰러워할지 모르지만, 정작 나는 그 안쓰러움을 느낄 시간도 없이 바쁘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나’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남는다.

허리띠를 매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요즘은 그냥 고무밴드로 된 청바지를 몇 벌 사 입고 출퇴근한다.

입고 벗는 건 그나마 덜 스트레스지만, 속으로는 자꾸 초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길엔 지하철에서 한 손으로 버텨야 한다.

왼손 엄지로 손잡이를 제대로 쥘 수 없으니까, 손바닥으로 걸치듯 얹고 선다.

누가 옆에서 밀기라도 하면 비틀거리는데, 넘어진다고 해도 나를 받아줄 손도, 사람도 없다.

그 생각이 하루를 통째로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그냥 서 있는 것도 스트레스다.


식사 시간도 마음 편하지 않다.

한 손이 불편하니 젓가락질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숟가락을 쥐는 것도 부담스럽다.

입에 밥을 넣는 행위조차 조심조심해야 한다.

그게 반복되면 밥 먹는 게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일’이 된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잔을 제대로 쥘 수가 없어서, 다친 이후로는 아예 못 마시고 있다.

아침마다 커피 내리는 습관이 사라지니, 하루가 시작된다는 감각 자체가 희미해졌다.

작은 습관 하나가 이렇게 허전할 줄 몰랐다.


그래도 억지로 잘 챙겨 먹는다.

그래야 빨리 낫겠지, 그런 마음 하나로.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회복으로 이어질 거란 확신은 없다.

그냥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해서 먹는 거다.

살아있다고 믿기 위해 씹고 삼키는 거다.


가끔은 어머니께 머리 좀 감겨달라, 손톱 좀 깎아달라고 하고 싶다.

정말 부탁하고 싶은 순간이 있지만,

막상 말씀드리려다 입을 닫는다.

어머니는 연세가 들어 손이 예전 같지 않다.

제대로 못하셔서 서로 말이라도 한마디 주고받다 보면 결국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다.

그래서 애초에 부탁을 안 한다.

“혼자 할 수 있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그냥 피하는 거다.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혀를 찬다.

“여자 하나 데리고 오면 될 텐데, 왜 안 데리고 오는지 모르겠다…”

말끝을 흐리시곤 혀를 차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데리고 올 여자도 애초에 없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이 집에 함께 살자고 말하는 건 그 사람한테 너무 가혹한 일이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이 집에,

어머니와 함께하는 이 공간에,

누군가를 들이는 건 결국 그 사람을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고통을 끌어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주말엔 집안 꼴이 엉망이다.

청소는 엄두가 안 난다.

요즘은 어머니가 자꾸 흘리고 묻히고 다니신다.

닦아도 닦아도 또 얼룩이 생기고, 손이 제대로 안 되는 나는 그걸 보면서도 치울 수가 없다.

결국 청소 아주머니를 부르는데, 오신 분이 치우는 동안 나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한다.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인다.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을 보고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그 안에서 나는 더 지저분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된 느낌이다.

내가 빠진 삶은 훨씬 더 질서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서글픈 건, 이런 걸 누구에게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거다.

지인들에게 괜히 짧게 툭 던져봤지만

“아이고 그래도 금방 낫겠네”

“엄지 하나 다친 거면 다행이지”

그런 말만 돌아온다.

누구도 나처럼 하루를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 말들이 더 멀게 느껴진다.


이게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더 괴롭다.

혼자 이 상황을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내 마음을 조인다.

무기력한 몸에 무거운 마음까지 얹혀 있으니, 매일이 더 힘들어진다.


다친 건 엄지 하나였는데,

사라진 건 내 일상의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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