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몸을 일으킨다.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리는 데 망설임이 없다.
두 발로 바닥을 단단히 딛는 순간, 하루가 막 시작된다.
욕실로 향한다.
문턱을 넘을 때 발끝에 걸리는 불안 같은 건 없다.
미끄러운 타일도, 젖은 바닥도 그저 익숙한 아침의 일부일 뿐이다.
욕실은 조심해야 할 곳이 아니라, 그저 씻는 공간이다.
비누가 떨어지면 허리를 숙여 주워 들고, 샤워기 물줄기에 몸을 맡긴다.
균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몸은 스스로 중심을 잡고, 물기를 흩어낸다.
칫솔질도 시원하게, 자유자재로 한다.
거울 속 얼굴을 보며 턱선을 따라 손을 움직이고, 입안 깊숙이 닿도록 닦는다.
힘의 조절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샤워 후, 물 한 컵을 따른다.
책상 위에 놓인 영양제를 집어 든다.
네 알, 다섯 알 되는 알약들을 손에 털어 넣고, 물 한 모금으로 단숨에 삼킨다.
목에 걸릴 걱정도, 하나씩 나눠 먹어야 할 번거로움도 없다.
그저 아침의 습관처럼, 몸에 부담 없이 스며든다.
거울 앞에 서서 오늘 입을 옷을 고른다.
핏과 색감, 옷감의 질감까지 내 기분에 맞춰 고른다.
버튼을 채우고, 주름을 정리하고, 옷깃을 세운다.
멋을 부리는 일이 의미 없는 게 아니라,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일이다.
지하철역까지 빠르게 걸어간다.
도착까지 1분 남았다는 표시가 보인다.
망설임 없이 달린다.
계단이 나타나면 리듬을 타듯 몇 칸씩 건너뛴다.
손잡이를 찾지 않아도, 몸은 흔들림 없이 방향을 잡는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 성큼 타고 들어선다.
잡을 곳을 찾지 않는다.
두 다리로 중심을 잡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흔들림 속에서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누군가 빠르게 스쳐도 움찔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이 도심의 흐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회사 근처 헬스장에 들러 가볍게 유산소 운동을 한다.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흘리고, 이마를 훔치며 유리창 밖의 햇살을 본다.
샤워 후,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는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사무실 건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가 늦게 온다.
기다리는 대신 계단을 오른다.
그냥 운동 삼아.
한 발 한 발, 숨이 차오르기 전에 도착한다.
사무실에 도착해 회의에 들어간다.
내 차례가 되면 차분하게 말한다.
말이 머뭇거리지 않고, 정확하게 의도를 담아 전달된다.
상대의 표정이 이해로 바뀌는 걸 본다.
되묻지 않는다.
나는 설명하는 사람이 되고, 설득하는 사람이 된다.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머릿속 생각이 손끝보다 느릴 정도로, 타자는 빠르고 정확하다.
코드는 흐름을 타듯 정리되고, 로직은 정돈된다.
어깨가 굳지 않고, 손가락이 버벅이지 않는다.
나는 프로그래머로서 가장 나다운 상태로 몰입한다.
점심 시간이 오면 셀프 서빙 식당으로 향한다.
쟁반을 들고, 줄을 서고, 접시를 들어 원하는 반찬을 고른다.
뜨거운 국도, 물도 내 손으로 조심스럽지 않게 운반된다.
사무실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여직원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다가가 도와준다.
"고마워요. 길버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친다.
그건 그냥,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근길에 오른다.
친구들과 선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잔을 부딪치고, 하루를 털어내며 웃는다.
술이 들어가도 마음이 편하다.
조금 더 마셔도, 몸은 여전히 안정되어 있다.
기분 좋게 마시고, 농담을 나눈다.
2차로 노래방에 간다.
마이크를 들고 목청껏 노래한다.
음정을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소리를 내는 그 자체가 즐겁다.
몸을 흔들고, 마음껏 부른다.
목이 쉬어도 좋다.
오늘을 다 쏟아낸 기분이다.
밤 1시. 친구들을 보내고, 거리로 나선다.
손을 들면 택시가 멈춘다.
차에 오르고, 기사에게 집 주소를 말한다.
창밖 풍경을 보며 휴대폰을 꺼낸다.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나 이제 다 왔어."
반가운 목소리가 피곤한 하루의 끝을 감싼다.
서로의 하루를 짧게 나누고,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조용히 불을 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마음속에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냥 그런, 아주 평범한 하루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하루.
하지만 그 하루는—
내 하루가 아니다.
지하철 안에서는 늘 벽에 등을 붙이고 선다.
손잡이를 놓는다는 건, 넘어진다는 말과 같다.
계단 앞에서는 잠시 멈춰 선다.
손잡이가 없다면 발을 떼지 못한다.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통로에선 벽에 바짝 붙어 걷는다.
누가 스치기라도 하면, 중심을 잃을까 움찔한다.
알약은 한꺼번에 삼킬 수 없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넘겨야 한다.
커피를 사들고 걸을 때는 쏟아지지 않도록
컵은 가볍지만 긴장과 집중이 따라붙는다
말은 종종 되풀이되어야 하고, 손은 머리보다 느리다.
타자 속도보다 숨을 고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술은 많이 마시지 않는다.
조금만 마셔도 몸이 마음대로 가누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몸이 망가질까봐, 넘어질까봐, 웃다가 순간 쓰러질까봐—
언제나 절제한다.
조심하면서 마신다는 건, 즐긴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다.
택시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멈춘 뒤에도 문제는 남아 있다.
문이 열리고,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해야 할 때—
나는 입을 열지 않는다.
대신 휴대폰 화면을 꺼내어 보여준다.
지도 앱, 메모장, 혹은 짧게 적어둔 주소.
그걸 읽은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출발한다.
나는 어디를 가고 싶은지 늘 알고 있지만,
그걸 말로 직접 전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도, 전화를 걸 사람은 없다.
하루를 나눌 누군가는, 내 곁에 없다.
나는 그냥,
그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을 뿐이다.
그게 얼마나 단순한 바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손 닿지 않는 것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살아내는 일엔, 늘 한 겹씩의 무게가 따라붙는다.
사소한 일조차, 내겐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