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만 살 수 있다면

by 돛이 없는 돛단배

나는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내려진 결론이라기보다는,

살아오면서 조금씩 굳어버린 생각에 가깝다.

미래를 비관해서라기보다,

그 이후의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쪽에 더 가깝다.


나이가 든다는 걸 떠올리면 막연한 외로움이나 쓸쓸함보다

훨씬 현실적인 장면들이 먼저 떠오른다.

몸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순간들, 매번 조심해야 하는 하루들이다.


지금도 움직일 때마다 늘 불안하다.

조금만 방심하면 넘어지고 다친다.

그래서 붕대를 하거나 보호대를 하고 다니는 게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정도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이렇게 사는 게 익숙해졌을 뿐이다.


이런데 나이가 들면 오죽할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감각은 전반적으로 둔해질 것이고,

지금보다 몸은 더 말을 안 들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 하나 감당하는 것도 점점 버거워질 것 같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걸 유난히 불편해했다.

도와준다는 말이 고맙기보다는 내가 더 작아지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서 도와줘야 하는 사람, 항상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이 되는 미래를 떠올리면

그 모습 자체가 낯설고 버겁다.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아주 비참할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그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몸만 변하는 게 아니다..

살면서 마주친 어르신들을 떠올려 보면,

솔직히 좋은 기억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더 여유가 없어지는 거 같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말이나 행동에서 보기 안 좋은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게 꼭 의도적인 건 아닐 텐데도,

옆에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몸은 점점 불편해지는데 마음까지 여유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테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의 거리는 더 빠르게 벌어질 것 같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세상이 자신을 밀어낸다고 느끼고,

그 감정이 다시 쌓이는 식으로.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노인 인구가 더 늘어나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들이 논의되지 않을까 하고.

그 연장선에서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 같은 말을 이따금씩 찾아보게 된다.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앞으로의 사회가 어떤 질문들을 피해 갈 수 없게 될지 궁금해서다.

그건 희망이라기보다 가능성에 대한 생각에 가깝고,

내가 어디까지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가늠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들이 결국 닿는 곳은 비슷하다.

굳이 이 시간을 끝까지 끌고 가야 할까 하는 질문이다.

더 둔해지고, 더 불안해지고,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게 될 시간을

모두 살아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건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말과는 다르다.

다만, 너무 오래 버텨야 하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에 가깝다.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시간이 고통을 견디는 시간보다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피하지 않으려 애썼고, 할 수 있는 만큼은 열심히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언제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더 증명해야 한다거나, 억지로 더 버텨야 할 이유가

내 삶에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이 생각을 조금은 더 조용하게 만든다.

붙잡아야 할 손도,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할 얼굴도 없어서

이 모든 고민은 결국 나 혼자 감당하는 생각으로만 남는다.


나는 멋지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싫어하던 모습으로 변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가 되기 전에

조용히 멈출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속도를 줄이고, 말을 아끼고,

그만큼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교로는 닿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