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택한 적 없다. #1

by 돛이 없는 돛단배

얼마 전 사촌 형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그 소식을 듣고 놀라시고는
눈시울이 젖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 하나님밖에 모르고 살던 조카가
힘들게 살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갔다는 게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님을 원망하며 욕을 섞어 말했다.
왜 이런 사람을 데려가느냐고,
이럴 거면 믿음이 무슨 소용이냐고.
그러다 문득,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그렇게 혼자 살다 갈 거였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혼자 살다 장가도 못 들고 떠난 게
그저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문득 멈칫했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나도 혼자 살다 갈 텐데,
나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거야?”

엄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너는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잖아.”

그 순간, 많이 당황했다.
엄마가 내가 일부러 결혼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말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있었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제야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
뒤늦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웃 할머니들을 만날 때마다
결혼 안 한 딸이 있으면
우리 막내에게 시집을 보내라고 했다던 말.

그때는 그냥 아들이 불쌍해서,
어떻게든 장가보내려는 마음에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야
엄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구나 싶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 할머니들과 그 딸이
얼마나 불쾌했겠냐며 엄마에게 크게 화를 내곤 했었다.
남에게 그게 얼마나 무례한 말인지 아느냐고.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당혹감과 함께 서늘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면 혹시,
엄마는 당신 아들의 장애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계신 건 아닐까.

정작 나는
혼자가 편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기를
생각보다 오래, 생각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으려 애썼을 뿐,
원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그 사실이
엄마의 말보다 더 조용하게 나를 무너뜨렸다.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누군가의 눈에는
‘일부러 선택한 고독’처럼 보이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오해를
나는 한 번도 바로잡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와버렸다는 점에서.

어쩌면 나는
혼자라는 상태보다
그 상태가 너무 쉽게 설명되어 버린다는 사실이
더 견디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로 정리될 수 없는 시간들이
이미 정리된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

엄마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먼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따져 물을 수 없었다.
그 말이
나를 비난하려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움은
항상 이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안타까움은
상대의 삶을
더 쉽고 단순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날의 말이
내게는 바로 그런 식으로 남았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지만,
마음은 끝나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말 대신
쓸쓸함으로 남았다.

그 쓸쓸함은
소리 없이 오래간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설명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내 안에 고여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만큼만 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