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그녀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얇은 유리 조각처럼 위태로운 기대를 품고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늘 그랬듯, 차갑게 빛나는 화면에 떠오른 그녀의 이름은 찰나의 안도와 짙은 씁쓸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삶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문득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다고 느낄 때면 어김없이 자기 이야기로 가득 찬 메시지를 보내온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평소에는 긴 침묵만이 감돈다.
내가 먼저 안부를 묻는 카톡 메시지를 보내면, 처음에는 건조한 답신이 돌아오지만, 곧 익숙한 변명들이 뒤따른다.
“아, 미안. 설거지해야 돼.”, “너무 피곤해서 자야겠어.”, “내일 일찍부터 일해야 해서 이만~”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매번 비슷한 핑계로 대화의 여지를 잘라낸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폐허처럼 황량해지는 서운함이 밀려온다.
아직 꺼내지 못한 간절한 이야기가 목울대에 걸린 채, 홀로 남겨진 듯한 고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림자처럼 쫓아왔다.
어쩌면 내 삶의 절반 이상을 그녀라는 희미한 빛을 향해 덧없이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어리석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달으면서도, 이 질긴 감정의 끈을 놓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절박하게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지만,
오랜 시간 굳어진 그녀의 무심한 태도를 마주할 때마다 희망보다는 숙명처럼 느껴지는 체념이 앞선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형식적인 안부와 덤덤한 하소연 몇 마디.
익숙한 패턴의 대화창은 순식간에 닫혔고, 나는 또다시 무거운 감정의 찌꺼기에 잠식되었다.
이 답답하고 울적한 심정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라 믿는 그녀는 매번 냉정하게 나의 기대를 꺾어버린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할애해주기를 바란다.
나의 존재를, 희미한 감정의 떨림조차 감지해주기를.
하지만 나의 메시지가 그녀에게는 그저 성가신 울림으로 다가올 거라는 냉정한 현실에,
먼저 카톡을 보내는 것은 늘 망설여진다.
그저 그녀의 메시지가 뜨기만을,
메마른 대지에 단비를 기다리는 초라한 존재처럼 간절히 갈망할 뿐이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알림음에 잠시나마 희망을 품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건조한 자기 이야기나 공허한 일상적인 대화의 나열뿐이다.
그리고 끝은 언제나 동일하다.
“잘 자.” 라는 무심한 인사와 함께 뚝 끊기는 연결.
짧은 디지털 교신 후, 다시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고 음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질긴 운명 같은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스스로가 얼마나 무능력하고 비참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왜 이토록 한 사람에게 매달리며 스스로를 고통 속에 내던지는지,
나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절망적인 자문자답만이 맴돌 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덧없는 감정의 굴레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할까?
이 비참한 심연에서 언제쯤 빠져나올 수 있을까?
어쩌면 더 깊은 상처가 남기기 전에 이 허망한 관계를 단념하는 것이 그나마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함께 주고받았던 수많은 디지털 흔적들이 뇌리를 스치며,
차마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하게 붙잡는다.
희미하게 빛나던 순간들, 서로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던 흐릿한 기억들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냉정하게 관계를 끊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면서도,
그 아픔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어리석은 몸부림을 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녀라는 존재에 기대지 않고, 홀로 굳건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텐데,
이 망가진 마음은 왜 이리도 완강하게 나의 의지를 거부하는 것일까.
오늘도 텅 빈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와의 희미한 연결고리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한 심정과,
더 이상 깊은 상처로부터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내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나는 왜 이토록 어리석게 그녀를 놓지 못하는 걸까?
왜 이토록 한 사람에게 매달려 스스로를 갉아먹는 것일까?
이런 자기혐오적인 물음만이 어두운 밤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녀라는 희미한 잔상이 남아 있고,
이 위태로운 인연이라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어리석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사실, 장애인인 나와 30년째 피상적인 관계를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그녀의 존재는 때때로 나에게 기댈 수 있는 허상 같은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런 얕은 호의와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헛된 욕망을 떨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고 절망스럽다.
그녀에게서 힘겹다는 메시지가 도착하면,
나는 그저 무력하게 그녀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현실적인 조언이나 실질적인 도움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그저 공허한 위로와 피상적인 공감 몇 마디로 그녀의 감정을 달래려는 내 모습은
참으로 무력하다.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는 더욱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이러다 결국 나는 더욱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그녀에게 연인이 생긴다면…
겉으로는 가면을 쓴 채 진심으로 축복하는 척하겠지만,
내면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병적인 질투에 몸부림칠 것이다.
마치 나의 존재의 일부가 도려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휩싸일 것이다.
아마 나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유지하며,
속으로는 산산이 부서지는 심장을 움켜쥔 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버텨내겠지.
실제로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아마 감당하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그녀의 카톡 메시지를 기다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참으로 어리석고 가련한 나의 모습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짝사랑해왔고,
이 깊이 뿌리내린 감정을 쉽게 잘라낼 수가 없다.
오늘도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매듭을 풀지 못한 채, 간신히 하루를 버텨낸다.
나조차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는 나 자신이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어두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