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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돛이 없는 돛단배 Jun 03. 2024

빗소리

시골의 으슥한 집에서,

겨우 10살이었던 나는 엄마가 야간 근무를 하는 주에는

혼자서 자고 혼자서 밥을 챙겨 먹으며 학교에 다녔다.

그 시절,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외로움과 두려움도 내 몫이었다.

어둠이 깔리면 집 안의 모든 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작은 바람 소리에도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밤에 으스한 재래식 화장실에 갈 때면,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릴 때마다 뒷목이 서늘해졌고,

발밑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듯한 느낌에 온 몸이 굳은듯 했다.

때문에 밤에 화장실 안 가려고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귀신이 나오는 전설의 고향을 보고 난 후,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졌다.

귀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밤이 되면 그 두려움은 더 커졌다.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귀신은 없다고 나를 타일렀다.

"세상에 귀신 같은 건 없단다,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지만 내 마음속의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이웃집에 사는 중학생 누나와 아줌마에게 부탁했다.

용돈을 조금 줄 테니 며칠 동안 우리 집에 와서 옆방에서 자줄 수 있겠냐고.

그들은 흔쾌히 승낙해 주었고,

이웃집 누나는 우리 집에서 며칠을 지내며 나의 두려움을 덜어주었다.

누나가 집에 있는 동안에는 밤이 덜 무섭게 느껴졌고,

누나의 존재가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누나가 곁에 있어 준 덕분에 나는 무서움 없이 잘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혼자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가끔 밤에 길고양이들이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낼 때면 무서워서 TV를 켜놓고 자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겨우 잠에 들곤 했다.

그 소리는 밤의 적막을 깨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두려움을 다시 끄집어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 밤에는 오히려 덜 무서웠다.

빗소리가 조용하지 않아서 더 편안했고,

천둥이 치는 소리조차도 고요한 밤보다는 덜 두려웠다.


비가 내리는 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나를 안심시켰다.

빗방울이 장독을 두드리며 내는 소리는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자연의 리듬 속에서 평안을 찾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더 쉽게 잠에 들 수 있었고,

마음속의 불안도 덜했다.

빗소리는 마치 나를 감싸 안아주는 엄마의 품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불안할 때나 우울할  이따금씩 빗소리를 찾아서 틀어놓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빗소리가 잘 들리도록 창문을 조금 열어놓곤 한다.

빗소리는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한없이 평안을 안겨준다.

조용히 창밖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위로하고,

그 소리 속에서 나는 고요한 휴식을 찾는다.

땅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는 내 마음의 소란을 씻어내고,

부드러운 속삭임처럼 나의 모든 걱정을 덮어준다.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내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세상의 모든 시름은 사라진다.

그 소리는 마치 자연이 주는 자장가처럼 나를 감싸 안아,

나는 그 속에서 진정한 평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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