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밤,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외딴 시골집은 꼬맹이 열 살짜리한테
어둡고 조용해서 더욱 으스스한 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밤마다 야간 근무로 집을 비웠고, 텅 빈 집은 온통 내 차지였다.
차가운 정적 속에 겨우 일어나 혼자 냉장고 문을 열어 간신히 찬밥 몇 숟갈을 떴다.
도시락을 싸야 했기에 계란 하나를 서둘러 구워 밥 위에 얹고, 김 몇 장을 대충 잘라 넣었다.
그렇게 혼자 아침을 챙기고 도시락까지 든 채 학교로 향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까지 아무데나 가방을 던져놓은 채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나는 어김없이 텅 빈 어둠만이 감도는 그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어릴 땐 늘 혼자였다.
무섭고 서러워도 털어놓을 데 하나 없었고, 그냥 꾹 삼키는 수밖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만큼 두려움도 덩달아 커져갔다.
밤의 그림자가 짙어지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송곳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창호지 문에 비치는 나뭇가지 그림자는 흉측한 괴물처럼 꿈틀거렸고,
문틈으로 스치는 바람 소리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곤 했다.
한밤중에 깨서 싸늘한 재래식 화장실로 가는 그 짧은 길이,
어린 나한텐 매번 사투였다.
어둠 속에 숨은 그림자가 숨 막히는 시선으로 날 쏘아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낡은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는 귀를 찢는 비명처럼 섬뜩했고,
발밑 어둠 속에서 차가운 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발목을 붙잡는 환상에 정신이 얼어붙곤 했다.
그 뼛속까지 스미는 공포는 밤의 배고픔조차 잊게 만들었고,
텅 빈 배를 움켜쥐고 차가운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음산한 밤이었다.
TV에서 **‘전설의 고향’**이 흘러나왔는데, 하얀 소복 입은 귀신이 화면을 뚫고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긴 머리에 창백한 얼굴, 섬뜩한 눈빛까지.
그 모습은 어린 내 마음에 순식간에 공포의 먹구름을 드리웠다.
그날 이후, 혼자 잠드는 밤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귀신의 잔상이 밤마다 눈앞에 어른거렸고,
어둠이 짙어질수록 그 두려움은 더 선명해졌다.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숨 막히게 나를 짓눌러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밤의 무서움을 몇 번이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그저 현실적인 말로 내 불안을 잠재우려 했다.
“세상에 귀신 같은 건 없어. 그건 다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야. 걱정 말고 혼자 잘 수 있지?”
하지만 엄마의 말은 공허하게 맴돌 뿐이었다.
마음속에 내려앉은 검은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반응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엄마는
이웃집 중학생 누나와 아주머니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며칠만이라도 우리 옆방에서 함께 자줄 수 없겠냐며,
적은 용돈까지 쥐여주고서야 겨우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흔쾌히 승낙했고,
며칠 동안 누나는 조심스럽게 내 작은 세상 안으로 들어와 줬다.
누나의 조근조근한 말소리, 숨소리,
밤늦도록 이어지는 조용한 움직임들이 텅 빈 집을 채웠고,
그저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밤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누나 덕분에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드는 경험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서도 간신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어느 밤,
멀리서 들려오는 길고양이 울음소리가 날 다시 그 끔찍했던 시절로 끌어당겼다.
갓난아기 울음처럼 애처롭고 기괴한 그 소리는,
고요한 밤의 정적을 찢으며 오래된 두려움을 되살려놨다.
그럴 때면 습관처럼 TV를 틀거나,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얕은 잠으로 도망치듯 빠져들곤 했다.
웃기게도,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는
오히려 그 공포를 희미하게 만들어줬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릴 듯한 그 빗소리는,
완벽한 침묵보다 훨씬 더 큰 안도감을 줬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낡은 지붕을 때리는 소리,
심지어 번개와 천둥조차도 그 밤의 쥐 죽은 듯한 고요함보다는 덜 무서웠다.
후드득, 후드득.
장독대를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는,
마치 내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는 위로 같았다.
비 오는 날이면 거짓말처럼 쉽게 잠이 들었다.
그 시간만큼은 무섭고 불안했던 기억들을 잊을 수 있었고,
빗소리는 날 감싸 안아주는 엄마 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문득 불안이나 우울이 밀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빗소리를 찾는다.
빗소리 음원을 틀거나,
비 오는 날이면 습관처럼 창문을 살짝 열어둔다.
축축한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는,
아득한 옛날 기억들을 불러오고,
굳게 닫힌 마음 어딘가로 천천히 스며든다.
창밖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오랜 침묵 끝에 건네는 위로처럼,
익숙한 그 울림 속에서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한다.
투명한 빗방울 하나하나가
무겁게 쌓인 마음의 짐들을 씻어내리고,
덧없이 스러지는 불안들을 조용히 덮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