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푼으로 올라와 20년 가까이 멀쩡하지 않은 몸으로 쉬지 않고 일했고,
많이 고단했지만, 결국 내 이름으로 된 18평짜리 아파트 하나를 샀다.
처음 열쇠를 손에 쥐던 날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 집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더랬다.
과천에 위치한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다.
단지가 아주 크진 않지만, 새로 지어져서 외관도 깔끔하고 분위기도 아늑하다.
처음엔 그런 점들이 나름 괜찮게 느껴졌다.
낯선 동네, 낯선 공간, 새로 시작하는 기분.
잠깐이었지만 괜한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설렘은 금세 사라졌다.
지금은 그저 조용한 곳에서 묵묵히 하루를 보내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2년 동안 단지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스쳤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주차장에서, 단지 입구에서.
하지만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인사를 주고받는 이웃도 없다.
그나마 매일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경비실 아저씨만
꾸준히 "다녀오세요", "수고하셨어요" 하고 인사를 건네신다.
그 인사가 전부다.
며칠 전엔 단지 사람들끼리 아파트 앞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열었다.
나는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커피를 들고 돌아오는데 운동장 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아빠들은 족구를 하고,
엄마들과 아이들은 주변에서 박수치며 응원하고 있었다.
깔깔 웃는 소리, 환호성, 공 튀는 소리.
멀리서 보기엔 참 활기차고 좋아 보였다.
가까이까지 가긴 했지만,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학교 담장 옆에 서서 한참 구경하다가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혹시 누가 “같이 들어와요” 하고 말이라도 걸어줬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커피 잔만 따뜻하게 식어갔다.
단지 안에는 이것저것 시설이 많다.
헬스장, 작은 도서관, 커뮤니티 룸, 놀이터.
어떻게 보면 참 잘해놓은 곳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굳이 가면 되지 않느냐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막상 문 앞까지 가보면
안에 사람들 있는 게 보이고,
그걸 보는 순간 발걸음이 멈춘다.
괜히 민망하다.
들어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낯선 공기, 내 자리가 아닌 느낌.
그런 게 부담스럽다.
가끔 생각한다.
도대체 아파트가 왜 이렇게 인기 있는 건지.
맨날 층간소음 문제로 싸우고,
주차는 항상 부족하고,
밤에 아이들이 조금만 뛰어도 민원이 들어오고,
어디선가 누군가는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린다.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온통 불만글,
그것도 꽤 날 선 말투로 올라오곤 한다.
내 집인데도 청국장 하나 끓이려면
창문을 닫고 눈치부터 본다.
뭐하나 편한 게 없는데,
이렇게까지 비쌀 이유가 있나 싶다.
몇 번 시도는 해봤다.
도서관 문 앞까지 갔다가
안에서 누가 책 읽고 있는 걸 보고 그냥 돌아온 적도 있다.
한두 번 하다 보니
그냥 안 가게 됐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이 단지 안에서도 내가 다니는 길은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 동은 단지 제일 끝에 있다.
그 앞에는 벤치 두 개랑 가로등 하나가 있다.
밤이 되면,
사람들 거의 없는 그 시간에
나는 그 벤치에 앉는다.
음악을 듣거나,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게 이 아파트에서 내가 누리는 유일한 휴식이다.
시끄럽지 않고,
시선이 느껴지지 않고,
아무 설명 없이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
크게 기대하는 것도 없고,
외롭다든지, 고립됐다든지
그런 말 꺼내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이런 식으로 조용히 지낸다.
그게 나한텐 더 편한 쪽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