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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이 없는 돛단배
Sep 09. 2024
병원 예약, 은행 업무, 동사무소에서 간단한 일을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를 통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간단한’ 전화 한 통이 가장 큰 장벽이다. 나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언어장애가 있는 나는 내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몇 마디 말로 끝낼 수 있는 일을, 나는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매번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결국 전화로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일조차 직접 발걸음을 옮겨 해결할 수밖에 없다.
병원 예약 하나를 위해 반차를 내고 병원을 직접 방문한다. 전화 한 통이면 끝나는 일을 해결하려면 시간을 내서 길을 나서야 한다. 작은 은행 일이나 동사무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도 굳이 방문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몇 분의 전화 통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나는 항상 직접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방문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려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비슷하다. “예약이 꽉 찼습니다. 몇 달 후에 다시 오세요.” 은행에서도, 동사무소에서도 내가 힘들인 시간과 노고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금방 처리된다. 방문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시 또 방문해야 한다.
이렇게 몇 번이고 헛걸음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화를 할 수 있었다면 단 몇 분이면 끝날 일이지만, 나는 그 몇 분을 대신해 하루를 할애해야 하고, 그 하루를 다시 허무하게 보내고 나면 또 다른 날을 잡아야 한다. 몇 번을 반복해야 겨우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때도 있고, 그렇게 헛걸음을 세 번, 네 번이나 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간단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드는 나의 시간과 노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몇 배나 더 크다.
이 모든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답답함이 커져만 간다. 반차를 내고 방문했지만 헛걸음이 되는 경우가 쌓일수록, 그때마다 무력감과 함께 허탈함이 몰려온다. 전화 한 통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내가 들여야 하는 시간과 수고가 너무 크다는 사실이 점점 더 나를 지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간단한 일이 나에게는 큰 산처럼 느껴질 때마다, 내가 이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금 현실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