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는 말, 그 말이 이제는 참 절절하게 와닿는다.
예전엔 TV에서 누가 울든, 영화에서 누가 죽든,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마음을 쓰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드라마 한 편을 보다가도, 눈길 한 번에, 말 한 마디에, 이유 없이 울컥한다.
슬픈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그 장면이 내 안의 오래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 같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들, 잘 포장해둔 상처들, 애써 외면하고 무시했던 외로움과 허무함이
갑자기 현실처럼 밀려든다.
그 순간은 분명히 드라마인데, 어느새 나는 그 속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울고 있다.
왜 우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눈물이 흐른다.
그게 더 이상한 건, 내 인생이 진짜 힘들 때는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하루하루가 고단하고, 숨이 턱 막히는 날들도 수없이 많았는데, 그땐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슬픔을 느끼기엔 너무 지쳐 있었고, 아픔을 표현하기엔 너무 오래 참아왔던 것 같다.
감정이라는 게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느끼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피곤에 짓눌린 몸을 겨우겨우 눕히고, 텅 빈 천장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늘 똑같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숨은 점점 깊어지고, 그 한숨조차 내 감정의 전부인 듯하다.
눈물 대신 한숨이, 울음 대신 침묵이, 그렇게 감정을 대신하게 된 삶.
생각해보면, 그런 눈물을 흘린 적이 딱 한 번 있긴 했다.
심리상담사 앞에서, 처음으로 내 얘기를 제대로 꺼냈던 날.
처음엔 담담하게 말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목이 메고,
겨우 삼키던 감정이 무너져버리듯 터져 나왔다.
그때는 나도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토록 눌러왔던 감정들이 그렇게 쏟아질 줄 몰랐으니까.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이야기들인데,
그날은 무슨 단추 하나가 눌린 것처럼, 그동안 쌓인 게 다 무너져 내렸다.
울면서도, 이게 정말 내 감정이 맞는지조차 헷갈렸다.
마치 내가 운다기보다는, 오랫동안 내 안에 갇혀 있던 무언가가 나 대신 울어준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한 장면, 낯선 사람의 슬픈 이야기, 그런 것에 더 쉽게 무너진다.
현실에서는 울 수 없었던 감정들이,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는 아무 경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게 꼭 슬퍼서가 아니라, 마치 오래 묵은 감정의 압력이 그제야 조금 풀려나는 느낌이다.
그렇게 울고 나면, 뭔가 정리될 것 같지만,
현실은 늘 같고,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눈물 한 줄기 흘렸을 뿐인데, 그게 끝이다.
오히려 더 공허하다.
무너진 감정을 수습할 틈도 없이,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를 견뎌야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감정의 표현이 뒤틀리는 일이 아닐까.
어릴 땐 작은 일에도 펑펑 울었고, 기뻐서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땐 감정이 선명했고, 삶이 단순했으며, 눈물이 솔직했다.
지금은 아니다.
감정 하나 꺼내기 위해서는 수십 겹의 굳은살을 뚫고 나와야 하고,
그마저도 꺼내면 어디까지 흘러버릴지 몰라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서 참고, 눌러두고, 괜찮은 척하고.
그러다가 뜬금없는 순간에 울어버리고,
왜 우는지조차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게 나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 더 외롭게 만든다.
모두가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있으니까.
눈물조차 사치가 된 이 세상에서, 나 하나쯤의 슬픔은 그냥 사라져도 되는 감정처럼 느껴진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며, 나는 점점 더 침묵에 익숙해지고, 감정 없는 얼굴을 연습하고,
그러다 끝내 나 자신조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닿게 된다.
그러니까, 가끔 드라마 한 장면에 무너지는 나 자신이 이상하지 않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기도 하니까.
적어도 그 장면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건, 내 안에 아직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그것마저 사라지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