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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우리 Oct 16. 2019

다정도 병이라면 그냥 불치병으로 살래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 저자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해설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는 (돌아서) 삼경을 알리는 때에, 배꽃 한 가지에 어린 봄날의 정서를 자규가 알고서 저리 우는 것일까마는 다정다감(多情多感)한 나는 그것이 병인 양, 잠을 이루지 못하노라.




'다정가'라고 불리는 이조년의 고려 시조만큼 '다정함'을 잘 표현한 시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 감정을 잘 표현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면, 어른답지 않거나 프로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은 미숙하거나 아니면 예술을 하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합니다.

 
공감통역사 김윤정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와 우정의 온도차가 생겨서 제가 그 친구와 관계를 더 발전할 가치가 있는가를 고민하고 거리를 두기로 결정한 일이 최근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마음이 어떤 감정이었나요?”

“...”

“부러웠나요? 서운했나요?”
 
생각지도 못한 작가님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서운함이었고, 제가 그 친구들을 좋아했다는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많이 좋아합니다. 좋게 말하면 정이 많습니다.
 
‘다정도 병’이라는 말!

제가 그렇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다정하다)



어리석은 사람이 불필요한 인연을 많이 만든다 하기에, 저한테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잘하는 것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 하기에, 그랬다가 바보처럼 당하기만 했던 시간들 덕분에 지금은 미리 징후가 감지되면 제 마음을 단속합니다.
 
똥이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면서...
또 당하고 싶냐면서...
 
저는 저한테 잘해주는 사람에게만 잘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천성이 어디 가나요? 미운 사람도 저에게 살갑게 대하면 금방 잊고 봐줍니다. 억지로 마음 닫는 게 더 힘듭니다.
 
요즘 날도 쌀쌀하고 세상 뉴스도 슬퍼서인지 다정도 병이라면 그냥 불치병으로 안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신 나에게도 다정하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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