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다운 삶(하루)
쓰닮쓰담(글쓰기 모임) 과제를 받고 생각해보니 하루도 나답지 않게 산 적은 없었습니다. 지질한 내 모습도 해맑은 내 모습도 피곤에 찌든 내 모습도 나였습니다.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나이 들면 이렇게 뛰기도 어렵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뛸 일이 생기면 지금 뛸 수 있는 내 몸이 기특하고 신납니다. 오늘 아침에도 신호가 간당간당한 건널목을 뛰어 가면서도 혼자 마냥 즐거웠습니다.
치열한 아침 출근길에 또 다른 나를 만납니다. 생각보다 저는 재빠른 사람이었습니다.
지옥철을 타면 우아해질 수 없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순간 많은 고민과 선택에 놓입니다. 자리에 앉을 때까지 본능에 충실해집니다. 자리에 앉기 위한 혼자만의 눈치게임을 합니다. 오랜 출근 경험 속에 쌓인 딥러닝은 완성 수준입니다.
어떤 위치에 줄을 서서 타면 피 터지는 경쟁 속에서 자리에 앉을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외근으로 평소와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다 보니 안타깝게 자리에 앉지 못하고 1시간 넘는 길을 서서 갔습니다. 다행히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자리가 났습니다. 그 한 정거장이라도 앉아서 갈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재미없는 교육을 아침에 들으니 졸렸습니다. 오늘은 커피 살 시간도 없어서 모닝커피를 공급해 주지 않아 더 힘들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같이 수업을 듣는 분이 챙겨주신 과자가 보였습니다. 이리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간식 챙겨주는 분이 제게는 천사입니다. 따듯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끼며 잠을 깨기 위해 열심히 과자를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뵌 부장님과 우동을 먹으며 이런저런 업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일 얘기를 할 때 신이 납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샘솟습니다. 이런 걸 보면 제가 하는 업무가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 교육이 어땠냐는 교육담당자의 질문에 솔직히 지루했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것도 감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싫어하는 것은 거칠게 표현하지 않지만 필요하다 생각하면 전달은 합니다.
마침 송년 모임이 있어서 저녁에 친구들과 훠궈 식당에 모였습니다. 딱히 기억나는 이야기는 없었으나 이 시간들이 저에게 에너지를 줍니다.
저녁을 먹고 지인과 커피를 마시러 나온 길에 우연히 편집샵(29cm스토어)을 발견했습니다. 리디북스 이벤트 참여, 요괴 라면, 문구들을 보니 마냥 신이 났습니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랑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니면 필요한 거 있어?”
”아니 없어.”
집 앞 입구에 거의 다 도착하니 전화가 왔습니다.
“파스 좀 사다 줘.”
"윽... 왠수!"
저절로 욕이 나왔지만 아프다니 안 사다 줄 수 없었습니다.
“날씨가 덜 추우니 봐줬다. 사다 줄게.”
다시 걷던 길을 되돌아 가서 파스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
밤늦게 보는 신랑, 파스 붙여주면서 물어봅니다.
”신랑은 언제가 가장 자기다운 삶이야?”
“자려고 누웠는데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는 상태! 이때가 가장 행복해.”
평범하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기록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고 가장 나답게 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