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종복님의 동네서점 25년 분투기
동네서점이 유행인 요즘에 뚝심으로 성균관대 정문 앞에서 25년 동안 서점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책방 풀무질'의 은종복 대표님입니다. 동네서점 25년 분투기를 담은 '책방 풀무질' 책을 읽고 대표님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책방 풀무질에서 독서모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책방풀무질 Daum책]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7090846
[책방풀무질 다음카페] http://cafe.daum.net/poolmoojil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동네서점을 25년 동안 지키며 외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20대부터 50대 청춘을 책방에 바친 은종복 님의 동네서점 25년 분투기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은종복 님과 함께한 독서모임 후기와 함께 책 '책방 풀무질'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쓴 글입니다.
책방 풀무질은 1985년 여름에 성균관대 앞에 문을 연 인문학 서점입니다. 학생운동만 열심히 했던 저는 제 나이 스물여덟 되던 1993년 4월 1일, 만우절날에 거짓말같이 책방 풀무질을 시작하게 됩니다.
대장간에서 낫이나 칼을 만들 때 불을 피우고 센 바람이 일어나도록 푸푸 불어주는 기구가 풀무입니다. 풀무로 바람을 일으키는 일이 바로 '풀무질'입니다. 풀무질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고 정권을 잡은 것에 불바람을 일으켜 맞서려는 저항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풀무질은 원래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회지 이름이었는데 그것을 빌려 온 것입니다. 제가 네 번째 일꾼입니다. 제 앞에 일했던 사람들은 2, 3년씩 책방 풀무질을 꾸렸습니다. 저도 딱 10년만 책방을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25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네요.
남은 것은 은행 빚이요, 얻은 것은 아내와 아들입니다.
동네에 책방을 열고 싶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지는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도서정책은 동네에 작은 책방을 꾸릴 수 없게 만듭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서울에서만도 작은 책방이 서른 개 넘게 생겼지만 한두해 지나면 대여섯 개가 문을 닫습니다.
1995년부터 인터넷서점이 생기고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서 싼 값으로 책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4년부터 10퍼센트까지만 싸게 줄 수 있는 부분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무너지는 책방 살림을 살리기에는 부족합니다. 갈수록 책방 빚이 늘어서 책방 문을 닫고 싶어도 빚을 갚을 수 없어 닫지도 못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10년을 버티면 평생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책방 일은 그렇지 못합니다. 책방을 하는 사람으로서 책방 살림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 슬픕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말이기에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세상이 되려면 일등주의, 학력중심주의, 경제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학 앞에 있는 책방에는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는 고전, 철한, 인문, 사회과학 책들이 많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참 힘든 일입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일터 찾기 공부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작은 책방들이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동네책방은 많아지고 있고 사람들도 이렇게 "돈 돈 돈" 하는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다고 있으니까요. 그런 분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을 빼곤 대부분 나라들이 완전도서정가제를 하고 있습니다. 책은 다른 상품과 달리 자유시장 경쟁에 맡기면 동네책방이 문을 닫게 되고 작은 출판사들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부터 완정 도서정가제가 무너지고 책을 싸게 주는 인터넷서점이 생겼습니다. 대형서점들은 출판사에 몇 달 뒤에야 현금이 될 수 있는 어음으로 책값을 주었는데 인터넷서점들은 대형서점보다 책을 싸게 주면 바로 현금으로 책값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싸게 받은 책으로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싸게 팔았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동네책방에서 책을 보고 사기는 인터넷서점에서 샀습니다. 점점 동네책방이 사라졌고 지금 대학가 앞에 책방이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동네책방이 씨가 마르고 인터넷서점이 공룡처럼 커졌습니다.
출판사들도 인터넷서점에 책을 싸게 주어야 하고 광고도 해야 하기에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책값을 올리게 됩니다. 정가 10,000원이면 될 책을 15,000원으로 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책을 싸게 사려고 인터넷서점을 이용했지만 결국 책값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풀무질에서는 인문사회과학 책들은 한 권 팔면 20퍼센트쯤 남습니다. 인문사회과학 전문 책방으로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대학 전공도서와 수험서가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 책들은 카드로 책을 사면 10퍼센트밖에 남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책방 살림을 꾸릴 수가 없어 은행에서 돈을 빌려다 책값으로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은행에서도 돈을 더 이상 빌려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완전도서정가제만이 책방도 살고 출판사도 사는 길입니다.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세상을 만드는 것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날을 맞는 것
제가 책방을 쭉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이 있습니다. 2003년 봄 미국이 이라크를 쳐들어가서 아이들을 미사일로 무참히 학살한 사건입니다. 저는 가슴이 아파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갈수록 어른들이 벌인 싸움에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눈을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밤잠을 설치고 쓴 글이 '전쟁반대 공동행동에 함께하자'라는 글이었고, 이 글이 '한겨레' '왜냐면' 꼭지에 실렸습니다. 그 글이 나오고 여러 사람이 전화를 주셔서 제게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꼼짝없이 책방 안에서 지내느라 어디 집회 한 번 마음대로 갈 수 없었습니다.
대신 글을 써서 책방에 오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맑고 밝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야지 싶었습니다. 그날부터 새벽잠을 줄이고 글을 썼습니다. 16절지 한쪽 분량으로 글을 써서 책방에 오는 손님들에게 나눠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제 꿈을 이루려고 책방 옆에 뜻있는 사람들과 '풀무질 책놀이터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네 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동네 아이들이 와서 그림책도 읽고 옛이야기도 듣습니다. 책 읽기 모임도 여러 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 읽기 모임, 소설 읽기 모임, 녹색평론 읽기 모임, 철학 고전 읽기 모임, 환경책 읽기 모임, 글쓰기 모임도 있어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아픔이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저는 책 읽기 모임에 오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 오지 않아도 좋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게 모두 책입니다. 책 한 권 읽는다고 내가 바뀌거나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냥 몸, 마음 가벼울 때 모임에 나와서 모임에 나온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책방 풀무질은 기름진 밭이 되려고 할 뿐이지 씨앗은 스스로가 뿌리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어른들도 행복한 세상이고 지구마을이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책방 풀무질에 오는 사람들과 그 꿈을 나누고 이루고 싶습니다. 동네책방이 살아야 마을이 살맛 나는 곳이 되고 마을이 살아야 마을 사람들도 서로 웃고 떠드는 정이 생깁니다.
한 나라를 넘어 지구마을에 사는 목숨들이 제 목숨대로 살며 춤추고 떠들고 아픔과 기쁨을 나누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 어느새 성큼 다가옵니다.
1996년에 나온 책 '오래된 미래'입니다. 스웨덴 평화활동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쓰고 녹색평론사에서 펴냈습니다. 발행인 김종철 님이 김태언 님과 함께 옮긴 책이었습니다.
*지금은 '녹색평론사'가 아닌 '중앙북스'에서 이 책을 출판하고 있다고 은종복 님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인도 북구에 있는 라다크 마을 이야기입니다. 좀 더 큰 아이들이 더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나이 든 사람들을 서로 보살피고, 야크라는 동물에서 나온 똥을 거름으로 쓰고 땔감으로 씁니다.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평화롭게 지내던 곳이 서구에서 편리한 기계문명과 문화가 들어오면서 공동체가 깨지고 도시로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갑니다. 글쓴이는 이런 일을 몇십 년 동안 지켜보다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숨을 쉬는 지구가 더럽혀진다면 우리의 꿈들도 이루어질 수 없을뿐더러 이루어져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풀무질에 오는 손님들에게 '오래된 미래'를 권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서 대형서점보다 이 책을 더 많이 팔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대구에서 이 책의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이 책방 풀무질에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은종복 씨, 나랑 점심밥 먹어요. 책방 문은 잠깐 닫고 같이 나갑시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늘 어머니가 싸 주신 도시락 밥을 먹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책방 문을 닫으면 그동안 책방에 들르는 사람들은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돈을 벌어서 편안하게 살고 몸이 튼튼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고 권력과 명예도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며 산다면 참 행복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행복을 찾으려 해도 마음이 맑지 않다면 모든 것이 헛것이 되기 쉽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내 마음속에 누가 들어 있는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를 모른다면 헛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현실을 사는 나를 알 수 있는 가장 쉽고 좋은 길은 짧은 글이라도 스스로 쓰는 것입니다. 같은 밥을 먹어도 몸속에서 소화가 돼서 나오는 똥은 다 다릅니다. 모든 글은 글 쓴 사람이 풀어놓은 마음이고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을 줍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한 생각을 다른 이들과 나눌 때 그것이 제대로 생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생각하는 삶이 먼저입니다. 똥을 누가 대신 눠 줄 수는 없으니까요.
[에필로그]
책방 풀무질에서 '오래된 미래'를 사고 싶었으나 같이 온 다른 분도 원하셔서 그분에게 양보하고 대신 은종복 님의 다른 책인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를 샀습니다.
저희 집 주변에는 동네서점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는 동네 아파트 상가에 서점이 있어서 심심하면 가서 책도 보고 쉽게 사고 서점 언니와 얘기하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책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한참 나가야 합니다.
은종복 대표님 말씀처럼 책을 조금 싸게 살려고 하다가 동네서점도 잃고 책값만 더 올린 상황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꿈과 신념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분이 있어서 제가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의 조그마한 이득을 얻기 위해 했던 일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서점'만은 아닐 것입니다.
은종복 대표님 꿈대로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꿈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