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항상 우리 옆에 존재한다
신기하다! 회사 고민과 시댁 고민이 동시에 생긴 적이 없다.
나는 일찌감치 하루에 4시간만 일했다. 많이 벌지는 못해도 4시간 일하고 낮에 수영하고 여유 있는 삶이 좋았다. 배우자도 돈보다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했다. 다행히 바람대로 퇴근을 오후 5시에 하는 분과 만나 결혼했다.
둘이 시간이 참 많았다. 결혼하면 더 재밌게 시간을 오래 보낼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여유를 가장 먼저 알고 이용하신 분은 시부모님이었다.
집이 어설프게 가까운 게 화근이었다. 차로 15분 거리에 시댁이 있었다.
평일 저녁에 어머님으로부터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밥하기 싫으면 밥 먹으러 와!”
주말 아침에도 전화가 왔다.
“뭐하니?”
낮에 쉬고 있을 때는 아버님이 감기로 병원에 가신다고 어머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쩌란 말인가? 차로 운전해서 모셔달라는 것은 아니고, 감기 걸리셨으니 챙기라는 말씀이었다.
이런 결혼 생활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신랑과 함께 여유 있는 저녁 시간과 주말을 꿈꿨었다. 자주 오는 아버님의 전화는 내게 공포였다.
“지금 어디니?”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물어보시는 이 질문은 아버님의 선한(?) 의도와 달리 어떤 대답을 해도 며느리 입장에서 불리했다.
주말에 친정에서 있을 때 당당하게 말하기가 겁이 났다. 저녁에 친구들과 있을 때 전화와도 마찬가지였다. 신랑과 둘이 있을 때도 왠지 이 질문은 “왜 집에 안 오니?”라고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결혼 전 친정 부모님도 나에게 전화를 이렇게 자주 하시지는 않았다. 문화 차이인지는 몰라도 답답했다.
내 얼굴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시부모님이 잘해 주시냐?”라는 말에 힘들다고는 못하고 “절 너무 좋아하셔서 탈이죠.”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신랑에게도 못 받았던 구속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말에 아버지는 냉정하게 팩트 폭격을 하셨다. 하지만 정말 나를 위한 말씀이었다.
“네가 시간이 많아서 그래. 네가 바쁘면 돼.”
그때 알았다. 내가 나의 시간을 귀하게 쓰지 못하니 다른 사람을 노린다는 것을!
그래서 결혼생활 1년 만에 9-6 전일제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 들어갔다.
내가 바쁘니 아무도 나의 시간을 탐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많은 혜택을 주는지 몰랐다. 시부모님의 가치관과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일하는 며느리는 본의 아니게 존중과 배려를 받게 되었다.
약속시간도 가족 중 가장 바쁜 나를 중심으로 잡게 되고, 때론 일이 바쁠 때는 가족 행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도 받았다.
물론 직장 일을 한다고 해서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신기하게 이런 고통의 시간을 겪으니 직장생활이 상대적으로 편했다.
가정 내에서 생기는 고통은 잘 때까지 쉴틈이 없지만 회사 고민은 집에 오면 잊게 되었다.
그렇다고 회사일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직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책임과 경쟁의 무게만큼 더 고통스럽다. 그리고 내가 원한 근무 시간은 9 to 6 였으나 현실은 9 to 10 또는 8 to 11 였다. 이 시간은 평균시간이다. 항상 그 이상 초과 근무를 했었다. 이렇게 힘들어도 직장 생활은 투입 노력 대비 정확하게 피드백을 받아서 좋았다.
결혼 후 재발견하게 된 나의 스킬이 있었다. 시부모님 대하듯 상사를 깍듯이 대하고, 시부모님은 상사 대하듯 상명하복 모드로 모시니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 관계의 중요한 포인트는 마음으로 해서는 절대 안 통하고 상처만 받는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는 몰라도 이러한 권력관계에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수직적인 권력관계에서는 필요한 스킬이다. 시부모님을 친정부모님 대하듯 마음으로 대했다가는 버릇없고 눈치 없는 며느리로 혼만 난다. 상사에게 보고 하듯 가족 행사가 있으면 1안 2안으로 보고하고 선택권은 시부모님에게 드린다. 절대 통보하면 안 된다. 답은 정해져 있지만 사전에 의견을 구하는 제스처를 해야 한다.
뭔가 해탈한 것 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이 있다. 시키는 대로 하지만 내가 해서 후회할 것 같으면 아예 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나는 있다. 결국 행동의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까.
고민도 많이 해보니까 패턴이 보인다. 내가 요즘 시댁 고민을 하는 거 보니 회사 고민은 없는 것 같다.
사실 회사 고민이 왜 없겠는가? 가장 큰 고민이 있으면 다른 고민은 사라진 것처럼 묻힌다. 난 그것을 고민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고민이 커도 내가 할 수 있는 고민의 총양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