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약속을 하지 않는 편이다. 결국 지키지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껏 살면서 가장 오랫동안 지켜온 약속은 ‘약속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 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약속을 하게 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다. 2020년 12월 31일과 2021년 1월 1일은 별 다를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해가 바뀌어도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날이나 저 날이나 별 일없이 흘러갈 거란 걸 잘 알면서도,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 되면 나도 모르게 ‘약속’이란 걸 하게 된다. 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그러나 약속이란 게 꼭 지켜져야만 아름다운 약속인가? ‘약속’이란 단어는 애초에 지키기 힘드니까 탄생한 단어이다. 약속이 지키기 쉬운 무엇이었다면 약속의 의미에 ‘다짐’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이유가 없다. (약속의 사전적 정의는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함’이다.) 지키기 힘든 것이기에 다짐(어떤 일을 반드시 행하겠다는 굳건한 마음 가짐)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지라도 다짐은 할 수 있지' 하며,지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 약속을 더해본다. 내게 약속은 저물어가는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시기에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니까. 며칠 후면 한 살 더 먹을 터이니 조금은 더 현명해지자. 약속을 지킬 확률이 지키지 못할 확률보다는 조금이라도 높은 약속을 선택하기로 한다.
올해의 내 약속은 ‘나와 멀어지지 않기’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글을 통해 내가 걸어온 길을 되밟아 가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다. 한 때는 그토록 싫어했던 나였는데, 어린 시절 상처 받고 눈물 많던 그 아이를 꼬옥 안아주고 어둡던 내 삶에 한줄기 빛을 비춰줄 사람은 결국 나뿐이란 걸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를 껴안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은 흡사 심해 잠수부가 바다 밑바닥에까지 들어가 바닥의 찌꺼기들을 휘젓는 장면과도 같았다. 볕이 들지 않는 바다 밑바닥은 내 심연이었다. 심연의 밑바닥을 휘저을 때마다 온갖 찌꺼기들이 떠올랐다. 어둡고 뿌연 그것의 정체는 내 안의 상처이자 감정의 불순물이었으리라. 글 속에서 내 상처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대면할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내 감정의 불순물들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게 진정 치유인 걸까.
그렇게 나는, 글 속에서, 점점 나와 가까워졌다.
‘글’ 뿐만 아니라 ‘길’도 나와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줬다. 언젠가 길 위에서, '인생은 여행이다'라고 느꼈던 적이 있다. '인생은 여행이다'로 끝내기엔 삶이 그리 단순한 무엇 같지는 많아서 ‘인생은 나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다’라고 문장을 고쳐 적었다.
그렇다. 인생은 나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다. 마음 안 맞는 사람과 여행을 가본 사람은 누구보다 잘 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아니 어떤 경우에는 여행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여행의 모두를 결정한다는 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동네 뒷산이 싫어하는 사람과 억지로 떠난 히말라야보다 나은 법이다.
그렇게 나는, 길 위에서, 점점 나와 가까워졌다.
나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삶은 힘들어진다. 내가 나와 가깝지 않으면, 나는 나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먼 타인과 같이 사는 셈이 된다.
서른이 넘어서야 글과 길을 통해 겨우 가까워진 나, 가까울 때는 누구보다 가깝지만 멀어질 때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생면부지 타인보다도 멀어질 수 있는 나,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렵게 가까워진 나와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싶다.
2021년에도 해는 동쪽에서 뜰 것이고 별 일 없이 흘러가겠지. 나와의 관계도 딱 지금처럼만 흘러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