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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Oct 05. 2021

인생 후반전

인생 앞에 놓인 세 가지 선택지

나에게는 꿈이 3개 있다. 여기서의 꿈은 실현시키고픈 소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초등학생들이 '진로희망' 란에 쓰는 '장래희망'을 말한다. 나이 마흔에 새로운 장래희망? 오늘 하루 맨 정신으로 살았다면 감사해야 하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운 좋게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행운으로 십수 년을 잘 먹고 잘 살아왔으면서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그러나 이젠 꿈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다. 이제 남은 삶은 다른 직업을 가져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내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나에 대해 잘 모르고 만난 사람들은 내 직업이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면 하나 같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 중 캠핑카에서 살며 출퇴근해 본 선생님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나의 '히피스러움 + 모험 DNA + 도전 정신 + (아마 제주도 최소 8강 안에는 들어갈) 자유분방함 + 필요충분치를 초과한 감수성 + 나사에서도 부러워할 추진력(단, 이 추진력은 하고픈 일을 할 때에만 발휘됨) + 죽을 때까지 철들 생각 없음'과 초등학교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한눈에 봐도 어울리는 조합 아니다. 나 또한 선생님이, 아니, 공무원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 생각했기에 그동안 글을 쓰면서 내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흘리지 않았다.  

Into the wild




마음속에 갈등이 많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깨닫게 된 최근 몇 년 간은 더 그랬다. 어쩌다 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떠올려봤다. 내가 어렸을 때 난 교실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꼈고 내가 선생님이 되면 우리 반 학생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줄 수 있겠다 싶어서 선생님이 됐다, 는 건 이제 와서 하는 소리고 돌이켜보면 대학 진로를 결정할 당시 때맞춰 터져 버린 IMF가 내 진로 담당 선생님이 된 것 같다.

"진로? 뉴스는 들어서 바깥세상 춥다는 건 알고 있지? 너 수능 몇 점 맞았지? 그 점수 맞춰서 안정적으로 가"


하긴 IMF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긴 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런 때에는 교사나 공무원이 장땡이라고..


그때 나는 보통의 대한민국 청소년처럼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할 때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본 적 없었고, 이는 결국 수능 점수 + 직업 안정성 + 가정형편 + 아버지께서 못 이룬 꿈을 내가 이루겠다는 지극히 조선스러운 전근대적 사고방식, 이렇게 박자를 고려한 일생일대의 결정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선택한 첫 번째 진로는 두둥! 해.군.사.관.학.교.


몇 달 후, 나는 해군사관학교의 2차 시험까지 합격해놓고 마지막 3차 시험인 수능에서 떨어졌다. 지금까지 살면서 '진정 하늘이 날 도왔다고 느끼는 순간 Best 3'를 꼽는다면 해군사관학교 탈락이 수위를 다툴 것이다. 훗날, 스물다섯에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는 순간 느껴버리고 만 것이다. 지구 상의 모든 직업 중 나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아마도 군인임을...


이건 나에게도 감사를 해야 한다. 내가 수능을 잘 봤다면 아마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했겠지. 아버지의 못 다 이룬 꿈을 대신 이루겠다는 신념으로 사관학교를 선택한 거니까 날 보며 뿌듯해하는 아버지 얼굴을 보며 그만두지도 못했겠지. 그렇게 내 인생은 망했겠지.

휴우... 다행이다...


*해군사관학교 탈락으로 인생을 구원한 자세한 썰이 궁금하신 분은 '네 멋대로 해라'(https://brunch.co.kr/@hanvit1102/19)를 클릭하세요.


수능 출제위원들의 도움으로 겨우 인생 망할 뻔한 위기에서 탈출한 나는 집에 손 벌리지 않고 다닐 수 있으면서 가늘고 길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직업을 찾았고 그렇게 선택한 직업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왠지 다른 직업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땐 미처 몰랐지.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지. 난 어디서든 적응은 잘하니까 여기서도 신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초등학교 선생님을 그만둬야겠다고 느끼게 된 계기를 말하라면 수십 가지 이유가 나올 거 같아서 아예 시작을 하지 않겠다. 다만, 초등학교 선생님을 그만두려는 이유를 한 줄로 말하라면 이렇게 얘기할 수는 있다.

죽을 때 후회하기 싫어서.

한 줄 더 준다면 이렇게 보태겠다.

죽을 때 후회하기 싫어서. 죽을 때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은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기 싫어서.

또 한 줄 더 주시려고요? (앗, 이거 글 형식이 만담이 아닌데?)

죽을 때 후회하기 싫어서. 죽을 때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은 이게 아닌데...'라고 말하기 싫어서. 죽을 때 '그래도 난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살고픈대로 살았으니 후회는 없어. 이만하면 멋진 여행이었'라고 말하며 온 힘을 다해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떠나려고.




언제부터였지? 지금처럼 쭉 가다 보면 아마 평생 초등학교 선생님만 하다가 죽을 것 같은데, 내 인생이 그렇게 ''까지 흘러가버리면 죽기 전에 분명 후회할 것 같은 확신이 드는 거다. 난 후회라는 감정을 젤 싫어하니까 늦기 전에 다른 길로 가보자고 다른 직업을 찾아봐도 초등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할 수 있는 직업이 있어야 말이지.(초등학교 선생님은 그만두는 순간 다른 직종에선 고졸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냥 쭉 살아왔다. 다른 대부분의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극강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에휴, 이젠 그만둬야겠다' 하면서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역시 '먹고사니즘'은 자본주의의 만능 치트키다.


뫼비우스의 띠 계의 양대 산맥. 다이어트 뫼비우스의 띠 vs 먹고사니즘 뫼비우스의 띠



'에휴, 이 짓도 못해먹겠다 - 근데 이거 그만두면 뭐해 먹고살지? - 그래, 세상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다 참고 사는 거지 - 먹고살려면 별 수 있나 - 에휴, 그냥 하자' 그렇게 다들 뫼비우스의 띠를 돌면서 버티고 버티는 거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살다 보니 다른 길이 보이는 거다.

남들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걸, 남들이 가지 못한다고 나도 가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는 걸, 길이 없으면 길을 내면 된다는 걸 깨달은 거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내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살아내야 하는 숙제와 같은 삶이었다면 남은 삶은 100퍼센트 내 자유의지대로, 그저 내가 살고픈 대로, 소풍 가듯 여행 가듯 살아보고 싶은 마음. 그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나로 만난 이유라는 확신! 게다가 난 딱히 돈 없어도 잘 살 사람이잖아?


그런데 웬걸? 이 결정적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곁 새 가족이 있었다. 아내와 두 딸. 그래서 결정이 계속 미뤄졌던 거다. 난 망해도 한 달 50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사람인데 ('한달동안 히피처럼 살아봤다' https://brunch.co.kr/@hanvit1102/75) 내가 망하면 아내와 두 딸은 무슨 죄란 말인가? 남한테 피해 끼치는 건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이기에 결정을 뒤로 미룰 수밖에. 


그러다 2021년 9월 11일, 확실히 내 마음을 결정하게 해준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지난 1년간 수만 번도 더 했을 갈등의 마침표를 찍어준 건 반딧불이었다. 그날 내가 만난 반딧불 이야기를 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 글에 계속...





여기서 잠깐! 나의 장래희망(?) 3가지를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까 봐 그 꿈이 뭔지만 짧게 쓰고 글을 마치겠다. 그 꿈들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1. 1인 여행사 경영

- 코로나 시대에 웬 여행사? 전부터 우주에 없던 새로운 여행사를 만들꿈이 있었다.

남들 안 가는 곳만 찾아가는 여행사. 남들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만 찾아다니는 여행사.

여행을 통해 선한 영력을 전파하는 여행사. 여행을 통해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여행사.

망할 것 같다고? 나도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망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해봐야겠다.

2. 프로 마술사

- 끝이 궁금하다. 내가 이 길로 끝까지 갔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지.. 그래서 끝까지 가보고 싶다. 도전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마술사는 나이가 들어도 실력만 죽지 않으면 멋이 죽지 않는 직업이다.

3. 여행작가

- 코로나로 인해 무기한 보류. 그러나 언제나 내 꿈의 종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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