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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un 07. 2022

출간 tmi

별일 없이 살지만 별 볼 일은 많아요

1

몇 년 전에 셀프 출판으로 책을 낸 적이 있다. 셀프 출판은 표지, 편집, 교정, 홍보, 판매 등을 혼자 다해야 한다. 포부는 좋았으나 뒷심이 딸려 희대의 망작을 내고 말았다.

책을 받아 들고 읽어보는데 그제야 보이는 비문과 오탈자의 환장 콜라보에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문제는 그런 책인데도 날 믿고 책을 사주신 분들이 계셨다는 것이다.

그 책을 사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그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꿈에 돛을 달고 더 멀리 가진 못할 망정, 수치심에 닻을 내리고 표류했다. 언젠가 다른 책으로 보답해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분들께 새로 쓴 책을 드리면서 말씀드리고 싶었다. 그때 내 꿈을 응원해주셔서 고마웠다고. 덕분에 이번엔 더 나은 책을 낼 수 있었다고.

분들께 이번에 나온 새 책을 선물드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 나온 새 책을 선물로 전달할 때마다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싸인을 넣었다.


『날마다 소풍』 A/S 하러 왔습니다^^


*『날마다 소풍』은 첫 책 제목임.


2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냈다고 말씀드리는  참 부담스다. 책을 냈다는 소식은 뒤에 "이 책을 선물로 한 권 드릴게요"가 따라붙지 않는 이상 "이 책을 사서 보세요"가 될 수밖에 없다. 생활 물가가 치솟는 마당에 누군가에겐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부탁이다. 게다가 나는 남한테 부탁을 잘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책을 냈다고 어떻게 알릴까 고심하다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주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보라고 말씀드리자!

나는 (마음의) 부담감을 덜 수 있어서 좋고, 상대방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어서 좋다. 누군가의 서재에 꽂힌 책은 한 명의 소유로 끝날 테지만,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은 우리 모두의 공유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갈 수 있을 테니, 이것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에 닿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3

그 와중에 굳이 자기 돈 써서 책을 사주시는 분, 본인 sns를 이용해서 홍보해주시는 분, 정성껏 리뷰를 써주시는 분, 나에게 직접 감상평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여러분 . 인생 헛살지는 않았구나 싶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4

내 캠핑카를 만들어주신 월든 캠핑카 사장님께도 책을 보내드리며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년 전 제주도에서 올라가서 월든 컴포트 모델을 구매했던 oo입니다^^ 사장님께서 캠핑카 잘 만들어주신 덕분에 캠핑카는 잘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사장님께서 만들어주신 그 캠핑카에서 살았던 경험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그때는 캠핑카에서 산다고 하면 말리실까 봐 작업실로 쓸 거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사실은 여기서 살았답니다^^;

책을 보내드리고자 연락드립니다. 주소 보내주시면 책 보내드릴게요^^"

사장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아... 그때도 책을  쓰싶다고 하셨는데 정말 나왔네요. 축하드립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생각했었어요.

분명 고칠 데가 있으실 텐데, 연락도 없으시고 참 무던한 고객님이시다, 라고..."

무던한... 이 표현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 또 있을까? 날 들켜버린 기분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5

유명인이 아닌 이상 책 홍보 수단이라고 해봐야 sns뿐다. sns를 따로 하는 건 없고, 그래도 홍보는 해야 할 것 같고 해서, 카톡 프로필 사진을 책 사진으로 바꿨다. 

방바닥에 책을 놓고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하루 뒤 다음과 같은 사진이 도착했다.

책을 방바닥에 놓고 찍은 건 너무했다며, 일부러 주변 카페 가서 찍었다고...

나는 뒷 배경이 방바닥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게 더 신기했다. 이런 게 바로 캠핑카 사장님이 말씀하신 무던함?


6.

책을 실물로 받자마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생각을, 그때그때 생각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로 찍어서 한데 모은 다음, 예쁜 포장지에 담아 전달하는 것.

책이란 그런 것이다.


7.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

앤디 워홀이 한 말로 알려져 유명해진, 그러나 실제로 누가 제일 먼저 말했는지는 모르는, 저 유명한 문장의 의미를 실감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내 책을 평가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건 조금 서글프다. 물론 내가 굴러들어 온 기회를 걷어차버린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 기회란 게 뭐냐 하면, 출간 전에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출연 제안이 2번 정도 왔다. 한 번은 캠핑카에서 사는 동안, 또 한 번은 출간 직전에 출연 제안이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번 다 출연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책을 공짜로 전국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렸으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 수 있는 특권을 유지 중이다.

이 주제로는 할 얘기가 많아서 다음 글에서 자세히 썰을 푸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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