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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Jun 13. 2022

다른 누군가가 되어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는 게 낫다

TV 다큐멘터리 출연 제안을 받은 적이 2번 있습니다. 한 번은 캠핑카에서 사는 동안, 또 한 번은 출간 직전에 제안을 받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번 다 거절했습니다. 첫 번째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솔직히 도 솔깃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래희망 중 하나는 여행작가이고, 일단 유명해지면 책을 내는 것도 쉬워진다는 사실을 그때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요즘 TV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 해도 TV는 TV입니다. 간혹 뉴스 인터뷰에만 잠시 도 사람들 연락이 쇄도합니다. 1시간 동안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면 후폭풍이 꽤나 크겠죠. 문제는 그 후폭풍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습니다. 고심 끝에 를 섭외해주신 작가님께 장문의 답장을 보냅니다. 거절 의사를 에둘러 표현하느라 글이 길어졌지만,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다른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는 행복이 기본값이었습니다. 답장을 보내고 나서도 후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2번째 제안은 이야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책 출간 직전에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책 홍보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있을까 싶더군요. 게다가 출연을 제안한 프로그램은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알만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출연 제안을 받는 그 짧은 순간에 지난날 내가 써왔던 가면과 그 안에 감춰온 '진짜 나'의 파편들이 뒤섞여 슬라이드 필름처럼 스쳐 지갔습니다.




여기서 잠깐 저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뜬금없이 자기소개를 하느냐? 뒤에 가면 알게 될 거예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극도로 내성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전학 가서 자기 소개하라고 하면 우는 아이 있죠? 제가 그런 아이였어요. 당연히 존재감은 제로였죠.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교사가 되고 만나서 “저 기억하시나요?”라고 물어봤다가 상처만 받았네요ㅠ.ㅠ 그러던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내 안의 관종 DNA’를 깨우게 됩니다.

(그 계기에 대해서는 브런치에도 써 놓은 게 있네요. https://brunch.co.kr/@hanvit1102/9)


그 역사적 현장 안에 있던 모두가 놀랐지만 가장 놀랐던 건 저였습니다. 그 사건은 한동안 제 인생의 가장 큰 수수께끼였습니다. 

내성적이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나,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수많은 사람 앞에서도 떨지 않고 무대를 휘어잡을 수 있는 나). 도대체 어느 게 진짜 나일까?

그때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나'가 '진짜 나'다. 그렇게 믿고 살았습니다. 대학교 OT 첫날, 입학생 전체가 모인 베스트 새내기 선발 당당히 1등을 했더니 과 개강파티든 동아리 환영회든 가는 데마다 웃겨보라 하고. 멍석 깔아주니 난 또 그게 좋다고 신나게 나대고. 어느새 저는 인싸 되어있더군요. 그런데 대학교 2학년이 되고 보니 현타가 오는 거예요.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다시 '아싸'(아웃사이더)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확실히 아싸가 편하더군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마술이라는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무대에만 올라가면 인싸가 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서른이 넘어서부터였어요. 어떤 게 진짜 나일까? 그때 글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글을 쓰면 자연스럽게 내가 걸어온 길을 되밟아 가게 돼요. 그때 내가 했던 선택들을 돌아보게 되고, 그 선택들이 갖는 의미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난 어떤 사람일까?그때 난 왜 그랬을까? 어느 게  진짜 나일까? 뭘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 사람들하고 어울려 놀 때? 무대에 올라가서 자신 있게 내가 가진 걸 펼쳐 보일 때? 아니었어요.


혼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밤바다를 곁에 끼고 걸을 때

나와 마음의 모양이 비슷한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

미지의 세계로 모험 떠날 때

새로운 목표에 도전고 내가 목표한 바를 이뤘을 때 또는 목표가 눈앞에 가까워짐을 느낄 때

쓰고 싶은 주제로 글을 쓸 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을 때,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볼 때,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을 때

...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했던 이유를.

주기적으로 모이는, 그래서 때로는 가기 싫어도 억지로 가야 했던 모임 그토록 싫어했던 이유를. 그 사실을 깨달은 어느 날, 결국 모든 모임으로부터 탈퇴를 했던 이유를.

하루에 한두 시간은 반드시 혼자 걸으며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던 이유를.

책을 읽을 때마다 한뼘의 공간 속에서도 무한한 자유를 느꼈던 이유를.


저는 사실 내향적 사람이었던 거죠. 다큐멘터리 출연을 제안한 작가님께 말씀드립니다. 죄송하지만 방송 출연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기회인데 아쉽지 않냐고요? 아쉽지 않습니다. 책을 전국적으로 홍보를 잃은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 수 있는 특권을 유지 중이니까요.


제가 격하게 애정하는 커트 코베인 말했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되어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미움받는 게 낫다"


저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도 받아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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