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의 외향적인 성격이 타고난 기질인 줄 알지만, 사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한 예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전학 간 학교의 담임 선생님께서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자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이 정도면 말 다 한 거 아닌가.
나의 성격이 바뀐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우연하고 사소한 어떤 계기 때문이었다. 수업 시간에 목소리만 들어도 졸음이 몰려오는 ‘인간 수면제’ 선생님들이 계셨던 반면, 지루해질 타이밍에 반에서 웃긴 아이들을 교실 앞 무대에 올려 지루함을 덜어주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날도 반 친구 한 명이 교실 앞으로 나가 친구들을 웃기고 있었다. 당시 냉소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나는 한마디 툭 내뱉었다.
“저게 뭐가 웃기냐?”
나의 한마디에 바로 앞에 있던 친구가 뒤돌아 나를 쳐다보더니 차갑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야! 넌 저기 올라갈 용기라도 있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듣고 보니 그랬다. 난 저기 나갈 용기라도 있나? 교실 앞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 친구들이 대단해 보였다.
몇 달 후, 졸음이 몰려오는 어느 수업시간. 선생님의 반가운 한마디, “앞에 나와서 웃겨볼 사람?”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다들 의외였을 것이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한 번도 임상 시험 해본 적도 없는 각종 개인기, 그러니까 TV 보다가 한 두번 따라해 봤던 어설픈 개인기를 선보였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다음에도 몇 번 더 무대 위에 올라갈 기회가 주어졌고, 왠일인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떨리지 않았다. (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의 무대 체질은 그때 형성된 것이다. 성격도 내성적인 성격에서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심리학이 남긴 최대 업적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라고 하는데, -흔히들 얘기하지 않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내가 겪은 성격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내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튀어나온 건 아닐까?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그저 한 번 내어본 용기였다. 그때 내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게 한 것은 친구의 말 한마디였다. 그때는 왜 그리 쏘아붙이는 투로 말하는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 친구의 말 한마디가 내 삶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건 혁명적이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말 한마디, 책 속 한 구절, 영화 속 한 장면, 우연히 내 앞을 스쳐 지나간 풍경, 일상의 작은 깨달음,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