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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Oct 26. 2018

모험의 서막

내 삶은 모험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홀로 떠난 모험의 시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 문 밖으로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가다보면 작은 냇가가 나왔는데, 어느 날 문득 냇가에 흐르는 물들이 어디로부터 흘러왔는지 그 시작점이 궁금해졌다. 디데이를 정해 냇가를 거슬러 올라갔다. 냇가만 계속 따라가다 보면 발원지가 나올 줄 알았는데, 한참을 걸어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날은 어두워지고 더 깊이 들어갈수록 돌아올 거리도 멀어진다는 사실을 떠올린 후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나중에 냇가의 발원지가 한라산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발원지에 가보려는 시도를 포기했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 홀로 떠난 첫 모험 치고는 나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모험에는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함을 깨달았으니까.     


모험의 범위를 넓혀 다른 사람과 함께 떠난 모험을 포함시킨다면 시계를 더 돌려 초등학교 2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어느 휴일, 등산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께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를 깨우시더니 한라산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난 그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따라나섰다. 자그마한 아이가 부모 도움도 없이 한라산을 곧잘 오르니, 만나는 등산객들마다 나를 보며 칭찬을 해줬다. 어린 마음에 기분이 좋아져서 힘든 줄도 모르고 정상에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때 기분이 얼마나 좋았던지 평소 잘 쓰지도 않던 일기에 그날의 역사를 기록했다. 그 후로 한 학기에 한 번씩, 초등학교 때만 열 번 한라산 정상을 밟았다. 


그때 모험 끝에 따라오는 성취의 기쁨을 처음 맛보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옳았다. 지금도 걷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설렘이 덮고도 남는 것은 이때 느꼈던 성취감 덕분일 것이다.     


모험의 하이라이트는 중학교 때 펼쳐졌다. 이번에는 온 가족이 동원됐고, 아버지께서 탐험대장 역할을 맡으셨다. 굳이 탐험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우리 가족이 갔던 곳이 오래 전에 통제되어 길을 찾기도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다. 걷다보니 왜 입산이 통제됐는지 알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갔지만, 불안한 한편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잔뜩 상기된 내 앞에 절벽이 나타났다. 절벽은 꽤나 가파르고 높았다. 설마 이곳을 다 같이 오르려고 하시는 건가 하던 찰나,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의 몸을 한 줄 로프로 묶기 시작했다. 물론 오르기 힘든 전문가용 코스는 아니었지만, 뒤따르는 셋 중 한명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곳임에는 분명했다. 결국 아무 일 없이 모두 절벽을 올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아버지의 큰 수술을 앞두고 오랜만에 단 둘만의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에서 아버지께 그날 이야기를 꺼내자 생각보다 높고 험한 절벽은 아니었다고 웃으셨다. (다시 한 번 그곳을 가보고 싶긴 하다. 어릴 때 느꼈던 까마득해 보이던 절벽이 지금 가보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그때 한명이라도 떨어지는 사고가 났으면 어떻게 하려 하셨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날 아버지께서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절벽을 얼마나 강하게 붙들었을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서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난 내 몸 하나만 신경 쓰면 됐지만,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의 삶까지 가장의 책임감이라는 단단한 끈으로 묶어 그 절벽을 올라갔으리라. 잠깐이었지만 내가 실수하는 순간 우리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각자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고, 뭐랄까, 삶의 무게감 같은 것을 느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긴 요즘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겠나?)


나의 모험 유전자는 그때 내 삶 어딘가에 깊숙이 아로 새겨 넣어진 건 아니었을까. 남들이 가진 않은 길 위에 섰을 때의 환희와 희열 때문에 나는 오늘도 다른 모험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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