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예찬
인류 최고의 발명품을 논할 때 불, 종이 등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퀴가 그것이다. 바퀴가 등장하면서 짐을 나르는 방식이 변화했고, 자전거, 모터바이크, 자동차 등 인간의 삶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운송 수단이 생겨났다. 짧은 사견이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바퀴가 갖는 진정한 의미는 인간의 이동을 점의 이동에서 선의 이동으로 바꿔줬다는 데 있다. 1차원적인 이동을 2차원적인 이동으로 한 차원 끌어올림으로써 더 빠르고 효율적인 이동을 가능케 한 것이다.
바퀴를 이용한 여러 운송 수단 가운데에서도 자전거는 무결점의 완벽한 이동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다리 힘을 동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연료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는 환경에 무해함을 의미한다. 미국 환경운동가 존 라이언은 지구 생태계를 구할 첫 번째 불가사의한 물건으로 자전거를 꼽기도 했다. 자전거는 환경 문제와 교통난을 동시에 해결할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자동차나 모터바이크만큼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보관이 쉽고,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국경을 통과할 때에도 자동차나 모터바이크만큼 통관이 까다롭지 않다.
그 때문에 자전거는 여행에서 그 진가를 100% 발휘한다. 내가 자전거에 처음 빠지게 된 것도 여행 때문이었다. 발리 여행의 마지막 코스가 킨타마니 산 자전거 투어였는데, 자동차가 킨타마니 산 중턱에 자전거를 내려주면 그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내려오기만 하면 되는 투어였다. 그렇게 하나의 점으로서, 선을 만들며 발리 풍경 가운데로 녹아들었다. 그날따라 비가 퍼부어서 함께 자전거를 탔던 일행 모두 온몸이 비에 젖었는데도 얼굴 찌푸리는 사람 하나 없었다. 다들 자전거의 매력에 흠뻑 빠진 표정이었다.
귀국하자마자 자전거를 샀다. 하이브리드, 로드, 미니벨로, 픽시, 팻바이크 등 두 바퀴로 굴러가는 단순하게 생긴 것이 종류는 참 다양했다.
하이브리드는 대학교 때 타본 기억이 있어서, 로드바이크는 속도감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서, 미니벨로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출퇴근용으로 부적합해서, 팻바이크는 둔한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서 픽시 자전거로 결정했다. 픽시 자전거는 축과 톱니가 고정된 고정 기어 자전거로, 자전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부품들로만 구성된 자전거를 말한다. 변속기가 없는 만큼 디자인이 단순해서 패션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워낙 단순함을 강조하다 보니 브레이크도 없애는 경우가 많아 안전사고의 우려가 큰 단점이 있다. (요즘은 픽시 자전거의 잦은 안전사고로 인해 자전거 동호인 사이에 경각심이 생겨서 대부분 브레이크를 다는 추세이다. 나 또한 브레이크를 달았다)
픽시 자전거는 타면 탈수록 내 성격과 닮아서 마음에 든다. 일단 단순하다. 미학적 측면에서 거추장스러운 변속기(기어)가 없다 보니 디자인이 단순하고, 타는 방식도 단순하다. 오르막이 나오면 변속기를 조정해야 하는 다른 자전거들과 달리 픽시 자전거는 속도를 붙인 후 일어서서 힘껏 페달을 밟아야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사람들은 변속기를 조정해서 앉은 채로 오르막을 올라가는 게 더 편하지 않냐고 말하지만, 나는 오르막에서 힘껏 페달을 밟아 평지까지 자전거를 끌어 올린 후의 작은 성취와 희열을 좋아한다. 도저히 못 오를 오르막이라면 잠깐 내려서 끌고 올라가면 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위기 상황에서는 더 편하게 가려 하기보다는 늘 해오던 대로, 그러나 더 치열하게 정면 돌파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내리막도 나온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건 자전거나 인생이나 매한가지다.
픽시 자전거는 고정 기어를 쓰기 때문에 내리막에서도 페달을 밟아야 한다. (나는 안전사고를 우려해 프리 휠로 바꿨다) 인생에서 내리막을 만났을 때 나태해지거나 방심하기 쉽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내리막에서도 늘 긴장하게 만드는 것이 픽시 자전거다. 변속기가 없다 보니 고장 날 확률도 낮다. 유일하게 걱정되는 것이 얇은 타이어인데, 펑크 나지 않는 타이어로 바꾼 후에는 타이어 펑크 걱정도 없어졌다.
이렇게 무결점의 자전거 모델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결정적 단점이 눈에 들어온다. 픽시나 로드 바이크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비행기에 싣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 비행기를 분해하고 자전거 가방에 넣어 수하물로 보낸 다음, 도착 후 다시 조립해서 타야 한다. 내 성격에 자전거 분해 조립하다가 기분만 버릴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낸 대안이 접이식 미니벨로이다.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자전거 분해, 조립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 에너지를 대폭 줄일 수 있고 전 세계 어디든지 부담 없이 갈 수 있다. 타이어만 펑크 나지 않는 타이어로 바꿔 끼우면 여행하는 데 최고의 동반자가 될 듯하다. 여유가 생기면 접이식 미니벨로를 타고 전 세계 곳곳을 누비고 싶다. 기회가 닿아 캠핑을 함께 하면서 여행기도 남길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아직 고생을 덜 해서 그런가, 철이 덜 들어서 그런가, 난 아직도 개고생이 좋다.
문득, 누군가의 도움 없이 처음 자전거를 달렸을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그렇게 넘어지더니 어느 순간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게 아니라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전거를 탈 수는 있어도 달릴 수는 없다.
달리는 것은 자전거의 존재 이유이다. 자전거가 가장 자전거다울 때는 멈춰 있거나 타고 있을 때가 아니라 페달을 밟아 앞으로 달릴 때이다. 페달을 밟지 않은 자전거는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 페달을 밟아 자전거를 달리고 싶다면 넘어지더라도,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것이 자전거 타는 방법을 익히는 유일한 길이다.
앞으로도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늘 페달을 밟는 삶이었으면 한다. 어려운 코스가 나와도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힘 있게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오르막이 나오면 한숨 쉬기보다는 주저 없이 일어서서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아대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