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피피섬.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비치』에서 이상향으로 그려지는 섬. 실제로 이 섬은 영화 개봉 이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태국으로서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관광 홍보를 제대로 한 셈이다.
나 또한 영화를 보고 피피섬을 찾게 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안타깝게도 디카프리오가 도착하자마자 파라다이스를 외쳤던 마야 베이는 통제되어 들어갈 수 없었지만, 피피섬은 예상만큼이나, 아니 예상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론 영화가 유명해진 이후의 마야 베이는 관광객들로 인해 더 이상 영화처럼 아름답진 않다.
영화 속 디카프리오가 느꼈던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은 싸구려 스노클링 장비를 차고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수심이 최소 10미터 이상 되어 보였는데, 바다가 어찌나 깨끗한지 바닥에 있는 산호초가 손 뻗으면 닿을 듯 선명하게 보였고, 다양한 종류의 열대어와 해조류의 조화는 마치 수족관에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수면 위에 떠서 보는 것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바닷속에 들어가 가까이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푸켓에서 돌아오자마자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 과정에 등록했다.
스쿠버다이빙의 원리는 간단하다. 공기통에 연결된 BCD(부력조절기)를 입고 바다에 들어간 후, BCD에 연결된 공기 배출 버튼을 누르면 BCD의 공기가 빠지면서 가라앉고, 공기 주입 버튼을 누르면 BCD에 공기가 채워지면서 떠오른다. 수면 위에서 공기 배출 버튼을 눌러 공기를 빼면 서서히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바로 이때, 마스크(수경)에 비치는 세상이 하늘에서 바다로 바뀌는 그 순간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다른 차원의 세계로 입장하는 기대감에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 반대로 마스크에 비치는 세상이 바다에서 하늘로 바뀌는 순간에는 세상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아름다운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데, 이 순간도 심쿵 포인트다.
모두가 보다 빨리, 멀리, 높이 가려 애쓸 때, 스쿠버다이빙은 홀로 ‘깊이’ 들어가는 레포츠이다. 깊이 들어갈수록 빛과 소음, 잡념 등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은 차단되고, 신체의 모든 감각은 시각과 청각에만 집중된다. 강사의 탐침봉 소리 외에는 숨소리만 들리고, 그 외의 모든 감각은 시각에 집중된다. 그 몰입의 황홀함이란!
우리가 땅 위에서 지지고 볶으며 사는 사이, 바닷속에서는 온갖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몰래 지켜보는 일은 늘 흥미진진하고 신비롭다.
한 번은 새끼 니모가 너무 귀여워서 손으로 만지는 시늉을 했는데, 말미잘 뒤에서 큰 니모가 튀어나오더니 새끼 니모를 보호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새끼 니모의 어미였으리라. 바닷속에도 생태계가 있고, 자식에 대한 부모의 본능적인 사랑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 후로 니모를 봐도 일부러 만지려는 시도는 하지 않게 됐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물고기라고 사람과 다를까?
세상에서 가장 값싼 우주여행
스쿠버다이빙의 가장 큰 매력은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무중력의 자유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이버들은 스쿠버다이빙을 ‘세상에서 가장 값싼 우주여행’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물속도 엄연히 중력이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인 부력을 발생시키면 같은 수심에서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부력과 중력의 힘이 같은 상태를 중성부력이라고 한다. 이때 신기하게도 폐가 부력조절기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숨을 들이마시면 몸이 살짝 뜨고 숨을 뱉으면 살짝 가라앉기 때문에 호흡으로 부력을 조절할 수 있다.
무중력으로 우주에 떠 있는 느낌을 물속에서도 느낄 수 있게 하다니, 스쿠버다이빙의 창시자 자크 이브 쿠스토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쿠스토는 한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아주 오래전 나는 기이하면서도 멋진 꿈을 꾸었다. 내가 아주 가볍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바닷속을 이리저리 떠다니는 꿈이었다. 스킨스쿠버 장비를 등에 짊어진 날, 비로소 내 꿈은 현실이 됐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것이 이런 인생이다. 얘들아, 지금 너희가 가진 꿈을 꼭 실현하렴.”
쿠스토가 아니었다면 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닷속을 몰래 훔쳐보는 특권은 돈을 가진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이 됐을지도 모른다. 잠수함이나 특수 해저 장비를 탈 수 있는 사람들만 바닷속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세계의 탐험가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그 상단에 쿠스토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땡큐, 쿠스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물속에서 소리 지르고 싶은 순간들을 여럿 만났다. (실제로는 호흡기를 물고 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를 수 없다) 영화에서나 보던 상어도 꽤 많이 봤고, 그렇게 만나고 싶던 거북이도 운 좋게 몇 번 마주칠 수 있었다. 스쿠버다이빙을 처음 시작할 때 한 번 만나보는 게 꿈이었던 니모는 지겹도록 많이 봐서 이젠 니모를 봐도 별 감흥이 없다.
한 번은 필리핀 세부의 앞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받는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잠시 공포에 휩싸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진에서만 보던 정어리 떼가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는 게 아닌가! 정어리 떼가 바다 세계에 입문한 날 위해 축하 공연을 열어주는 느낌이랄까. 나는 가만히 떠서 황홀한 순간을 두 눈에 담았다.
짧은 스쿠버다이빙 경력이지만 그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바다에서 있었던 뜻밖의 만남을 선택할 것이다.
비교적 수심 얕은 바다의 바닥에 붙어서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는데, 오징어 한 마리가, 횟집 수족관에서는 수없이 많이 봤지만 바다에서는 본 적 없는 오징어 한 마리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자기보다 훨씬 덩치 큰 나를 겁도 없이 스쳐 지나가더니 열 개의 다리를 한 번에 오므렸다 펴면서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연체동물 특유의 그 유연한 움직임이란! 그러고 보니 오징어를 바닷속에서 만나는 건 흔할 것 같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자고 있는 갑오징어는 본 기억이 있는데 실제 오징어를 바닷속에서 본 것은 그때가 유일하다. 바닷속에서 만나기 쉬울 것 같은데 의외로 잘 안 보인다. 떼로 다녀서 그런가, 깊은 바다에 살아서 그런가 추측만 할 뿐이다)
그 날의 감동을 어찌 잊으리오
늘 수족관에 갇힌 모습으로 만났던 오징어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다니, 그것도 바닷속에서... 그러나 내가 오징어에 감동한 진짜 이유는 오징어의 움직임이 갖는 생물학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바다와 오징어의 만남이 빚어낸 어떤 철학적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내 머릿속 오징어는 당연히 수족관 안에서 사람들에게 먹히기만을 기다리는 가엾은 생명체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오징어가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 동물원에 갇힌 맹수가 더 이상 맹수가 아니듯, 오징어도 바닷속에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오징어다. 내 앞에서 유유히 사라져 가는 오징어의 움직임이 그렇게 자유롭고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뒤늦게 알게 된 노래 가사로 대신 표현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스쿠버다이버들의 스부심(스쿠버다이빙+자부심)을 드높이기 위해 업계에서 통용되는 표현을 하나 소개하고 나 또한 제자리로 돌아가야겠다.
“당신이 세계 곳곳을 둘러봤다 해도 바닷속을 들어가 보지 않았다면 지구의 3분의 1만 본 것이다. 지구의 3분의 2는 바닷속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