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피 지망생 Oct 25. 2018

늦었지만 끝난 게 아니라면...

버킷리스트 만들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종이가 있다. 

이 종이만 보면 당신의 사고, 행동, 성격, 식생활, 음주량, 취미, 독서량, 건강상태, 인간관계를 꿰뚫어 볼 수 있다. 이 종이는 무엇일까?


답은 ‘영수증’이다. 심지어 영수증의 발행 장소를 보면 그 사람의 행동반경도 보인다. 돈은 그렇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그런데 살짝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영수증 따위가 나의 오늘을 드러내준다니 뭔가 께름칙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나의 오늘 뿐만 아니라 내일도 드러낼 수 있는 종이 한 장 가져볼 것을 추천한다.

나의 오늘과 내일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종이 한 장

이 종이의 이름은 버킷리스트(Bucket list,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이다.        

      




버킷리스트를 만들다     


생애 처음으로 수면 내시경을 받던 어느 날이었다. 내시경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하는 경험은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크게 아파본 적 없이 건강하게 자라 와서 내가 불치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보고 살았었는데, 침대에 누워있으니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불현듯 의사 선생님께서 차트를 펼치며 어렵게 입을 떼는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살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셨습니다.” 

상상만으로도 서늘한 기운이 온몸에 퍼졌다. 만에 하나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때 나는 무엇을 가장 아쉬워할까? 그동안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미뤄두었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그것들을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집에 돌아와 끄집어냈다. 그렇게 처음으로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의 여백에 다양한 그림들이 채워지면서 버킷리스트도 하나둘 늘어갔다. 아내에게 처음 만든 버킷리스트를 보여줬다. 특별한 뜻은 없었고, 버킷리스트 한 번 만들어봤는데 쓰다 보니 내 꿈들을 종이에 적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더라고, 당신도 한번 만들어보라는 뜻에서 보낸 거였다. 아내가 버킷리스트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이거 딱 한빛 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버킷리스트에는 내가 해낸 것, 지금 해나가고 있는 것,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적혀있었다. 이 종이 한 장에 나의 모든 욕망이 들어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밑줄 긋기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해낼 때면 밑줄을 긋고 사진, 날짜, 장소를 넣는 것으로 나만의 의식을 치뤘다. 밑줄 긋기이 단순한 행동 하나가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고삶에 소소한 재미를 선물했다. 때로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면 그때의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알려주는 책갈피가 되어줬고, 가끔 길을 잃을 때는 나침반이 되어줬다.      


버킷리스트를 써나가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술자리에서 버킷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다. 나보다 더 철없는 후배 하나가 내 말을 듣더니 자기도 버킷리스트 하나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 녀석도 뭔가 깨달은 게 있구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 후배 왈, 외제 중형차를 타고 싶단다. 그 후배의 직업은 공무원이었고 로또가 터지지 않는 한 공무원 월급으로 외제 중형차를 갖는 것은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했다. 평소 그 친구의 소비 습관에 비추어 그 꿈을 이루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어보였기에 좋은 차를 타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핀잔을 줬다. 

돌이켜보니 살짝 미안해진다. 그게 그 친구의 꿈이라면, 다른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꿈이라면, 얼마든지 버킷리스트에 올라 마땅한 꿈이며 나에게 다른 사람의 꿈을 바꾸라고 할 자격은 없는 건데... 물론 그 후배가 평소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후배는 진짜 그 차가 갖고 싶은 건지, 그 차에 올라 탄 자기 모습이 갖고 싶은 건지 의아하긴 하지만.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만들 때는 냉철한 자기 인식이 중요하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가 아닌 진짜 나에 대해내 본연의 욕망에 대해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눈을 감고 한번 떠올려보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가?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 해보고 싶은 행동, 그 어떤 것도 좋다. 그것들을 적어 나가면 된다. 떠오르는 게 없으면 잠시 덮어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추가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버킷리스트를 써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느낀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다른 사람이 많은 걷는 길을 뒤따라가는 데 급급했던 사람은 정작 나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런 사람을 위해 내가 썼던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내가 처음 버킷리스트를 쓰게 된 계기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보라. 나에게 앞으로 몇 개월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무엇이 가장 아쉬울까? 인생이 얼마 안남은 마당에 어제 다 못 먹은 술이, 배불러서 남긴 음식이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진지하게 상황에 감정이입을 해보고 떠오르는 것들을 하나둘 적어나가라. 

작고 사소한 것부터가능한 구체적으로 

    


『뚜르』라는 영화가 있다.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꿈 많은 스물여섯 청년이 희귀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체육 교사를 준비하던 그는 한순간에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다. 그에게는 아직 해내지 못한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그를 절망의 나락에서 꺼내주었다. 

그는 꿈을 위해 항암 치료를 중단한다. 그동안 마음속에 간직했던 한국인 최초 뚜르 드 프랑스 완주를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그를 돕기 위해 코스 안내자, 메카닉, 페이스 메이커 등의 지원군이 조직되고, 그는 끝내 꿈을 이뤄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뭉클한 뭔가가 자꾸 올라왔다. 당신은 시한부 인생도 아닌데 왜 꿈을 꾸지 않느냐고, 꿈이 있다면서 꿈을 이루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지금 뭐하냐고 꾸짖는 것만 같았다.

영화의 여운이 오래 남았는지 훗날 영화와 비슷한 상황의 꿈을 꿨다.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는 꿈이었다. 전형적인 악몽의 서사를 갖춘 꿈이어서 느낌이 생생했다. 

분명 악몽이었지만, 꿈속에서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직후 내가 했던 행동 덕분에 웃으면서 잠에서 깰 수 있었다.     


퀴즈.

Q. 꿈속에서 의사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직후, 내가 했던 행동은?

A. 나는 버킷리스트를 꺼내 남은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이슬란드 여행을 선택하려는 찰나, 꿈에서 깼다.)




한빛's 버킷리스트 



* 진한 글자로 처리된 것이 현재 내가 이뤄낸 버킷리스트이다.

 (실제 버킷리스트에는 사진들도 함께 실려 있지만, 사진은 생략한다)      


1. 남미 배낭여행(페루-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

2.해외 록 페스티벌 가보기(2013.01.26, 시드니)

3.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래킹

4. 스쿠버다이빙 in 그레이트베리어리프(2013.08, 케언즈)

5. 겨울 지리산 종주(2014.2.22-24, 지리산 천왕봉)

6. 스카이다이빙(2013.02.07, 시드니)

7. 일정 연수에서 강의하기(2014.08.19, 탐라교육원)

8. 해파리 호수에서 스노클링(2016.01.24., 팔라우

9. 고래상어와 수영하기(2015.01.07. 릴로안)

10. 카미노 데 산티아고(생장-산티아고대성당) 완주

11. 제주도 한 바퀴 올레 코스(1-21코스완주

  (2013.03.04, 종달리 21코스 종점)

12. 유럽 축구리그 직접 관람하기(FC 바르셀로나)

13. 기타 배워서 김광석 노래 연주하기

14. 대안 언론 지속적 후원

15.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 하루 안에 일주(2018.10.8, 제주)

16. 스쿠터 전국 일주(서해, 남해, 동해)

17.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상식을 벗어난 기부 해보기

18. 2세 만들기

19. 국제 결연아동 지속적으로 후원하기

20. 제주 오름 100개 이상 오르기

21. 우리나라 국립공원 모두 가보기

22. 하늘의 별 보며 잠들기(2012.10.15, 울룰루)

23. 세계 6대륙 모두 밟아보기

24. 그랜드 캐니언 트래킹 

25. FISM 대회 관람하기

26. 규슈 스쿠터 투어 with 베스파

27. 일몰 in 바간(2015. 8. 16, 바간)

28. 미드 자막 없이 보기

29. 뉴질랜드 캠핑카 투어 with 가족 

30. 뉴질랜드 or 제주도 가이드 해보기

31. 급류 래프팅 해보기(2013.08.11, 케언즈)

32.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세렝게티 or 크루거국립공원)

33. 세계 3대 폭포(이과수,빅토리아,나이아가라)모두가보기

34. 패러글라이딩 해보기

35.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 거울 사진 찍기

36. 은퇴 후 제 3세계 봉사활동

37. 내가 잘못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용서받기

38. 늘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기

39. 내 이름으로 책 출간하기(2018.02.)

40. 배드민턴 대회 입상하기

41. 세상의 끝 가보기(우수아이아, 케이프타운) 

42.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이기

43. 베스파 주인 되기(2015.04, 스프린트 125)

44. 베트남 자전거 종주

45. 바오밥 나무 배경으로 일몰 사진 찍기

46. 라스베가스 태양의 서커스 보기

47. 마당 있는 단독주택 살아보기

48. 메탈리카 공연 보기(2017.01, 서울)

49. 체중 70kg 초반 유지하기

50. 오로라 사진 찍기(캐나다 or 아이슬란드)

51. 여행 작가 되기

52. 누군가의 가장 존경하는 인물 되기

53. 부모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기

54. 갈라파고스 제도 & 이스터 섬 투어

55. 인도 북부 여행(라다크 포함)

56. 자전거 전국 일주(인천-부산)

57. 내장산 가을 단풍 산행 가기

58. 1년에 한 번은 백록담 다녀오기

59. 파도 치는 날엔 서핑을...

60. 최소 한 달에 한번은 도서관 가기(2013~ )

61. 주기적으로 가족과 캠핑 다니기

62. 바다 속에서 만타 가오리 만나기

63. 홍해 스쿠버다이빙(다합 or 후르가다)

64. 라오스 자전거 일주

65. 2종 소형면허 취득(250cc 이상 바이크 운전해보기)

66. 대한민국 현대사 전문가 되기

67. TV 없이 살기(2012~ )

68. 제 3세계 여행하고 현지인들에게 추억 남겨주기(폴라로이드 사진 찍고 선물 주기)

69. 마라톤 풀코스 완주(2015.03, 제주)

70. 아이슬란드 캠핑 여행

71. 반려동물 키워보기

72. 국제 재난구호 활동 해보기

73. 소록도 봉사활동 with 가족

74. 스쿠버다이빙 in 시파단

75. 여행사 ‘날마다 소풍’ 경영(수익 1/10 기부)

76. 스리랑카 서핑 투어

77. 카약 타고 섬 투어(2017.08, 비양도&차귀도

78. 사람들이 모르는 캠핑 사이트 개척

79. 무인도에서 1박 2일

80. 클라이밍 배우기

81. 모터바이크 다이어리(유라시아 횡단 with 베스파)

82. 아프리카 일주 배낭여행

83. 카약 타고 제주도 한 바퀴 일주

84. 미국 서부 렌터카 여행

85. 로얄 엔필드 컨티넨탈 GT with 벨스타프 로드마스터

86. 마카오 ‘하우스 오브 댄싱워터’ 공연 보기

87. 캠핑카에서 살아보기

88. 유언장 미리 쓰기(2018.03, )

.

.

.

.

.

.

.

.

.

& 후회 없이 떠나기



이전 06화 그래, 나 빨간 머리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