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피 지망생 Oct 26. 2018

네 멋대로 해라


고등학교 때까지 내 꿈은 신문기자였다. 평생의 진로를 결정할 시간이 1년 밖에 남지 않았을 때, 즉 고3이 됐을 때 나는 꿈을 직업 군인으로 바꿨다. 8할은 아버지 때문이었고, 2할은 제복을 입고 싶은 마음과 학비 전액 면제라는 달콤한 유혹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군인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분이셨다. 늘 남자답고 뭘 해도 각이 살아있는 분이셔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멋진 군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셨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어렸을 때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하실 때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진한 아쉬움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늘 그게 뭘까 궁금했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사관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사연이 있었음을 건너 듣고는, 그 사연이란 것이 본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음을 알고는,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고픈 마음이 생겨버렸다. 아들이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뤄준다?!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하지 못한 결과 생긴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당시는 해군사관학교가 떠오르던 시기였다. 나는 당당히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운 좋게 1, 2차 시험에 합격했고, 수능 성적만 잘 나오면 꿈에 그리던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받았던 질문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작년에 자네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서울대를 몇 명 보냈나?’였다. 그때는 이런 질문도 하는구나 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수능 시험을 보기도 전에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복 차림으로 부모님과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룬 나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수능 시험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졌고, 해군사관학교에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수능 시험을 잘 봤어도 떨어졌을 것 같다. 논술 시험에서 군대를 주제로 한 문제가 나왔는데, 전두환과 노태우의 군부 독재를 비판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다. 지금 군대도 이 모양인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그것이 날 위한 하늘의 배려였음을 뒤늦게 사병으로 입대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군대는 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니 어쩌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안 맞는 곳이었다. 군의 상명하복 체계도 숨이 막혔지만, 계급이 인격이 되는 비현실적인 공간. 그곳에는 온갖 불합리와 부조리가 판을 쳤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번은 바꿔보려고 시도했다가 나만 바뀌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나처럼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 있을 곳은 아니었다. 


그런 곳을 내 발로 들어가려 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사관학교 에 떨어진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사관학교에 합격했더라도 성격상 도저히 못 버티고 중도 포기를 고민했을 것이고, 나의 선택에 실망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결국 그렇게 비극처럼 보이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그 뒤로 내 인생은 참 많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이 뭘 하든, 내게 뭘 바라든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멋대로 살았다. 나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많았지만 끝에는 내 마음 안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를 따랐다그것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지만최소한 후회는 남지 않았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방법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문제의 상당수는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때문에 일어난다. 

출판 시장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많은 사람이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를 먼저 고려하고 책을 고르는 게 아니라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는 책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다. 이런 이유로 책 사재기라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책을 일단 사재기해서 베스트셀러 순위에만 올려놓으면 독자들이 알아서 책을 사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명 작가의 책은 늘 베스트셀러에 오르지만, 그렇지 않은 작가들의 책은 서점에 걸릴 기회조차 갖지 못하기 때문에 중소 출판사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돈이 되는 해외 유명작가들의 인세만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나도 한 때 많이 팔리는 책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싶어 베스트셀러들을 찾아 읽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좋은 책들도 많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스러운 책이 더 많았다. 오히려 나에게 뜻밖의 감동을 준 책들은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다가 제목이 눈에 띄어서 읽어봤던 책, 글 솜씨가 뛰어나진 않지만 작가의 진심이 담겨있는 책, 글이 작가를 닮았거나 작가가 글을 닮은 책들이었다. 


어디 이뿐이랴. 남 따라가다 후회하는 일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없이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선다. 당신이 어떤 길을 선택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 길은 말해줄 수 있다


당신만의 길을 걸어라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을 걸어라

네 멋대로 해라!

이전 08화 끝난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