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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Nov 27. 2018

자명종 대신 음악을 들으며 일어날 자유 2

나를 울린 세 번의 공연

[록페스티벌 외전]



나를 울린 세 번의 공연



1. 라디오헤드 in 2012 지산 록 페스티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물어본다면 한참을 망설이다가 도저히 못 고르겠다고, 서너 개 말하면 안 되겠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20대에 같은 질문을 했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을 것이다. 

‘라디오헤드’ 라고...


20대 시절 가장 큰 소원은 라디오 헤드의 공연을 직접 내 두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당시 내 인터넷 ID가 ‘라디오헤드 내한공연 추진위원회’ 였을 정도로 라디오헤드는 내게 최고의 밴드였다. 그랬기에 2012년 지산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발표됐을 때, 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라디오헤드의 첫 내한!!! 

두둥-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지만 하필 그때, 나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노동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게다가 라디오헤드 공연 20일 후에는 에미넴 내한 공연까지 잡혔다. 이건 분명 신의 계시였다. 문제는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7,8월이면 비행기 삯만 왕복 100만원이 넘는데, 공연 보러 한국 갔다 오겠다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는 호주 생활에 적응하면서 1년을 더 살아볼까 고민하던 시기였고, 호주에서의 생활을 1년 연장하기 위해서는 내 토익 점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한국에서 토익 점수를 따오기 위한 한 달간의 휴가를 얻었다. 고백컨대, 라디오헤드의 내한 공연이 없었다면 세우지 않았을 계획이었다. (뒤에 믿었던 사람이 사기 쳐 주시는 바람에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귀국 당일, 공항에 내리자마자 지산 록 페스티벌을 찾았다. 장시간의 비행, 그것도 경유지인 베트남에서 꼬박 하루를 뜬 눈으로 버티고 공연장을 찾은 터라 무척 피곤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라디오헤드 앞에 누가 나왔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오로지 라디오헤드만을 위한 기다림. 드디어 암전을 뚫고, 꿈에 그리던 라디오헤드의 공연이 시작됐다.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나 기억나는 것은 그날따라 눈물이 짜게 느껴졌다나의 간절함과 염원이 더해져 그랬으리라.



  

2. 퀸 내한공연 in 2015 슈퍼소닉 록 페스티벌     


퀸은 라디오헤드를 만나기 전까지 나의 인생 밴드였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퀸이 내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나이가 들대로 들어버린, 프레디 머큐리 없는 반쪽짜리 퀸이라 해도 퀸은 퀸이었다. 아담 램버트가 객원 보컬을 맡아서 세계 투어를 돌고 있다는데, 전체적인 평이 나쁘지 않았다. 


실제 내가 본 공연도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프레디 머큐리의 빈자리를 완벽히 메우지는 못했지만, 사실 아담 램버트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눈물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Love of my life’를 연주하는데, 백스크린에 프레디 머큐리가 비치더니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눈물 한 방울 뚝- 창피해서 주변 사람들 모르게 눈물을 닦는데 옆을 봤더니 우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 뒤에 있던 여학생은 대성통곡을 했다. 사람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어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더욱 애절하게 들려왔다.            

        


3. 레이지본 in 제주월드오름뮤직페스티벌      


내 나이 스물, 친구들과 함께 떠난 전국 일주 여행의 종착지였던 드럭 공연. 5천 원을 내고 봤던 레이지본과 크라잉넛은 내가 펑크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언제부턴가 레이지본 소식이 뜸해져서 해체됐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에서 공연한다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역시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도가 튼 그룹인지라 다들 신나게 즐기고 있는데, 멤버 하나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이런 말을 했다.


“저희가 사실 중간에 돈도 없고 힘들어서 각자 먹고 살길을 찾아 흩어졌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음악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이렇게 만났습니다.”


멤버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들의 간절함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절절히 느껴져서.  


가끔 헤비메탈, 펑크 등 우리나라에서 안 팔리는(?) 음악 하는 팀들의 공연을 일부러라도 보러 가고는 한다. 퀴퀴한 냄새 나는 지하의 클럽에서 돈이 되든 안 되든, 사람들이 많이 찾든 안 찾든,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만 나오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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