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가사를 읽어본 사람은 바로 눈치 챈다. 이 노래는, 제목은 봄이지만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라는 것을.
하여 겨울밤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밤이면 종종 이 노래를 BGM으로 깔아놓고 걷곤 했다. 이 노래 전반에 흐르는 시린 겨울 감정과 따뜻한 봄 이미지와의 대비는 늘 뜨거운 뭔가를 불러왔다. 때로 그것은 눈물이 되어 뺨 위로 흘렀다.
눈물은 왠지 봄보다는 겨울에 가깝고, 그래서 이 노래도 겨울에 들으면 더 좋다. 지금처럼 봄은 왔지만 마음은 겨울일 때 들어도 좋다. 역시 좋은 음악은 '듣기 좋은 때'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들어도 좋으니까 좋은 음악이 된 것이다.
한 편의 시 같은 노래 가사(실제 이소라는 '낭독의 발견'이라는 시낭송 프로그램에서 이노래를 라이브로 부르기도 했다) 중 유난히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가사가 있었다. 마치 앞의 가사들은 이 두 줄에 당신을 울게 만들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듯.
그대와 나 사이 눈물로 흐르는 강
그대는 아득하게 멀게만 보입니다.
- 이소라의 '봄' 중
하필 이 부분을 들을 때 밤바다를 끼고 걷노라면, 눈 앞의 바다가 보고 싶은 가족과 나 사이에 흐르는 강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곤 했다.
다행히 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기보다는 환희의 눈물에 가까웠다. 다시 며칠만 기다리면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게, 봄여름 가을 겨울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그럴 때마다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뒤에 흐르는 눈물의 3할 정도는 슬픔의 몫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나에게도,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도,
가뜩이나 불안에 잠식당한 이 사회에 전염병 대유행이라는 상상 해보지도 않은 일로 더 불안해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봄은 온다는 위안.
우리 인생은 '그리고', '그러므로', '그러나' 따위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다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