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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Mar 17. 2020

다시, 봄.

내게 겨울은 이소라의 '봄'이다. 이소라는 가수 이름이고, '봄'은 노래 제목이다.


이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가사를 읽어본 사람은 바로 눈치 챈다. 이 노래는, 제목은 봄이지만 겨울에 어울리는 노래라는 것을.

하여 겨울밤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밤이면 종종 이 노래를 BGM으로 깔아놓고 걷곤 했다. 이 노래 전반에 흐르는 시린 겨울 감정과 따뜻한 봄 이미지와의 대비는 뜨거운 뭔가를 불러왔다. 때로 그것은 눈물이 되어 뺨 위로 흘렀다.


눈물은 왠지 봄보다는 겨울에 가깝고, 그래서 이 노래도 겨울에 들으면 더 좋다. 지금처럼 봄은 왔지만  마음은 겨울일 때 들어도 좋다. 역시 좋은 음악은 '듣기 좋은 때'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들어도 좋으니까 좋은 음악이 된 것이다.


한 편의 시 같은 노래 가사(실제 이소라는 '낭독의 발견'이라는 시낭송 프로그램에서 이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기도 했다) 중 유난히 눈물이 핑 돌게 만드는 가사가 있었다. 마치 앞의 가사들은 이 두 줄에 당신을 울게 만들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듯.


그대와 나 사이 눈물로 흐르는 강

그대는 아득하게 멀게만 보입니다.

- 이소라의 '봄' 중


하필 이 부분을 들을 때 밤바다를 끼고 걷노라면, 눈 앞의 바다가 보고 싶은 가족과 나 사이에 흐르는 강처럼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곤 했다.

다행히 이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기보다는 환희의 눈물에 가까웠다. 다시 며칠만 기다리면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게, 봄여름 가을 겨울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그럴 때마다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떠올라서 뒤에 흐르는 눈물의 3할 정도는 슬픔의 몫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나에게도,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도,

가뜩이나 불안에 잠식당한 이 사회에 전염병 대유행이라는 상상 해보지도 않은 일로 더 불안해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봄은 온다는 위안.

우리 인생은 '그리고', '그러므로', '그러나' 따위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다독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왔고 꽃은 다시 핀다.

불안이라는 터널을 걷고 있는 모두에게 이 얘기가 하고 싶어서 이소라의 '봄'을 데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왔고 꽃은 다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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