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단, 패배를 대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른데, 나는 남한테 지는 건 웃어넘겨도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는 건 용납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쓸 데 없는 고집이 풀코스 마라톤을 뛰게 했고, 울트라 트래킹 완주를 가능케 했다. 의지력 하나만큼은 쓸만하다고 자부한다.
그런 나조차도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적 없는 상대가 있으니,
눈.물.
난 눈물을 이겨본 적이 없다. 눈물에도 참기 힘든 눈물의 등급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위에 내 마음이 포개어져 흐르는 눈물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가령, 누군가 억울하거나 슬픈 상황에 놓여있는데 나도 그 사람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을 때,눈물은 이미 내 뺨위를 흘러 턱 밑에 가 있다.
남자는 태어나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소리를 지겹게 들으며 자란 나로서는 눈물 때문에 난감할 때가 많다.
하루는 친척 장례식에 갔다가 다른 사람의 납골함에 붙여져 있던 생전 사진과 가족이 남긴 글을 보고눈물 참느라 혼났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 정작 돌아가신 분의 자녀들도 눈물이말랐는데 나 혼자 울고 있는 게 뻘쭘했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 흘려야 할 눈물을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리고 있다는 게 상황에 안맞아 보여서 그랬다.그럴 때마다 눈을 깜빡거리며 눈물을 감춰보려 애쓰지만쉽지 않다.
이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통에그럴 땐애먼 허벅지를꼬집어보지만, 고장 난 눈물샘은 A/S조차 거부된 지 오래고, 결과는 백전백패다.
어려서부터 그랬다고, 눈물이 많은 건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 거라고 위로해봐도, 난 늘 다른 사람이 가엾거나 타인의 마음에 감정이입했을 때만 울었지 아프거나 억울해서 운 적은 없다고 변명해봐도, 대한민국에서 눈물 많은 남자는 마이너스다. 눈물 많은 사람이 많아져야 세상이 따뜻해진다는 내 신념과는 다르게, 따뜻한 가슴보다는 차가운 이성이 대접받는 세상이다.
나 또한 이러한 시류에 발맞춰 딸 앞에서는 절대 울지 말자는 다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내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아버지처럼적어도 딸 앞에서는 울지 않으리라!!
결과는? 당연히 실패. 오히려 눈물만 늘어간다.
아내가 대학원에 공부를 하러 가면서 본의 아니게 '주말 부부도 아닌 주말 가족'이 됐는데, 요즘도 헤어질 때 눈물 참기 약속은 늘 실패로 끝난다.
다음은 내 눈물샘에게 처절하게 패배하며 써 내려간 '나 vs 눈물'의 실패록이며, 슬퍼서 운 건 맞지만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던 눈물의 연대기이자, 단 한번도 이유 없이 흐르지는 않은 내 눈물에 대한 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