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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Oct 25. 2018

나는 죽을 때까지 철들고 싶지 않다

나의 대학 시절은 신용카드 황금기였다. 연회비도 없는 신용 카드를 발급만 하면 매주 수요일,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통신사의 멤버십 카드 혜택으로 매주 금요일에는 다른 극장에서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카드를 가진 것만으로 일주일에 2번씩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셈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땐 그랬다. (이 때의 신용카드 남발은 결국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며 경제에 부담을 안겼다)


친구와 영화를 보기 위해 차로 1시간 거리의 극장을 찾았던 어느 날이었다. 마지막 버스 시간(오후 9시 40분)을 맞추기 위해 오후 7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러 간 것이었는데, 보기 좋게 매진이었다. 다음 시간 영화는 표가 남아있었지만, 그 영화를 보면 버스를 놓칠 수밖에 없는 상황. 극장까지 먼 거리를 왔는데, 다음을 기약하자니 너무 아쉬웠다. 일단 영화를 보고 뒷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계절은 겨울이었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을 나서자 추위가 절정이었다. 이젠 시외버스는 물론 시내버스도 끊겼다. 둘의 대책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어디 가서 잘까?”

“대학교 동아리 방 가서 잤다가 내일 아침 버스로 갈까?”

“한 두 번 자보냐? 거기서 자면 얼어 죽어.”

“그럼 어떻게 하냐? 택시비도 없잖아?”

“그냥 걸어갈까? 서귀포까지 걸어가서 아침에 시내버스 타고 각자 집으로 가자”

(제주시의 최북단에 있는 극장에서 서귀포까지의 거리는 대략 45km 정도였고, 시간은 오후 11시쯤 됐던 거로 기억한다. 지금 봐도 둘 다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잠깐 동안의 정적 후에 나온 대답.

“가자”


그렇게 우리는 한밤에 5.16도로(도로 이름 좀 바꿉시다. 도로 이름이 5.16이 뭡니까?)를 횡단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5.16도로 개통 이래 아마도 최초로 시도됐을 이 날의 모험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그 날 알아낸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1. 서귀포와 제주시는 생각보다 ‘아주’ 멀다. 

2. 단화를 신고 걸으면 체력 소모가 크다.

 - 나는 단화를 신고 있었다.

3. 겨울철 시내와 한라산의 온도 차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 5.16 도로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성판악을 지날 때, 성판악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4. 5.16도로 중간에는 인도와 가로등이 없다. 

 - 가장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멀리서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미리 길 옆으로 피해야 했다

5. 아직은 좋은 사람들이 많다.

 - 서귀포에 거의 다 왔을 때 택시 기사 한분이 우리를 태워주셨다. 돈이 없다고 하자 자기가 제주시로 가는 길에 우리를 봤는데 아직도 걷고 있냐며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했다. 앞에 있던 손님은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6. 힘든 일을 마치고 먹는 컵라면은 아주 맛있다.

7. 세상에는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 자정을 넘어 길을 걷고 있을 때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도 않을 버스를 기다리던 한 남자. 그런데 멀리서 봐도 자세가 너무 이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귀신을 믿지는 않는데,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에게 말했다.

 “저거 귀신 아냐?”

   그의 앞을 지나가면서 우리는 그를 쳐다보지 않기로 약속했고, 걸음이 빨라졌다. 그를 지나친 후에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돌아보면 왠지 따라올 것 같아서 서로 앞만 보고 가기로 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아직도 그 사람이 버스가 끊긴 시간에 버스 정류장에, 그런 자세로 서 있었던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귀신은 아니겠지?

8. 당시 나의 체력은 최상이었다.

 - 아침 7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9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건설현장 막노동 사장님의 전화. 피곤해서 오늘 못 나간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하필 공사현장 위치가 우리 집과 가까웠다. 고심 끝에 2시간만 잔 상황에서 일을 나갔고, 일을 다녀온 후에 시체가 됐다.       


가끔 젊은 날의 치기와 대책 없는 객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철없다는 말을 들어도 전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던 그때,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철없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다’라고 나와 있다. 보통 철없다는 표현은 나이 값을 못한다는 표현으로 통하고, 철없는 아이는 그러려니 해도 철없는 어른에는 마음이 넓지 못하다. 


우리 사회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 나는 순도 100프로 ‘철없는 어른’이다. 이제는 나보다 나이 든 사람을 찾기 힘든 록 페스티벌이나 펑크 록 공연장을 아직도 다니고, 열심히 월급 모아봐야 아이들 뒷바라지하기도 힘든 세상이니 젊을 때 돈 많이 모아놔야 한다고 사람들이 얘기할 때, 홀연히 해외로 나가 기어이 빚을 떠안고 돌아왔다. 


미래를 위해서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룰 줄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나. 지금처럼 사는 게 좋은 것을. 지금처럼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아니 지금처럼 살아야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깨달아버린 것을. 

꿈을 잃고 내일의 편안함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는 현실적인 삶이 철드는 거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철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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