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잘 지내시죠? 다름 아니고 저도 갑자기 캠핑카 뽐뿌가 왔는데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형 밖에 없네요. 캠핑카 살만해요?"
질문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캠핑카를' 살만한지(캠핑카에 살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아니면 '캠핑카에서' 살만한지(캠핑카에서 살면 행복한지) 물어보는 거야?"
"저는 캠핑카에서 살 건 아니구요. 캠핑카 하나 있으면 주말마다 놀러 다니고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게 가격이 한 푼 두 푼도 아니고... 하아... 결정이 쉽지 않네요."
난 간결하게 대답해줬다.
"일단 나는 캠핑카에서 사는 동안 너무 행복했는데 너도 행복할지는 모르겠어. 뭐든 마찬가지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 다만 캠핑카를 사고 나서 너와 맞지 않아서 후회를 하게 된다면, 캠핑카 홍보 영상마다 달리는 댓글의 의미를 깨닫게 될 거야."
"그 말이 뭐예요?"
"캠핑카를 사면 딱 두 번 좋다. 살 때와 팔 때"
대화가 길어졌다. 은행에서 대출받아가며 캠핑카를 사게 된 이유, 캠핑카에서 살게 된 이유, 내 캠핑카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없는 이유,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이유, 캠핑카를 출퇴근용으로 쓰는 이유 등등을 설명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후배의 눈높이가 점점 높아지는 걸 느꼈다.
"화장실이랑 샤워실이 없다구요? 그럼 어떻게 살아요? 화장실이랑 샤워실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으면 안 불편해요? 에어컨 없이 여름은 어떻게 보냈어요? 옷은 어떻게 빨아요? 전기는 어떻게 써요? 캠핑카를 출퇴근용으로 쓰는 게 가능해요?" 따위의 캠핑카 주요 질문 n종 세트가 이어졌다.
"이건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 그냥 내 캠핑카 빌려줄 테니 가서 한번 자봐. 그럼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될 거야"
그렇게 후배는 캠핑카에서 가족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캠핑카 키는 집 우편함에 넣어두라고 했기 때문에 후배가 나중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다.
다만 후배 덕분에 나는 내가 캠핑카를 처음 사기로 했을 때의 마음을 떠올리게 됐는데, 지금 돌이켜봐도 그것은 나답지 않은, 참으로 대담한 결정이었다. 몇천 원짜리 음식을 먹을 때도 이 음식이 이만큼의 가치를 가지는지 따지고 보는 내가 몇천만 원짜리 차를 사는 데 1초의 망설임 없이 결정을 내렸다니! 대출금으로 캠핑카를 사는 마당에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고결정했다니! 난 어떻게 그런 무모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나에겐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화장실, 샤워실, 에어컨 없이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불편함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 캠핑카에 살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결국 나는,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캠핑카를' 살 수 있었던 거다. 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캠핑카에서' 살 수 있었던 거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진짜 갖고 싶었던 건, 캠핑카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꿋꿋이 잘 살아가는 나, '하루아침에 내가 가진 모든 게 날아가도 1.5평짜리 공간만 있으면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 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