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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LER Jan 08. 2017

사랑일까?

너는 어때#13

"사랑을 정의하지 못하는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사랑이 모에요? 사랑은 사랑하는 거에요. 기본적으로 첫번째는 보고싶다는 감정이에요. 사랑 초입에는 보고있어도 보고싶고, 손을 잡고 있어도 보고싶고, 안고 있어도, 하고 있어도 보고싶죠. 두번째는 마냥 좋다는 거에요. 멀리서 나와 만나기 위해 총총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커피를 마시겠다고 전동벨을 들고 서있는 당신도 사랑스러럽고, 가방을 옆에두고 목도리를 벗는 당신도 사랑스럽고, 멍 때리고 사람 구경하는 것도 사랑스럽죠.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소름이 돋을 만큼 사랑스러워요. 세번째는 시간이 사라져요. 우리는 분명 오전 아홉시에 만났어요. 근데 눈 떠보니 오후 아홉시네요. 너무 아쉬워서 같이 밤을 지내기로 했어요. 시간이 너무 빨라 잠과의 싸움을 한 창버려요. 그러다 잠들죠. 눈을 뜨고 다시 한번 커피를 마시고 숨을 고를 때 당신의 시계침은 아홉시를 가르키고 있을거에요. 밤 아홉시요. 


이 세가지를 겪어보지 않아다면 당신은 사랑하고 있지 않은거에요. 


정말일까? 난 내 옆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다고 해서 사랑이 아닐까? 사랑에는 여러가지가 존재해요. 저 세가지는 사랑의 초입일 뿐이에요. 초입에 저러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관없어요. 심장이 두근거리기 보단 가라앉아 편했고, 보고싶어 죽진 않고 가끔 미소짓게 만들어줬고, 지금이 몇시인지 인지가 가능했다 하더라도 사랑이에요. 

또 예를 들어볼까요? 당신은 성욕만이 그 사람을 구성해요. 만나면 하고싶고, 떨어져 있을 때도 하고싶고. 그 사람이 내 욕구를 거부했을 때 미칠듯이 화가나요. 그 사람이 미워져요. 집에가고 싶어요. 그러다 그 사람이 허락해요. 사랑해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 같아요. 문득 생각해요. 그 사람과 하기 전에 난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욕구해소를 위해 그 사람을 택한 걸까? 아니요. 사랑이에요. 


우리는 흔히 '플라토닉 러브'를 기준으로 사랑을 정의해요. 왜 그런걸까요? 우리는 환상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완전한 '플라토닉 러브'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일단 모든지 환상을 누리고 사는 극소수에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우리는 극소수가 아니라는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환상적이기에 기준으로 삼는거에요. 불가능한다는 거죠. 섹스를 하지 않고 일평생 산다고? 아직 죽기전까지 살아보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호르몬이 활발이 움직이는 인간이라면 불가능 해요(극소수는 제외). 


하지만 순수해 보이잖아요. 그 누가 순수의 기준을 정했는 지는 모르지만, 현재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래요. 성욕을 떳떳히 세상에 펼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먼저 간단히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해볼게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새로움'을 거부한다고들 해요. 익숙한 것을 사랑하고, 당골집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오래된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 느껴지고, 오랜기간 쌓아온 정을 중요시하죠. 하지만 '새로움' 없이 살아가지 못해요. 로멘틱이 그 중 하나에요. 현실에 찌든 사람은 그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해요. 여행을 가든지, 무언가를 사던지, 이벤트를 하던지 받던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어떠한 행위를 하죠. 그 중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잊게 해주는 데 가장 큰 행위가 '로멘틱' 이라 불리우는 환상이에요. 사랑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모든 걸 잊어요. 오로지 사랑만을 하죠. 다른 건 다 잊게되요. 신기하죠. 그 로멘틱이 뭉클되는 사랑이던, 뚜렷한 사랑이던간에.  

로멘틱은 환상과도 같죠. 내게만 일어나는 환상. 내 남자가, 내 여자가 아니면 해주지 않는 것들. 그 사람이기에, 나이기에 해주는 것이죠. 사랑이 환상에 기반되지 않으면 현실을 벗어날 수 없기에 '플라토닉 러브'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거에요. 새로움 없이 일상적인 세상을 살기를 거부한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 모든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몰라요. 가슴이 그렇게 느끼는 것 뿐이죠. 뇌는 알지 못해요. 심장만이 반응하죠.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을 어떠한 이유에서 사랑했던지 간에, 심장이 반응하면 사랑인거죠. 또 이상한건 심장이 뛴다해서 사랑이고, 안 뛴다해서 사랑이 아니란건 아니에요. 


제가 말하고 싶은 사랑은 '대상'에게의 사랑이이에요.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안 그런데,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심장이 뛰어요. 그럼 사랑이죠. 다른 사람은 불편한데 이 사람은 편해요. 사랑이죠. 다른 사람한테는 안 서는데 이 사람한테는 서요.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내 심장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반응한 그 사람이 당신에게는 사랑이에요. 


처음에는 불확실할 수 있어요. 점점 가면서 확실해지겠죠. 그 때 우리는 선택하게 되요. 내 사랑과 그사람의 사랑이 같은 걸까? 타협할 수 있을까? 보통은 타협하게 되죠. 그래서 사랑에 대해 고민하는게 아닐까요? 


사랑을 정의하고 싶지 않아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몰라요. 알지도 못하는 걸 정의하고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잖아요. 사랑인지 아닌지는 내가 정하고 당신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해요. 


당신의 사랑을 고민하지말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사랑을 고민하세요. 하나의 사랑이 아닌 두개의 사랑이 만나야 고민할 가치가 생기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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