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보드&자유 여행
이제 오타루에서 숙소가 있는 스스키노로
이동해야할 시간이었다.
차가 밀리지 않는다면 1시간 정도 이후면
도착할 거리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눈이라는 변수가 있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현재도
부산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부산은 겨울이 되어도
거의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러니 눈길을 운전해봤을 리 없었다.
곁에 있는 토끼의 운전 경력은 2개월? 1개월?
"..."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몇 번의 눈길 운전 경험이 있기는 했다.
처음 운전면허 실기 시험을 치르던 날에 눈이 왔더랬다.
부산에 거의 눈이 내리지 않는다지만
하필 내가 S 자 코스니, T자 코스니 하던 시험을 치르던 날에
분명히 눈이 왔고 나는 그 악천후를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교통사고가 나서 6개월 동안 도로 주행 시험을 보지 못했는데
6개월 이후 도로 주행 시험을 치를 때는 1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폭우가 쏟아 졌다지-_-;
나는 그렇게 온갖 악천후란 악천후는 다 겪고도
단 1번만에 모든 시험을 통과한 실전 경험의 소유자였다.-_-V
그리고 두 세 번 정도 보드를 타기 위해
자차로 강원도를 오고 가며 운전한 경험이 있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밤이라는 거였다.
밤이 되면 온도가 내려 간다.
온도가 내려 간다는 건 눈이 얼어 붙어 빙판길이 된다는 거였다.
우리가 빌린 차는 다행히도 스노우 타이어가 기본 장착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 있을리가 없잖아?
어쨌거나 내 목숨을 1-2개월 운전 경력의 토끼에게 맡기는 것보다야
14년에 빛나는 내 손에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니, 저도 저를 못믿겠어요."
토끼도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나도 너를 못 믿겠어."
우선 관건은 저렇게 전면 유리에 가득 쌓인 눈을 털어내는 일이었다.
우선 시동을 걸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통해 눈을 벅벅 긁어 내야 했다.
보드용 장갑이 방수와 보온이 정말 잘되는 이중 장갑이라서 다행이었다.
한참 동안 눈과 씨름한 끝에 우리는 스스키노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아니, 왜?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다가 내가 운전하니까 날씨가 이모양이야?"
내가 투덜댔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들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누구 하나라도 사고나서 어디 다치거나 했더라면
마음이 내내 불편했을 테니까.
들이치는 눈에 바닥에 쌓인 눈도 하얀색이었다.
가운데 차선도 하얀색이니 분간이 가지 않았다.
"우와, 눈길 운전이 이래서 무서운 거로구만."
그래도 무사히 고속도로를 벗어나
스스키노 시내로 접어들 수 있었다.
아침에는 흑색의 아스팔트였던 도로가
어느새 눈으로 덮여서 하얗게 변해 있었다.
밤임에도 새하얀 도로가 낯설었다.
"눈이 오면 이런 세상이구나."
그래도 시내로 들어오니 안심이었다. 서둘러 호텔로 찾아 들었다.
주차를 하고 체크인을 마쳤다.
방에 짐을 던져 놓자마자 토끼와 함께 그녀의 후배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부산에서 일본어 학과를 다니던 토끼의 후배는
홋카이도 대학에 교환학생을 왔다가
러시아 유학생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홋카이도 대학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놀랍게도 토끼의 후배와 나는 '동명이인'이었다.
"이 곳에서 유명한 함박스텍이에요."
현지에서 사는 사람이 소개하는 맛집은 무조건 가야 한다는 원칙은 이번에도 분명했다.
아아, 정말 북해도의 먹거리는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나 우리는 30분 이상을 줄서서 대기해야 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함박스텍은 일본에서 꽤 흔한 음식이라 자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동이었다.
다양한 토핑에 부드러운 육즙에 츄르르르릅...
간간이 눈요기가 되는 불쇼도 구경하고
이런 저런 소식도 전하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지친 몸을 끌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를 기다리는 건~
새삥 토끼의 오가사카 보드였다.
"너, 보드 세팅해본 적 있니?"
불안함에 내가 물었다.
"네?"
"..."
뭐,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이게 당연한 거다.
오히려 기계나 세팅 이런 쪽에 능숙한
내가 좀 더 이상한 거일수도 있다.
기계를 잘 다루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릴 때부터 인형보다는 뭔가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더 즐겨했다고 하니까.
"자, 드라이버를 들어."
지금부터 크리쉬의 보드 세팅 강의가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충 위치와 간격, 숫자만 맞춰주고
나사를 올려준 다음 조이고 돌리며 힘쓰는 건 전부 토끼의 몫.
하이백 위치 조절이나 스트랩 클립 조절 같은 것도 대충의 방법만 알려 주고
힘쓰는 건 전부 토끼의 몫.
나는 옆에 배를 드러낸 채 발라당 누워 입으로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간지나는 오가사카 + 플럭스 바인딩 조립 완성!!!!
원래 이걸 토요일에 받아서 조립한 다음
일요일 루스츠에서 타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너무 아쉬웠던 토끼였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 다시 스키장에 간다.
4박 5일간의 일정 중 3번째 스키장이었다.